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의 아버지인 김용주 씨는 독립운동단체였던 신간회의 지회 간사로 활동했습니다.
신사참배와 일장기 게양을 거부하고 자진 폐교한 학교를 자신의 재산으로 다시 설립하기도 했죠.
여기까지만 보면 김용주 씨는 분명한 민족운동가입니다.
하지만, 40년과 43년. 그는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비행기 헌납광고를 게재하죠.
이것만 보면 김용주 씨는 친일파입니다.
자,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빠르신 분들은 벌써 이해했을 겁니다.
아직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군요.
그럼 한 가지 더 들어보겠습니다
'발가락이 닮았다'의 작가, 춘사 김동인.
'동아일보'의 창립자, 인촌 김성수.
'이화여대'의 설립자, 헬렌 김활란.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가산 이효석.
'조선일보'의 창립자, 계초 방응모.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그리고 이번에 논란이 된 김무성 대표의 아버지, 해촌 김용주.
이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민족운동가였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말년은 다들 아실겁니다. 변절했죠.
네, 그들은 모두 변절했습니다. 변절 시기도 비슷합니다.
중일전쟁 개전 직전인 36년에서 태평양 전쟁 개전 41년 안팎.
이들의 행적은 절대 이 이전만 다루거나 이 이후만 다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원래 민족운동가였다는 점을 함께 다뤄야합니다.
또한, 그들이 추악한 변졀자라는 점도 반드시 다뤄야합니다.
그들은 前 민족운동가입니다. 그와 동시에 결국 일제에 굴복한 변절자입니다.
변절자는 분명한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