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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奇談 - 세번째 기이한 이야기 (단편)
게시물ID : panic_618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곰
추천 : 22
조회수 : 197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12/18 09:23:19
이번 이야기는 단편입니다.
[奇談 - 기이한 이야기]는 제가 타 사이트에서 연재중인 글로, 현재 여덟번째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비축분이 떨어질 때까지 당분간(한 달 이상?)은 월화수목금 매일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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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와 이야기한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모니터와 인터넷 랜 선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앉아 있다.
내 이야기에 그녀는 웃는다.
물론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니터에 나타난 간단한 이모티콘을 보면
여자아이다운 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녀가 웃으니 나도 웃는다.
기분 좋은 밤이다.

그녀를 만난 건 이주일쯤 전이었다.
채팅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라지만 채팅 사이트에는 수백 수천 명이 접속해 있다.
물론 그중 대다수가 남녀가 서로 섹스할 상대를 찾는, 그런 저속한 채팅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저속한 무리가 아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을 찾습니다.
그런 제목의 채팅창을 열어 놓고 기다린다.
간혹 누군가가 들어와 저질스러운 광고글을 남기고 사라진다.
나는 끝없이 인내하며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가 조심스레 접속한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만났다.

안녕하세요.
그녀의 인사말을 보고 나는 감동받는다.
요즘 어린 여자들은 복잡한 이모티콘과 알 수 없는 축약어를 쓴다.
그런 여자들과 채팅을 하면 늘 불쾌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또박또박 안녕하세요라는 다섯 글자를 타이핑힌다.
그 뒤에 웃음 이모티콘이 애교처럼 붙는다.
오랜만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녀는 고등학생이다.
어느 학교인지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추측건대 몸가짐 조신한 여학생들이 다니는 우수한 고등학교가 틀림없다.
김동인과 김동리의 차이를 알고, 소월의 본명이 정식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요즘 세상에 이런 걸 아는 어린 여자들은 흔치 않다.  
나는 그녀의 지식과 겸손한 태도를 칭찬한다.

서른한 살. 증권회사 직원. 키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백팔십.
내 소개를 들은 그녀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평균 이상의 스펙에도 무관심한 그녀의 반응이 더욱 마음에 든다.  
내친 김에 최근 주식 동향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그녀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대신 나는 다시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1920년대 단편소설 작가들 중 나는 김동인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녀는 현진건을 꼽는다.
문학만으로도 우리는 매일 두 시간씩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늘 채팅창을 끄기 전, 나는 그녀와 만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녀는 고민하더니 내일 답을 주겠다고 대답한다.
나는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상냥하게 답변한다.
채팅창을 닫고 나서 나는 가슴을 지그시 누른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뛴다.
살짝 흥분되는 느낌에 스스로를 제어하려 노력한다.

그녀는 만나기 곤란하다고 대답한다.
나는 매우 실망한다.
분노가 차오른다.  
나는 주먹으로 키보드를 내려친다.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쓰레기통을 걷어찬다.
담배꽁초가 가득한 재떨이가 하늘을 난다.
맥주 깡통이 벽에 부딪히며 큼지막한 황갈색 얼룩을 남긴다.
나는 포효한다.
잠시 후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우와 충격. 나 차였네.
미안해요. 사정이 있어서^^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말 끝에 이모티콘을 붙인다.
그 이모티콘이 꼴보기 싫다.
나는 어른에게 건방지게 군 벌을 내리기로 결정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참 동안 평소처럼 이야기를 이끌어 가다 채팅을 끈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화에서 조금씩 모아 왔던 그녀의 정보들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생일. 그녀의 출생년도. 그녀의 고향. 그녀의 학교.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그녀의 아이디.
몇 번이나 해 보았던 일이라 오래 걸리지 않는다.  
곧 손쉽게 그녀의 SNS를 찾아낸다.
최근 이삼 년간 업데이트가 없는 것이 아마 얼마간 돌보다가 방치한 모양이다.
그러나 정보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곧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는다.
그녀의 주소다.

나는 어두운 밤을 택한다.
CCTV를 피하기 위해 나는 항상 어두운 밤에 움직인다.
모자를 눌러쓰고 옷깃을 세워 얼굴을 가린다.
움직이기 편한 점퍼 안주머니에 칼을 집어넣는다.
안주머니 너머로 칼의 모양이 느껴질 때 가슴이 두근거린다.
칼날이 그녀의 보드랍고 하얀 배를 가르고 나아갈 때의 감촉을 떠올리며 나는 흥분한다.
잔뜩 부풀어 오른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나는 부르르 떤다.

그녀의 집은 다소 외딴 곳에 있는 주택이다.
경비실이 있는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훨씬 작업하기 편하다.
더군다나 그녀의 집은 다른 집과 꽤 떨어져 있다.
작업하면서 다소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라도 별 일 없겠다고 나는 결론을 내린다.
아저씨가 곧 갈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중얼거리며 나는 킬킬댄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인근의 아파트 단지까지 택시를 탄다.
그리고 인적이 없는 길을 걸어 집에 도착한다.
이미 열두 시에 가깝다.
같이 살고 있는 부모의 목을 손쉽게 베어내고 나면
그 뒤에는 그 괘씸한 년에게 예의범절을 천천히 공들여 가르쳐줄 수 있다.
버릇없이 어른의 제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는 걸 차근차근 알려주리라.  
벌써 흥분하는 바람에 심장이 미칠 듯이 뛰고 숨이 가빠진다.
나는 다시 한 번 주머니 속의 칼을 확인한다.
그리고 신중하게 집으로 접근한다.

놀랍게도 대문은 잠겨 있지 않다.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집 안은 어두컴컴하다.
마지막으로 주변을 살핀 후 나는 대문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천천히 현관으로 다가간다.
장갑을 낀 손으로 현관문 손잡이를 천천히 잡는다.
그 순간 나는 현관 옆에 검은 그림자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림자가 고개를 들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동공만이 있는
끔찍한
얼굴이



  “으아아아악!”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터지더니 곧 조용해졌다. 어두운 방 안에서 촛불만을 켜놓고 명상에 잠겨 있던 집 주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광등을 켜자 하얀 빛이 일순간에 방 안의 물건들을 환히 비추었다. 색색가지 천과, 금박이 입혀진 불상과, 누런 바탕에 붉은 글씨가 새겨진 부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가운데 집 주인은 문을 열고 나가 거실을 거쳐 현관문을 열었다. 마당에는 검은 색 점퍼를 입은 땅딸막한 중년 남자가 두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검은 그림자가 가만히 서 있었다. 집 주인은 신발 신은 신으로 남자를 툭툭 걷어찼으나 반응이 없었다.

  “어젯밤 꿈자리가 안 좋아 성주신을 좀 센 분으로 모셔 놓았더니...... 이상한 놈이 걸렸구만.”
 
  집 주인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빼 들고는 번호를 눌렀다. 곧 전화가 연결되자 그녀는 인사말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자네 우리 집에 잠시 와 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말씀입니까?”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잠에 절반쯤 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처리할 일이 생겨서 말이야. 그리고 바리도 데려오게. 아무래도 걔가 뭘 어떻게 했지 싶어.”
 
 
 
  

  “바리야.”
 
  해원은 한숨을 쉬듯 그녀를 불렀다.
 
  “그러니까 내가 채팅 같은 거 해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했잖니.”
 
  그녀는 겸연쩍게 발끝을 내려다보며 우물거리듯 대답했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이런 징그러운 남자가 칼 들고 찾아오는 게 재미있냐?”
 
  해원이 기가 차다는 듯 말하자 바리는 반항하듯 반박했다.
 
  “그치만 자기는 키 큰 증권사 직원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문학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
 
  “인터넷에서야 무슨 말을 못하겠어.”
 
  “그래도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게 잘 해서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우앙. 완전히 속았어.”
 
  그녀는 해원에게 울상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해원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 자칭 키 큰 문학청년께서 지금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그럼 만나러 거기로 가 볼까?”
 
  바리는 부루퉁하니 입을 내밀고는 말없이 옅어져 갔다. 바리의 모습이 사라지자 해원은 고개를 저었다. 부족한 잠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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