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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라 하지 마세요. 조선 왕들도 이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게시물ID : sisa_6203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표고양이
추천 : 17
조회수 : 840회
댓글수 : 71개
등록시간 : 2015/10/29 20: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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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소4.jpg


조선 왕들도 성균관 및 재야 유생들의 상소를 받아 읽었습니다.




만인소라는 이야기 혹시 들어 보셨나요?

만인소는 요새 영화 [사도]로 유명한 영/정조 무렵인 1792년. 
재야 유생 만여명이 모여 올린 상소문이 그 시초입니다.

이 만인소의 내용은 당시 집권당파인 노론을 비판하며
특히 사도세자의 복권과 관련자들의 처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 - 왕조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이었죠.

만인소_3.jpg


원래 유생들의 상소는 성균관 관리를 통해 전달되어야 함에도
당시 담당관들은 이들의 상소를 올리지 않습니다.
결국 유생들은 궐내의 다른 관리를 통해 왕(정조)에게 상소문을 전달합니다.


정조는 유생들을 친히 접견했고
상소를 반도 읽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으나, 촛불을 밝힌 채
밤늦도록 상소를 읽고 유생들을 접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상소를 막은 성균관 관리들은 파직됩니다.



그 이후로도 만인소는 몇 차례 더 작성되어
말 그대로 만 명의 이름을 담아 임금에게 전달됩니다.

순조23년, 서얼들의 임용 요청
철종 6년,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추존
고종18년, 조선 외교방침에 대한 논의.

재야 유생들의 [만인소]가 올라올 때 마다
조선은, 그리고 조선의 조정은 
그들의 상소를 진지하게 검토했습니다.

단 한 번도 조선은 그들 유생들이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거나
가난하다거나, 나이를 따지거나
학식이 어떻다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그런 나라였습니다.




병사들로 유생들을 가로막지 않았고, 상소를 막은 관리들을 파면했습니다.
22043713_2.jpg




돈이나 권력으로 그들을 회유하거나, 반대 세력을 조성하지도 않았습니다. 
18060359_YJW_8920.jpg




상소문 하나라고 외면하지 않고, 왕이 밤늦게까지 친히 접견하여 의견을 들었습니다.
2014-10-29_146.jpg




...



조선은 그런 나라였습니다.


헬은, 조선이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입니다.



출처 마티즈 없고 번개탄 피울 줄 모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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