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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고 싶은데, 제가 위로 받아도 되는건지 모르겠네요...
게시물ID : gomin_6209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WJlZ
추천 : 6
조회수 : 28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3/07 20:03:51

전 일단 약국에 근무하는 직원이구요..

어찌어찌 하다보니 3년이나 일하고 있네요.


얼마전에 중학생 정도 되 보이는 남학생이 폐의약품을 수거해 달라고 대량의 조제약을 가져왔어요.

알았다고 받았고, 뒤에가서 수거함에 풀어서 넣던 도중 봉지에 써진 성함이 아주 익숙한 분인걸 알았습니다.

저희 약국에 한달에 한번씩 오시는 산업재해 후유증 환자분이셨어요.

처음에는 왜 약을 안드시고 이렇게 많이 남기셨지.. 그냥 의아해서 약사님께 말씀드렸죠.

약을 안드시고 이렇게 많이 버리신다고.

그런데 약사님이 보시더니 이상하다고 하시는거예요. 최근에 조제해가신 약 같은데 왜 버리시냐고..

그래서 기분이 이상해서 그 분 환자기록을 조회해 보았어요.

사망한 사람의 경우 사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과 의료보험이 말소되어서 소멸일자가 뜨거든요.

그런데 아직 살아계신걸로 뜨길래... 아 잘 못챙겨 드셨구나, 했죠..


그러다가 오늘 장기약 처방 환자들 리스트 정리중에 저번달에 그분이 안오신걸 알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수진자 조회를 해 보았습니다.


돌아가셨더라구요... 21일에 의료보험이 소멸되었다고 적혀있었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약사님도 한참을 멍하셨구요...


약국에 3년을 일하면서 사실 돌아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봐왔어요.

슬프긴 했지만 저와 혈연지간도 아니고 그냥 안타까워 하고 말았는데

이분은 막 눈물이 나는거예요...

진짜 창고 들어가서 한참 운 것 같아요. 


그분.. 몸은 불편하셨지만 밝고 순수한 분 이셨어요.

제가 작은거 하나 챙겨드리면 금방 웃으시며 어눌한 말투로 고맙습니다를 연발하셨고,

항상 인사도 잘 받아주시고..

사실 약국은 아픈분들이 오시는 곳이라서 사소한 일에도 저에게 괜한 짜증을 내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은 다른분들보다 더 많이 아프시고 더 많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항상 웃어주시고.. 

저에게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지만 그 일에대한 자부심이나 봉사에 대한 생각도 다시한번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얼굴을 보면 저까지 행복하게 만들어 주신 그런분이셨어요.


요즘들이 부쩍 밝아진 얼굴에 걸음이나 말투가 더 또렷해 지셨길래 많이 좋아지셨어요! 라고 했더니

그러냐고 잘됬다고 아이처럼 웃으셨던 분인데


버스타고 퇴근하면서도 뒷자리에 앉아서 챙피한줄 모르고 한참을 울었네요..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는데.. 제가 더잘해드리지 못한게 너무 아쉽고 죄송한데..

위로받고 싶은데도 이상하게 제가 위로 받으면 안될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복잡하고 슬픈 기분입니다..


고게에 글 쓰는건 처음이지만,, 그냥 아무도 안봐주셔도 이렇게라도 제 마음을 여기에 남기고 싶어요.



아저씨! 성함을 말하면 실례가 될까.. 제가 처음으로 아저씨 라고 불러요..

아저씨께서는 제가 아저씨게 친절하게 대해드린게 고맙다고 하셨지만

전 오히려 그 정 반대예요.

다른 환자분들 때문에 아프고 상처받은 속상한 마음을 아저씨로 인해 많이 치료 받았고

아저씨를 만난 꼬박 2년 넘는 시간동안 아저씨가 행동으로 저에게 가르쳐주신게 참 많아요.

괴팍하고 괄괄한 성격나쁜 저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신것도 아저씨 덕이 큽니다..

아저씨, 무슨 사고로 그런 병을 얻으셨는지. 실례가 될까봐 여쭤보지못했습니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아도 아저씨가 얼마나 아프신지, 약의 갯수만 보아도 아저씨가 얼마나 힘드신지...

마음속 깊이 빨리 쾌유하시길 빌었고, 좀 나아지셨을때는 정말 딸처럼 기뻤어요.

그런데 제가 이 약국을 그만두게 되어서 아저씨를 그만 보게 되기 전에

아저씨가 이 세상을 등져버리신게.. 아직도 믿기질 않습니다.

아저씨.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 계시죠?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항상 평안하셨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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