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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인간 낚시 (피싱)
게시물ID : panic_620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26
조회수 : 3729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3/12/24 00:30:55
 
(저번에 피싱이란 제목으로 올렸던 글인데 제목을 살짝 바꿨습니다.
 하편 올릴 차례인데 올린지 좀 돼서 상, 하 합쳐서 올립니다)
 
 
 
 
“조선족은 누가 조선족이라는 거야, 새끼가. 귓구녕이 어떻게 됐나.”
 
녀석이 전화를 끊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가 불을 뿜고, 곧 매캐한 연기가 방에 가득 차기 시작한다. 나는 타들어가는 녀석의 손끝을 보았다. 오랜 흡연으로 인해 녀석의 손가락은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녀석은 저 손으로 코를 후비고, 쌈을 싸먹고, 오줌을 눈 다음에 아무렇지 않게 애인을 만나러 갈 것이다. 겨울엔 길거리 음식이 그만이라며 호떡이나 붕어빵을 사서는, 하나 꺼내 애인 손에 쥐어줄 테지. 그러곤 호색한답게 애인을 모텔로 데려가서 몸 이곳저곳을 탐색할 것이다. 저 손으로. 누렇고, 니코틴과 각종 세균에 찌든 손으로. 어쩐지 구역질이 치밀었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담배를 든 손으로 편의점 봉지를 툭 밀었다. 힘없이 주르륵 밀려난 봉지가 속에 든 것을 토해냈다. 삼각김밥, 샌드위치, 담배 두 갑, 생수병이 책상 위를 어수선하게 뒤덮었다. 나는 녀석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분명 저 손으로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을 테지.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조선족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면 좋지, 뭐. 정체가 들통 날 가능성도 줄어들고.”
“정체는 무슨. 네가 슈퍼악당이라도 되냐? 보이스피싱으로 등쳐먹는 주제에. 것도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이번 달 실적도 네가 꼴찌인거 아냐? 너 그러다가 끽, 모가지 잘려, 임마.”
 
총 여섯 명이 한 팀이었는데, 그 중에 양심을 가진 인간은 나밖에 없었다. 그러니 실적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보험 왕을 뽑는 것도, 영업 왕을 뽑는 것도 아닌데 실적 운운하다니 우습지만, 사기도 엄연한 일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경쟁심리를 자극해 사기를 독려한다나 뭐라나. 즉, 사기를 더 열심히 치게 하기 위해서 사기꾼들끼리 경쟁을 붙인단 뜻이었다.
 
나는 이곳이 한심하다 못해 진저리날 지경이었다. 다단계 회사에 얽혀서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들어오지만 않았다면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았을 인간들이다.
좁아터진 지하방에서 연달아 연기가 피어오르자, 기침이 쏟아졌다. 녀석은 나를 한심한 눈으로 보았다. 녀석의 입에선 몇 개비 째인지 모를 담배가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앞에 놓인 재떨이는 비우지 않아 담배꽁초와 침이 한데 섞여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보지 마, 시팔. 쓰레기 주제에 누굴 쓰레기 취급하는 거야.
 
“너 아까부터 뭘 꼬라 보냐. 콱 뒈질라고.”
“그냥…… 그러니까 어떤 번호로 전화를 걸어야 좋을까……그 생각하던 중이었어.”
“변명하고는.”
 
나는 전화기를 들고 아무 번호나 누르기 시작했다. 열자리의 숫자를 누르자 통화 연결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저…….”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누구시죠?!]
“…….”
“왜 그래?”
 
녀석이 소리를 낮추며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전화기를 가리켰다. 전화 받은 사람 제정신이 아닌가봐. 우리가 속삭이는 도중에도 상대방은 목청이 터져라 ‘여보세요’를 연발하고 있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게, 그 집 아드님을 데리고 있습니다아…….”
 
타이밍 좋게 스피커에서 어린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녀석이 파일을 재생시킨 것이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까무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성하요?! 우리 성하?! 성하 너, 거기 있어?!]
 
내가 실적이 적다곤 해도, 이런 종류의 전화를 수없이 해본 경험으로 미뤄보아 이러한 반응은 정상적이지 않다. 전화기 너머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중년 여자의 울음소리에, 녀석도 얼굴을 굳혔다.
 
요즘은 보이스피싱 예방법이 널리 퍼져있어서 그런지, 댁의 아드님을 납치 했다는 전화를 걸어도 당황하긴 커녕 오히려 맞받아쳤다. 제발 좀 데려가라는 둥, 휴가 나왔으면 집으로 기어들어올 것이지 어딜 싸돌아다니냐는 둥, 내가 그 아드님이라는 둥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당황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보이스피싱에도 엄연한 급이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임기응변에도 능수능란해서 주로 복잡한 은행 쪽 일을 맡았다. 서열이 제일 낮은 나는 가장 기초적인 ‘납치’ 설정을 도맡았는데, 걸려드는 사람은 드물어도 한번 물었다 하면 한몫 크게 잡는 방법이기도 했다. 성공률이 희박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거, 아무래도 진짜 사건이 터진 집에 전화를 건 모양이다.
아들이 실종됐거나,
진짜로 납치된 집에.
 
나는 녀석에게 눈으로 물었다. 어떡해? 녀석은 눈을 부라리며, 뭘 어떡해? 밀어 붙여야지, 라고 대답했다.
 
[저기요, 여보세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네?! 얼마가 필요해요. 달라는 대로 주겠으니 우리 애만큼은……!]
 
녀석이 손가락을 세 개 펴서 흔들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3억……. 내일까지 3억을 준비해놓으세요. 내일 이 시간에 전화하겠습니다. 끊습니다.”
 
전화를 끊자 정적이 찾아왔다.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설정되어 있는 전화기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전화가 올 리 없음에도 곧 전화벨이 울릴 것 같아서였다.
 
녀석이 갑자기 내 뒤통수를 딱 소리가 나게 후려쳤다.
 
“3억? 와, 새끼 장난 아니네.”
“네가 3억이라며.”
“나는 삼천 말한 거지. 영화를 너무 본거 아니냐. 평범한 집구석에서 3억을 어떻게 끌어 써. 상식적으로 좀 생각해라.”
“그럼 다시 전화해서…….”
“모양 빠지게 “3억이 아니라 3천만원만 준비해주십쇼. 3억은 가계에 부담되는 액수지 않습니까. 하하” 그럴까? 줄 마음도 사라지겠다.”
“그럼 어떡해?”
“냅둬봐. 내일 전화해서 정말 줄 것 같으면 먹는 거고. 그리고…….”
“그리고?”
“이 생활도 당분간 관두는 거지.”
 
녀석이 눈을 빛내며, “3억을 반으로 나누면 1억 5천이다. 복권 1등 된 거랑 비슷해.”라고 말했다. 나는 머리나 식히겠다며 당구장으로 몰려간 나머지 녀석들이 언제 들이닥칠까 두려웠다. 녀석은 그런 내 걱정을 빤히 아는 듯이 말했다.
 
“이 일은 당연히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하는 거다. 너는 실적 부족으로 잘리는 거고, 나는…… 시팔, 될 대로 되라지. 나도 대가리 클 만큼 컸다 이거야. 내가 내 발로 나가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안 그래? 너도 인생 새 출발 해야지. 듣기론 빚이 꽤 된다며?”
 
과연 실적 1위 다운 실력이었다. 녀석은 말로 나를 살살 녹였다.
 
학교도 다시 다녀야지.
집에도 내려가고.
곧 명절인데, 부모님 잘 지내시는지 봐야지.
암, 네가 장남인데.
액수만 좀 클 뿐이지, 어차피 똑같은 사기야.
저 새끼들 알면 6등분해야 되지, 나눈다고 해도 네 몫도 똑같이 나눠줄 것 같아?
나나 되니까 챙겨주는 거지…….
 
그야말로 뱀 같은 혀 놀림이었다. 혀를 낼름 거릴 때마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녀석이 아가리를 쫙 벌리고 달려들어 내 속의 양심까지 꿀꺽 집어 삼켰다.
그래, 로또 맞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다급하게 아들의 이름을 부르던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똑같은 사기다. 납치범을 대신해 돈을 뜯어내는 것도 사기고, 코흘리개 꼬마를 속여서 푼돈 몇 푼 뜯어내는 것도 사기야. 시팔, 그래 나는 사기꾼이다. 사기꾼. 보이스피싱이나 해서 사람들 주머니 털어먹는 쓰레기. 아무리 고결한 척 녀석들을 욕해봤자, 나도 ‘사기꾼호’에 탄 선원인 건 똑같았다.
 
녀석은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아무것도 못하는 놈인 줄 알았더니 대박 터트리네.” 하며 히죽거렸다. 찌든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
 
 
녀석은 나를 데리고 밤새 유흥가를 돌아다녔다. 고기, 그것도 한우를 사주고, 양주도 사주고, 마지막으론 안마방이란 곳에 가서, 아가씨가 해주는 서비스도 받아보았다. 돈은 물론 녀석이 지불했다. 나는 만취 상태여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깜빡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이미 일이 끝난 후였다. 사실대로 고했다간 또 병신 취급이나 받을 것 같아서, 황홀한 척 연기하며 밖으로 나왔다.
 
녀석은 그놈의 담배를 줄기차게 피우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까지 장사하는 집에서 한잔 더 하자는 말에는, 혼자 돈을 꿀꺽 하려고 나를 급성 알콜중독으로 죽이려는 속셈인가 의심해야했다. 다행히 나에겐 딱 두 잔을 권했을 뿐이다. 그러곤 혼자서 두병을 더 비웠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이미 해가 환하게 뜬 후였다. 늦은 오후에야 일어나 아지트로 향했다. 녀석은 멀쩡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술독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난 몰골이었는데 말이다. 다른 녀석들은 이 시간이면 점심밥을 먹고 당구장이나 피씨방으로 가서 몇 시간씩 있다가 왔다.
 
고로 어제처럼 다른 방해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녀석이 신호를 보냈고, 나는 어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두 번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돈은 준비했어요. 성하는 어떻게 지내고 있죠? 밤새 잘 있었나요? 우리 성하 목소리 좀 들려주세요!]
“애는 잘 있는데요. 그래요, 성하요. 걔는 잘 있어요. 돈만 받으면 돌려보내드릴 테니까 걱정 마시구요. 우리 그렇게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아직 술이 덜 깨서 그런지 드디어 사기꾼 인생을 시작하려는 마음을 먹었던 건지,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녀석이 옆에서 킬킬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공원옆에 주차장 아시죠. 거기로 혼자만 오세요.”
 
[저희 남편이]
 
“아뇨. 아줌마가 들고 오세요. 아저씨가 괜히 오버하면 일 틀어지니까. 아줌마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것 같으니까, 믿을 수 있겠죠? 괜히 쓸데없는 일 벌이지 말자구요. 아시겠죠. 앞으로 한 시간이에요. 한 시간에서 딱 십분 더 기다리고 갈 겁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배를 잡고 끅끅대며 웃고 있던 녀석이 나를 쳐다봤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다. 정말이지 미친놈처럼 보였다. 영화에 나오는 미치광이 악당 같았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나도 녀석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이에나처럼 낮게 킬킬대며 굴러다녔다. 인간망종이라도 되는 양.
 
 
*
 
 
아줌마는 정말로 혼자 나타났다. 007가방은 들고 있지 않았다. 배낭가방을 등에 메고,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여행용 캐리어를 하나 끌고 나왔다. 돈은 어디에 들어있는 거지? 3억이라는 돈이 등 가방에 다 들어갈 턱이 없고, 그렇다면 손에 들고 있는 캐리어에 들어있다는 건데 가방은 왜 가지고 온 거지?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 녀석이 차에서 내리라고 눈짓했다. 그래도 자기가 서열이 높다고 나한테 위험한 일을 시키는 거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도청장치라도 있으면…… 경찰이 보고 있을 수도 있고. 저 아줌마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생각해보면, 우리 경찰에 신고하지 말란 소리도 안했잖아.”
“이상하긴, 네가 더 이상하다. 우리는 저 가방만 뺏어가지고 튀면 끝이야.”
“그치만.”
“겁나면 같이 가던가.”
“누가……누가, 겁난다고.”
 
나는 차에서 내렸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그리고 역동적으로 뛰는 것이 느껴졌다. 새벽까지 퍼 마신 술의 영향인지, 녀석의 말대로 겁이 나서인지 모르겠다. 아스팔트가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하늘이 거꾸로 뒤집혔다. 주차장에 드문드문 세워진 차들이 일그러지고, 어떤 놈은 돼지로, 어떤 놈은 기린으로 변해서 어기적거리며 걸어 다녔다.
 
아, 정말 미쳐 가는가보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몇 발자국 떨어진 차 안에 녀석이 앉아서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다. 녀석이 눈을 부라린다. 빨리 가지 않고 뭐하냐고. 나는 머리를 털며 망상도 함께 떨어져 나가기를 바랐다. 감았던 눈을 뜨고 앞을 보았을 때, 아줌마가 긴장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주차장에 서있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게 생긴 아줌마였다. 40대 초반, 퉁퉁한 몸매, 급하게 나오느라 화장기 하나 없는 칙칙하고 늘어진 피부. 원래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이유는 나 때문이겠지. 무서워서. 내가. 녀석이 아닌 내가 무서워서 말이다.
나는 느슨해진 마스크 끈을 바짝 잡아당겼다. 마스크 안이 뜨거운 입김으로 축축하게 젖어갔다. 뜨겁고 질척하다. 눈앞이 어지럽다. 팔 다리가 흐느적거린다.
 
손을 내밀자 아줌마가 캐리어를 건넸다. 우리는 단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채 가방을 주고받았다. 나는 정신없이 걸었다. 캐리어가 너무나 무거웠다. 3억의 돈이란 게 이렇게 무거웠단 말인가. 하기야, 살면서 현금 3억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게 맞는 무게인지 가늠도 할 수 없다. 정신없이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 보았다. 아줌마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얼굴이 새하얗다.
이마를 뒤덮은 식은땀이 이곳에서도 확연히 보인다.
입술만은 새빨갛다.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축인다. 혀를 집어넣는 입모양이 기괴하다.
여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서서 내가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징그러운 여자다. 무서워. 전화 속의 그 여자가 맞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아들을 찾아 울부짖던 모성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공원을 빠져 나와 무작정 달렸다.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러서야 한숨 돌리고 차를 세웠다. 녀석은 이상하게 말이 없다. 녀석도 겁을 먹은 게 분명하다. 그동안 큰 사기를 몇 번 쳤다곤 해도, 모두 전화상으로 이뤄진 범죄였을 것이다. 직접 현장에서 돈을 뺏어온 적은 없었으니 긴장할 법도 하다.
 
결국 내가 먼저 안달이 나서, “열어볼까?”라고 물었다.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지나다니는 차가 너무 많아. 이 근처에 조용한 모텔이 있어. 차로 5분이면 돼. 그리로 가.”
애인을 데리고 전국을 떠돌며 모텔탐방을 했다더니, 직진해서 5분쯤 가자 녀석의 말대로 한적해 보이는 모텔이 나타났다. 데스크 직원은 여행가방을 든 나를 보곤 며칠 묵으실 건가요, 하고 사무적으로 물었다. 나는 하룻밤이면 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질문 없이 열쇠를 내밀었다. 녀석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므로, 나 혼자 온 줄 안 모양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 녀석한테 호수를 알려주었다. 이제 막 두 개비 째 담배에 불을 붙였으니, 니코틴을 충전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는 먼저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벌렁 누웠다. 조금 지나자 노크 소리가 났다. 녀석이었다.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그 아줌마 아들이 어딨는지 찾지도 않더라. 돈을 주면, 아들을 내놓으라고 해야 되잖아. 전화했을 때는 그렇게 난리더니…….”
“그래서?”
“뭐?”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우리가 원하던 걸 손에 넣었으면 끝인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왠지 느낌이.”
“잔소리 말고 가방인 열어봐. 맞는지 봐야지.”
 
안에 신문지 뭉치나 벽돌 같은 걸 넣은 거 아니야? 경찰이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거고. 그래서 아줌마가 그렇게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던 건가. 나는 캐리어를 열려다가 말고 이마를 쳤다.
 
“아! 비밀번호도 안 물어봤다.”
 
녀석은 한심스럽게 나를 보더니, “0000으로 해봐.”했다. 보통 무언가를 처음 샀을 때 설정되어 있는 비밀번호였다. 나는 숫자를 모두 0으로 맞추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어지는 소리가 났다.
 
“진짜네! 이것 봐, 열렸어!”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녀석을 돌아봤다. 그런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에 갔나? 하지만 화장실의 한쪽 면은 유리라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였다. 넓지도 않은 모텔 방에 숨을 장소가 어디 있다고. 아니, 숨을 장소보다는 숨을 이유가 없다.
 
“야. 장난치지 말고 나와.”
 
나는 캐리어의 손잡이를 쥔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문득 굳게 닫힌 출입문이 보였다. 창문은 꽉 닫힌 채로 블라인드까지 쳐져 있었다. 나간 흔적은 없다. 애초에 나 혼자 있었던 것처럼.
 
소름이 오싹 돋는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나는 코를 킁킁거렸다. 살면서 처음 맡아보는 악취였다. 나는 시선을 내려서 내가 잡고 있는 캐리어의 손잡이, 빼꼼 열린 그 틈새를 보았다. 어두워서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것이 빳빳한 지폐가 아니라는 점이다. 짧고 검은 실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나는 가방 속을 유심히 보았다.
그것은 실이 아니라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흐익!!”
 
나는 가방을 내팽개치고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가방이 활짝 열려 속이 훤히 드러났다. 부패되기 시작한 사내아이의 머리통이었다. 기이하게 구겨진, 말 그대로 이리 접히고 저리 접혀서 구겨진 신체가 가방의 내부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가방 안에 고여 있던 썩은 피가 흘러나와 카펫을 적셨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가방을 건네던 아줌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친년……!!”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핸드폰을 꺼내 녀석의 번호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받질 않는다. 어딜 간 거야, 이 새끼! 차에서 낌새를 채고 혼자 튄 건 아니겠지?!
 
[여보세요]
“야!! 너 어디야?!!”
[뭔 소리냐 그게. 가만, 너 막내냐?]
“혀, 형님? 왜 형님이 그 녀석 전화를…… 그보다, 어디세요?”
 
[어디긴. 춘섭이 발인 마치고 오는 길이다. 넌 어떻게 된 새끼가 코빼기도 안 비치냐? 그렇다고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문도 안 잠그고 어딜 싸돌아다녀? 건물 밖까지 벨소리가 쩌렁쩌렁 하기에 들어와봤더니 문은 열려있지, 춘섭이 핸드폰이 사무실에 있지. 녀석 핸드폰이 왜 사무실에 있는지 모르겠네…….]
 
“발……인이요? 춘섭이요?”
 
녀석의 이름이 춘섭이었던가?
어떻게 생겼었지? 목소리는 어땠지?
기억나는 거라곤 줄담배를 피우던 것과 누렇게 변색된 손가락뿐이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구역질이 날 것 같다.
 
[그래. 실적 1위, 사기왕 김춘섭이. 불쌍한 새끼. 술 처먹고 찻길에 뛰어들긴 왜 뛰어들어. 쯔쯧]
“아까전만해도 같이 있었는데…… 이게 도대체…….”
[이상한 소리 말고 사무실로 와라. 모여서 한잔 해야지. 그래도 한 식구였는데.]
“…….”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이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먹통이 된 핸드폰을 들고 멍하니 서있었다. 방에는 썩은내가 진동하고, 카펫은 가방에서 흘러나온 피로 범벅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뛰어가서 캐리어를 닫았다. 욕실로 뛰어 들어가 손에 묻은 피를 닦고 타월을 가져와 캐리어 손잡이며 겉을 문질렀다. 닦는 손이 덜덜 떨렸다.
 
“시발……이게 뭐야, 도대체! 뭐냐고!!”
 
귀신에 씐 것도 아니고.
캐리어 밑에 시트를 깔아놓고 피 범벅이 된 카펫을 내려다보았다. 와인이나 음료수 따위를 엎은 자국은 누가 봐도 아니었다. 몇 방울의 핏자국으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법이다.
 
나는 주저앉아 마음을 가라앉혔다. 경찰에 전화해서 사실대로 말하는 상상을 해본다. 경찰은 묻겠지. 어쩌다 그리로 전화하게 된 겁니까? 나는 대답할 것이다. 그게, 장난 전화 비슷한 건데요. 무슨 장난 전화요? 정확히 말씀해보세요. 아들이나 딸을 데리고 있다고 말해서……. 잠깐, 그거 보이스피싱 아닙니까?
 
여기까지 상상한 다음, 나는 머리를 감쌌다. 그 아줌마가 나와의 통화내용을 녹음했으리란 건 불 보듯 뻔했다. 시발, 어쩌다가 재수 없게 그 번호로 전화를 건거야. 이제 좀 인생이 피나 했더니 시궁창도 이런 시궁창 길이 없었다.
 
“이건 어떻게 하지……?”
 
카펫은 뜯어낸다고 쳐도, 캐리어 속의 이 시체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 아줌마는 뭐고,
춘섭이 그 새낀 또 뭐야.
 
 
*
 
 
쿵. 쿵. 쿵.
 
캐리어가 문턱을 넘고 계단을 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부디 가방 속에 있는 것이 새어나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남자가 심드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키를 반납했다. 복도와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에 캐리어를 낑낑거리며 끌고 가는 내 모습이 여실히 녹화되어 있을 테지. 지금 내 모습도. 저 남자의 증언까지 합쳐진다면...경찰이 조사라도 나선다면 체포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여기저기, 이곳저곳에 남겨진 물증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차 트렁크에 캐리어를 싣고 서둘러 운전석으로 갔다. 시체를 뒤에 싣고 달린다니 등골이 서늘했다. 사내아이의 목이 빠져나와 내 목덜미를 물고 늘어질 것만 같았다. 그 애의 죽음은 내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곳에 다다르자 차를 세우고 핸들에 이마를 묻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치미는 토기를 참으며 핸드폰을 꺼내 통화목록의 맨 위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춘섭의 번호였다.
 
[너는 왜 자꾸 이 전화로 전화질이냐?]
예상한 대로 걸쭉한 욕설이 이어졌다.
“형님, 번호 하나만 추적해 주실 수 있으세요?”
[무슨 번혼데. 설마 춘섭이 사고하고 연관된 거냐?]
“그런 건 아니고요. 아무튼, 해주실 수 있으세요?”
 
형님은 “너 수상하다.”고 미심쩍어 하면서도 알겠다고 말했다. 그가 보낸 주소가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문자함에 떠오른 주소를 보며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도로 위로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는 속도를 높이며 거칠게 핸들을 돌렸다.
 
 
*
 
 
감이 서너개 매달린 감나무가 양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 바로 아래로 야트막한 울타리와 대문이 자리잡고 있었고, 훤히 들여다보이는 마당 한 구석에는 아동용 자전거가, 그 옆에는 덩치가 제법 되는 개가 드러누워 있었다. 집집마다 먼 거리를 두고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한적한 동네였다. 그 안에서도 평범한 축에 속하는 단독주택이었다. 수수하고 소박했다.
 
그러나 나는 이 땅값이 금값이라는 이 동네에 이 정도 규모의 주택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재산을 긁어모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재벌은 아니어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부자란 뜻이었다.
 
대문을 흔들자 개가 고개를 쳐들었다. 뾰족한 주둥이에 털이 길고, 큰 귀를 늘어뜨린 종이었다. 동물 프로그램에서 몇 번 보았을 뿐, 종의 이름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놈은 내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면서도 짖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일으켜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내 몸에 묻은 남자애의 피 냄새를 맡기라도 한 것처럼 살갑게 다가왔다. 나는 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대문이 잠겼다면 현관문도 잠겼을 게 뻔했다.
 
나는 2층 창문 불이 켜진 걸 확인하고 울타리 밖에 세워둔 캐리어를 끌어 올렸다. 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지면이 울렸다. 개가 코를 킁킁대며 정신 사납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놈을 내버려두고 캐리어를 끌고 뒷마당으로 걸어갔다. 녹은 눈에 젖은 땅이 밟을 때마다 푹푹 꺼지며 발자국을 남겼다. 잇새로 욕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제길, 여기저기 흔적 투성이군.
 
나는 거실로 이어지는 창문을 하나씩 흔들었다.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으니, 한군데 정도 열어놓았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거실로 이어지는 통유리 중에 하나가 열려 있었다. 나는 길게 드리워진 커튼 속으로 몸을 숨기며 안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닫자 펄럭거리던 커튼이 얌전히 내려앉았다.
 
내 계획은 캐리어만 놓고 나오는 거였다.
 
지문도, 흔적도 지운 가방을 놓고 오면 지들이 어쩔 거야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이상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니,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춘섭이만 같이 있었더라도 그 아줌마를 협박하고 구슬러서 진상을 밝혀냈을 텐데.
나는 소파 옆에 캐리어를 세워두고 얼른 뒤돌아섰다. 이대로 빠져나가야지. 그러곤 마당에 찍힌 발자국을 흙으로 퍼 덮던지 해서 지우자. 그런 다음에 누구든 만나서 알리바이를 만드는 거야.
 
“…….”
 
하얗게 굳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여자애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창문을 열었을 것이다. 여자애는 소리쳐 엄마 아빠를 부르지도 않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창문에서 손을 떼고 돌아섰다.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너희 엄마한테 돌려줄 게 있어서 온 거야.”
“쉿.”
 
여자애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난 직후였다. 2층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무겁고, 느리다. 발을 질질 끌 듯 내려온 것은 그 아줌마였다. 망할 캐리어를 떠넘긴 그 여자.
 
나는 황급히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실루엣이 보이지 않길 바라며, 여자가 거실을 한바퀴 돌고 부엌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부엌에서 냉장고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우유가 담긴 컵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성은아.”하고 딸의 이름을 몇 차례 불렀다. 조금 전의 그 여자애가 모습을 드러내자, 여자가 우유 컵을 내밀었다.
 
“우유가 잠 안 오는데 좋다더라. 마시고 푹 자야지.”
“먹기 싫…….”
“마셔.”
 
여자가 여자애의 턱을 잡고 컵을 입술에 가져다댔다.
 
“어서 마시고 푹 자. 네 오빠처럼. 그래, 그렇게 착하게 굴어야지.”
 
여자애가 마지막 한모금까지 삼키는 걸 확인한 여자가 컵을 개수대에 헹구고 부엌을 빠져나갔다. 여자애는 여자가 사라지자마자 내 쪽으로 걸어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뭐하는 거야! 놔!”
 
힘으로 뿌리치려면 뿌리칠 수도 있었지만, 큰소리를 낼 수 없어서 속절없이 끌려가고 말았다. 여자애가 나를 끌고 간 곳은 자기 방이었다. 분홍색 커튼,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공주풍으로 꾸며져 있었다. 여자애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침대 밑에서 플라스틱 통을 하나 꺼내더니 구역질을 했다. 우유 특유의 비린내와 시큼한 냄새가 방안 가득 퍼졌다.
 
“아까 그 여자……너희 엄마지?”
“새엄마에요.”
 
나는 “설마했더니.”하며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이야기에 새엄마만 등장하면 왜 불행한 이야기가 되고 마는 걸까. 행복하게 사는 가정도 물론 있을 텐데 말이다. 남매와 아빠가 사는 가족에 나타난 여자, 그녀는 엄마가 되지만 제 자식이 아닌 아이들이 눈엣가시로 보였을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아직 젊다. 요즘 늦둥이를 낳는 가정도 심심찮게 보이는 만큼 중년의 임신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아니면 어딘가에 숨겨놓은 제 자식들을 데려오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는 여자의 가면처럼 하얗던 얼굴을 떠올렸다. 무서운 동화 속 새엄마나 마녀의 모습을 그 안에 대입시켜본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여자애가 나를 침대 뒤편으로 밀쳤다. 나는 밀려남과 동시에 몸을 최대한 작게 말았다. 타이밍 좋게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성은아. 성은아, 자니?”
“……아직, 아직 안자요.”
“일찍 자야지. 잠이 안 오면 우유 조금 더 줄까?”
 
여자는 이불로 기어들어가는 딸을, 저승사자처럼 지키고 서서 내려다보았다. 우유 얘기가 나오자 여자애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잘게요……불 좀 꺼주시겠어요?”
 
여자는 불을 끄고도 한참 문 앞에 서서 여자애가 잠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여자애가 낮게 코를 골자 그제야 만족스런 얼굴로 방에서 나갔다. 여자애는 여자가 나가자마자 침대 아래로 뛰어 내려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자는 아직 소파 옆에 놓아둔 캐리어를 발견하지 못한 눈치였다. 내 신경은 온통 캐리어로 가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당장 이집에서 도망쳐야 했다.
 
여자애가 다급하게 나를 붙잡았다.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누가? 네가?”
 
여자애가 고개를 흔들었다. 겁에 질린 눈은 문 밖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여자애의 엄마가 있을 터였다.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왜? 하고 물었다.
 
“오늘. 늦어도 내일이면 아저씨가 패거리를 끌고 들이닥칠 거라고 했어요. 자기가 지은 죄가 있으니까 경찰에 신고는 못할 테고, 자기한테 복수하러 올 거랬어요.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어요.”
 
머리가 띵했다. 아줌마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셈이었다. 여자애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아줌마의 계획대로 함정에 빠졌을 터였다.
 
“그래서?”
“그러니까 오늘밤에 저도 오빠 옆으로 보내준다고 했어요.”
“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되질 않았다. 여자애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원래는 오빠가 죽은 날에 실종신고를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경찰서에 가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어요. 오빠를 데리고 있다고.”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네 아들을 데리고 있다…….” 춘섭과 내가 한 전화였다. 정확히는 내가 건 전화였지만.
 
이제야 아줌마가 그토록 애달프게 아들을 돌려달라고 울고불고 했던 이유를 알겠다. 이미 짜놓은 각본이었다. 아들은 이미 죽은 상태였을 테고, 그 시체를 처리할 방도를 몰라 실종신고를 하려던 찰나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보이스피싱. 사람을 낚는 전화.
 
미끼를 덥썩 문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남매의 새엄마가 낚시꾼이었고, 나는 물고기였다.
 
“제기랄……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핸드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누르려다가 망설였다. 도움을 청할 곳은 함께 사기를 치던 그들뿐이다. 아무리 자기 밑에 소속된 패거리라고 해도, 이렇게 큰 사건에 얽힌 이상 모른 척 할 게 뻔했다.
 
“네 아빠는? 알고 있어?”
“아빠는……내 말을 믿지 않아요.”
 
드르륵…….
무언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저를 데리고 가주세요.”
“뭐?”
“제가 증언할게요.”
 
나는 여자애를 훑어봤다. 고작 열몇살, 중학교도 올라가지 못한 어린애의 말을 누가 믿어줄까. 그것도 제 부모가 오빠를 죽이고 자기도 죽이려고 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새엄마가 아저씨랑 통화한 걸 녹음했어요. 어디에 뒀는지 알아요.”
“네 말이 다 거짓말이고……아니, 거짓이든 진실이든, 네 부모가 납치당했다고 신고라도 하면? 나보고 진짜 납치범이 되라고?”
“제가 죽으면 진실은 영원히 묻혀요. 아저씨는 저를 죽인 죄까지 뒤집어쓰게 되는 거예요.”
“알겠다. 알겠어. 우선은, 이 집을 빠져나가자.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으니까.”
 
조금 전부터 드르륵 거리며 바닥을 끌고 다니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나는 창문으로 다가섰다. 2층이긴 했지만 그리 높지 않은 높이라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어 보였다. 정상적인 출구로, 나 혼자도 아니고 여자애까지 데리고 몰래 빠져나가기는 힘들었다. 계단에서든 1층에서든 마주치면 끝장이었다. 나는 다시 높이를 가늠했다. 여자애한테는 너무 높았다.
 
나는 시트를 찢어서 그 중 한 가닥을 여자애의 허리에 묶었다. 가벼운데다가, 몇 미터 되지 않으니까 정교하게 밧줄을 만들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여자애는 떨지도 않고 창턱에 걸터앉아서 내가 내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냐?”
“다 보여줬어요. 다음은 네 차례니까 두 눈뜨고 똑바로 보라고…….”
 
뒷목이 뻣뻣하게 당겨왔다. 참 대단한 여자였다.
나는 여자애를 아래로 내리기 전에 문득 생각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너, 춘섭이라는 아저씨 알아? 김춘섭이라고,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고.”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이, 그것도 어린애들이 김춘섭 같은 사기꾼하고 얽힐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 새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발인을 마치고 왔다면 죽은지 사나흘을 됐다는 뜻이었다. 며칠 동안 그와 내가 둘이서 사무실을 지키지 않았던가.
 
“얼른 내려가. 거기 조심하……윽!”
 
무언가가 뒤통수를 내리쳤다. 돌아보기도 전에 누군가의 손이 내 등을 밀었다.
와장창!
몸이 튕겨나가는 게 느껴졌다. 눈 옆으로 유리조각이 불꽃처럼 번쩍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곤두박질쳤다. 우지끈,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를 끝으로 기억이 끊어졌다.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
 
 
눈을 뜨자마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얻어맞은 뒤통수도 뒤통수였지만 옆구리 쪽의 통증이 더욱 심했다. 손이 뒤로 묶여 있어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짙은 피냄새가 풍겼다. 아마 깨진 머리의 상처나, 배에 난 상처에서 흐른 피인 모양이었다.
 
“네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 너는 왜 항상 속을 썩이니? 응? 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냔 말야.”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감기는 눈꺼풀에 겨우 힘을 주고 주변을 살폈다. 내 근처에 캐리어가 쓰러져 있었고, 그곳에서 몇발자국 떨어진 곳에 여자애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굴은 피투성이었다. 여자는 매서운 손으로 여자애의 따귀를 몇 번 더 때리더니,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캐리어를 걷어찼다.
 
“이 집 꾸미는데 얼마나 공 들였는지 알아? 다 소용없게 됐잖아!”
 
여자의 입술 끝에서 담뱃불이 새빨갛게 불타올랐다. 나는 문득 낯설지 않은 흰색 플라스틱통들을 발견했다. 휘발유통이었다. 눈앞이 아찔하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불을 지르려는 것이다. 여자애가 고개를 돌리다 내가 눈을 뜬 것을 발견했다.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현관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온 사람은 머리가 막 희끗해지기 시작한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막 퇴근한 듯한 차림새였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고약한 냄새에 코를 쥐어막더니, 거실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우뚝 멈춰섰다.
 
“당신…….”
 
그는 피투성이가 된 딸을 내려다보던 눈으로 그 앞에 선 아내를 쳐다봤다.
 
“당신이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잖아.”
“미안해요. 거의 다 끝났어요. 내가 알아서……”
“알아서 한다고? 하! 저 남자는 뭐야? 얘는 이 꼴이 또 뭐고!”
 
그가 딸의 어깨를 거칠게 돌려세웠다. 얼굴 가득한 폭력의 흔적을 하나 하나 가리키며 열을 토해냈다.
 
“애 몸에 흠집 내지 말랬지! 제 자식 학대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게 할 셈이야? 의심조차 사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잖아. 소문이라도 나봐. 교수인 내 체면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글쎄 성은이 쟤가 저 남자랑 도망치려고 했단 말예요. 제 오빠처럼 얌전히 죽으면 얼마나 좋아.”
“당신!”
 
“아빠아…….”
 
남자가 말을 멈추고 제 소맷부리를 잡은 딸을 내려다보았다. 여자애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보는 내 마음이 아플 정도로 서글픈 울음이었다. 아빠가 믿어주지 않는다던 여자애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새엄마의 폭력과 살인을 믿어주지 않은 게 아니라, 알면서도 내버려두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공범이었다.
 
그는 무릎을 굽혀서 딸애와 시선을 맞추고는 다정하게 말했다.
 
“아빠가 미안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2층으로 올라갔다. 당신이 알아서 해, 하는 말을 남겨두고.
여자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았다. 나는 아직 정신을 잃은 척 눈을 꾹 감았다. 가까이 와서 확인하는 듯하더니, 점점 멀어졌다. 남편을 쫓아 올라간 모양인지 계단을 밟는 소리가 이어졌다.
 
“일어나봐. 지금 도망쳐야해.”
 
낯익은 목소리였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기, 김춘섭! 너!”
 
감쪽같이 사라졌던 춘섭이 내 옆에 서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형님이 네가 죽었다고, 발인을 마쳤니 하는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우선 나 좀 풀어줘. 그리고 어서 경찰에!”
“나는 못 풀어줘. 성은아, 네가 이리 와서 도와줄래?”
 
폭풍이라도 몰아친 듯한 거실 한복판에 서있는 춘섭의 모습이 낯설었다. 너무나 말끔했다. 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그의 어깨와 머리에는 눈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신발에는 흙조차 묻어있지 않았다.
 
여자애가 서툰 손놀림으로 포박을 풀어냈다. 나는 풀려나자마자 인상을 쓰며 춘섭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나는 눈을 홉떴다.
 
손 안에 잡힌 춘섭의 몸이 점점 작아지더니, 소년의 몸이 되었던 것이다.
  세월의 풍파를 간직한 사기꾼의 사나운 얼굴이 곱상한 사내아이의 얼굴로 변했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여자애가 춘섭을, 아니 소년을 와락 끌어 안았다.
 
“오빠…….”
 
나는 캐리어 속에서 부패하고 있던 소년의 이목구비를 떠올렸다. 그러나 팽창한 살덩이만 생각날 뿐이었다.
 
“오빠가 구하러 올 줄 알았어.”
 
나는 안고 있는 남매를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우연이 아니었던 거야. 처음부터 춘섭이인 척 하면서…….”
 
남자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동생의 품에서 나오며 말했다.
 
“지금 도망쳐야해. 새엄마가 아빠를 설득했어. 둘이서 같이 내려올 거야.”
“녹, 녹음한 파일이 있다고 했잖아.”
“소용없어.”
 
그가 고개를 저으며 한켠에 놓여 있는 휘발유통을 가리켰다.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을 거야. 형이 연루됐었다는 증거도, 내가 새엄마한테 살해당했다는 증거도…….”
“그럼 괴한한테 습격당한 걸로 끝난다는 거야?”
“글쎄. 그것까진 나도 모르겠어.”
 
그때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모습을 보인 것은 아이들의 아빠였다. 그의 손에는 골프채가 쥐여져 있었다. 그것이 무슨 용도인지는 뻔했다. 그는 서있는 나를 보고 놀란 듯하더니, 내 옆에 있는 남자아이를 보고는 숨을 멈췄다.
 
“마, 말도 안돼…….”
 
그의 아내가 뒤따라 내려오더니, 곧장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몸이 뒤로 휘청거렸다.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휘발유 통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여자는 내 배에 올라타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며 등이 휘발유에 젖어가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불씨만 당기면, 내 몸은 삽시간에 불길에 사로잡힐 터였다. 그리고 그 역할은 남자의 몫이었다.
 
여자가 성난 목소리로 “뭐해요!”라고 남편을 재촉했다. 그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골프채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첫 번째 타깃은 가까이 있는 자신의 딸이었다. 휘잉, 힘껏 휘두른 골프채가 빗겨나갔다. 여자애가 재빨리 몸을 숙이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여자를 떼어놓기 위해 허우적거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머리쪽의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눈꺼풀이 가물거렸다. 막 눈이 감기려는 순간, 무슨 일인지 여자가 손을 놓았다.
 
“쿨럭! 쿨럭!”
 
나는 기침을 쏟아내며 여자의 몸을 밀쳐냈다. 여자는 힘없이 내 위에서 밀려나 옆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자신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었다.
 
“너…….”
 
여자애였다. 여자애가 부러진 유리조각을 들고 있었다. 나머지 조각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는 뻔했다. 여자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남자가 황급히 달려와 상처를 압박했지만 그럴수록 유리가 더욱 깊이 파고들 뿐이었다.
 
남자가 분노로 파랗게 물든 눈으로 우리를 노려봤다.
나는 여자애를 얼른 잡아당기며 동시에 뒷걸음질 쳤다. 남자가 아내의 피에 흠뻑 잠긴 골프채를 다시 집어 드는 모습이 보였다. 손에 서늘한 유리창의 촉감이 느껴졌다. 나는 얼른 문을 열고 여자애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곤 뛰어오는 남자를 향해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집어 던졌다.
 
“으아악!!!”
 
유리 재떨이가 남자의 왼쪽 눈에 명중했다. 그가 눈을 감싸며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얼른 돌아서서 뒷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여자애는 개를 꽉 끌어 안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한번의 손짓에 깨져나갈 것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남자가 입술을 틀어 올리며 골프채를 높이 쳐들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유리조각이 쏟아지지도, 파열음이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다시 눈을 뜨고 보니, 남자가 골프채를 든 자세 그대로 멈춰있었다.
남자아이가 그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등에 매달려서 양 팔을 꽉 붙들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에 끌려가듯 점점 뒤로, 뒤로 뒷걸음질쳤다. 일그러진 입술이 최대치로 벌어져 비명이 터져나오려는 순간, 그의 발밑에서 불꽃이 터졌다. 작은 불꽃은 바닥에 쏟아진 휘발유에 옮겨 붙어서 가구를 삽시간에 집어 삼켰다.
 
남자는 보이지 않는 것에 가로막혀 붙잡힌 채로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산 채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끔찍한 광경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여자애를 찾았다. 여자애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기절했는지,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지만 움직임이 없었다. 나는 그 작은 몸을 안아 올렸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지만 이미 어두워진 하늘에 섞여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이웃집을 보았다. 불이 난 것을 알아차리고 소방차가 도착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어두운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워뒀다.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고 걸어야 했다.
 
춘섭인지, 소년인지 모를 희끗한 형체도 함께였다. 나는 품에 안긴 여자애를 보며 입을 달싹였다.
그는 내 질문을 알고 있다는 듯이 설명했다.
 
“동생한테 보험금이 돌아갈 거예요. 원래는 아빠가 우리를 죽이고 받으려던 거였지만. 서울에 이모가 살고 있어요. 거기까지만 데려다 주세요.”
 
영혼은 그 힘이 다한 듯, 한낮의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마친 정신을 차린 여자아이가 꼬물거리며 내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아이를 내려놓고 보니 내 꼴이 말이 아니었다.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아이가 얼른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절뚝……절뚝…….
 
여자애의 작은 어깨가 나를 부축했다. 옆구리에 박힌 유리조각이 깊이 파고들었으나, 비명을 삼키며 서둘러 그곳에서 벗어났다. 곧이어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이며 코팅된 가구들이 타오르자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으나, 여자애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어서 가요.”하며 나를 재촉했다.
 
나는 춘섭의 모습에서 소년의 모습으로 변하던 영혼을 떠올렸다. 죽어서나마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나 같은 사기꾼한테 찾아온 오빠의 영혼을. 눈가가 시큰거렸다. 나는 여자애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우리가 탄 차가 소리 없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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