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란음모' 정국의 프레임을 깨야 한다
민중의소리
입력 2013-08-31 09:46:46l수정 2013-08-31 10:16:02
지난 국정원사태 당시 국정원이 제기한 'NLL논란'의 교훈은 해명에 급급해 질질 끌려 다니면 선거부정과 은폐조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주객이 전도된다는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권력자들이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수단으로 프레임(구도)을 선점하여 정권재창출에 성공한다고 보았다. 그 책에 코끼리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지만, 제목을 보고 사람들은 우선 '코끼리'부터 떠올리게 된다는 거다. 막강한 언론의 여론전파력과 수구세력의 프레임이 결합하면 사람들은 수구지배세력이 만든 그 구도에 갇혀 헤어날 길이 없어진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축소조작은폐 정국을 'NLL 논란' '대화록 진위 공방'으로 뒤바꾸려 한 것도 바로 프레임을 선점하려는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의 술책이라 볼 수 있다. 수구지배세력의 막무가내식 프레임 선점을 막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대중투쟁이다. 수구지배세력의 낡은 프레임을 거부하는 대중들의 투쟁이야말로 진실과 정의에 다가서는 유일한 길이다.
국정원과 박 정권이 일으킨 'NLL 논란'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달려드는 순간, 이미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 쪽은 '대화록 진위 공방'의 수렁이라는 저들의 프레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축소은폐는 사라지고, 어느 순간부터 NLL논란, 나아가 노무현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게 되었다. 본말과 주객이 뒤바뀌고 만 것이다.
이를 깨트리고 바로잡은 것은 바로 촛불을 든 대중들의 투쟁이었다. 국정조사 역시 대중투쟁의 산물이었다. 민주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대중투쟁의 광장에서 절을 해도 수백 번 해야 할 정도다. 문재인 의원이 'NLL 진실'을 밝히겠다고 뛰어든 것은 변호사 출신다운 법리적 발상의 한계를 보여준 것으로서 명백한 정무적 판단착오였다.
국정원이 위기탈출을 위해 급하게 꺼내든 프레임이 이번에는 '내란음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지만, 현직 국회의원이 끼어있는 '내란음모'나 북과 연계된 대규모 간첩단사건 정도가 아니면 남재준 원장의 퇴진과 전면개혁의 궁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국정원의 초조함과 조급함이 엿보인다. 막가파식의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발표와 동시에 수구세력이 진보당 해체 시위를 벌이고 당사에 난입해 우익 테러를 자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건추이와 재판결과를 지켜보면서 대응하자는 ‘신중론’은 국정원의 술수에 말려드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2개월 가까이 여론 재판에 오르내리고 나면 이미 버스 지난 뒤에 손 흔드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작년 진보당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석기 의원의 '국회의원직 제명을 위한 윤리위 제소'는 부정선거를 빌미로 한 것이었는데, 무혐의로 밝혀져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론재판을 통하여 마녀사냥이 끝난 뒤였다. 어느 언론도 진실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윤리위 제소자들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 의원에게는 부정선거와 종북주의 낙인만이 지울 수 없는 흉터처럼 남았다.
지금껏 수구지배세력이 권력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혐의 수사 때에도 재판결과를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있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내부에도 있었다. 검찰이 먼지털이 수사를 통하여 교묘하게 피의사실을 유포하고 관제언론이 무차별적으로 확대재생산하여 출처불명의 미확인 혐의가 기정 사실인양 도배되다시피 했다. 여론재판을 통한 마녀사냥으로 노 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혐오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노 전 대통령이 고독하게 최후의 선택을 결단하기까지 그의 편에 서서 그를 지켜준 동지들이 과연 누구였던가.
작금의 내란음모 소동에 대해 민주당은 '신중론'을 펼 때가 아니다. 전직 국가수반의 발언까지 교묘히 짜깁기 편집하여 전혀 반대의 내용으로 조작해내는 기관이 국정원이다. 하물며 힘없고 ‘빽’ 없는 진보당 초선의원의 강연쯤 '내란음모'로 몰아가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피의사실을 은밀히 언론에 흘려 무지막지한 여론재판을 통하여 혐오감을 조성하고 인격살인을 자행하겠다는 적의가 번뜩이고 있는 판국에 ‘신중론’을 빙자하여 진보당과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태도야말로 유신회귀와 공안통치 부활에 겁먹은 소심한 기회주의에 다름 아니다. 33년 만에 부활한 '내란음모' 조작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민주수호를 위한 투쟁에 동참하는 것이 '내란음모' 정국을 타개하는 올바른 출로이다. 국정원의 프레임에 말려들어 엉거주춤할 것이 아니라 그 프레임을 단호히 거부하고 깨버려야 한다. 프레임을 깨는 방법은 오직 투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