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교통사고만큼 많았던게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호환이었다고 합니다. 호랑이와 범이 얼마나 많았던지 멧돼지만큼 흔했던 산짐승이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호랑이 수가 많아진 건 고려시대때 불교사상에 따라 호환을 당하여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복수를 하거나 살생을 하지 않은게 한 원인이었다고. 그래도 고려시대때는 조선시대때만큼 호환이 극심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서로의 영역을 어느정도 지켰다고.
하지만 조선에 들어서며 우리나라는 농업중심국가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그래서 습지와 평야지대를 적극적으로 개간했고, 산을 개간해 밭을 만들며 야생동물들과 크게 부딪혔다고 합니다. 그 중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일이 극심해서 나라의 큰 골치거리였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호환기록만 해도 700건이 넘는데 특히 영조대에 이르면 호환의 피해가 가장 극심해 호랑이에게 먹혔다는 기록만 100여건에 이른답니다.
영조 10년에는 매일매일 호환에 관한 장계가 전국에 걸쳐서 올라왔고, 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죽은 자의 총계가 1백 40인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영조 11년에는 영동지방에서만 물려죽은 사람이 40인에 이르렀고 급기야 영조 27년에는 경북궁안까지 호랑이가 들어왔다고 하네요.
호랑이가 너무 많아서 궁궐에 호랑이가 들어오는 일은 종종 있었는데. 인왕산에 사는 호랑이가 내려와 궁궐에 새끼를 까는 일도 있었다고...물론 서울장안에서 어슬렁거리며 사람을 물어가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고 합니다. 서울이 이모양이니 지방의 피해는 얼마였겠습니까. 또한 가축의 피해도 무시못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조선시대때 사람들은 호환이 두려와 산을 오르내리는 것도 사람들끼리 몰려서 다니고, 밤에는 절대 산을 타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웃마을에 드나드는 것도 조심스러웠다고. 특히 한국의 호랑이는 피맛을 알아버려 인간을 사냥감으로 생각했고 성격도 포악해 민가에 들어와 방문을 부수고 사람을 물어가는 일도 빈번했다고 합니다. 강원도에서는 호환으로 마을이 사라져버린 곳도 있었다고 하는데, 특히 강원도에 화전민으로 숨어들어온 사람들의 피해가 극심했다고 합니다.
호랑이에게 죽으면 창귀가 된다 하여 창귀에 대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특이한 형태의 돌무덤을 만들었습니다.뼈를 화장한데다 돌을 쌓고 그 위에 시루솥을 뒤집어 얹고 칼이나 물레를 꽂아뒀는데 이걸 호식총이라 부르며 근처에 다가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무덤이 전국 산을 통틀어 몇천개가 된다고 합니다. 남아있는게 이정도니 실제 피해는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고 봅니다.
[호식총]
조선에서는 고려때와 달리 호환에 적극적으로 싸웠는데. 호랑이 사냥부대인 '착호군'을 만들어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사냥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특수정예군으로 위세가 하늘을 찌를정도였다고 하네요. 조선초기에는 40명이던 착호군이 나중에는 400명이 넘어가니 이들의 특권의식도 대단해 술먹고 자신이 착호군이라며 행패를 부리는 일도 빈번했지만 포도청과 군관도 착호군은 함부러하지 못했다합니다.
하지만 착호군이 아무리 호랑이를 잡아도 호환은 끊임없이 발생했고 나라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됩니다. 노비가 호랑이를 잡으면 노비를 면천해주고 평민이 호랑이를 잡으면 세금을 평생 면제해준다고 나라에서 발표를 하니 너도나도 호랑이를 잡아보겠다고 오히려 피해를 키웠다고.
호랑이 사냥에 포상금이 두둑하니 호랑이포수들 숫자도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의 호랑이포수들은 실력도 뛰어나고 용맹하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온 사냥꾼이 한국의 포수들이 구식총으로 호랑이 잡는 걸 보고 굉장히 놀랐다고 합니다.
나라의 여러 노력으로 호랑이 피해는 점차 줄어들고, 늘어나는 개간에 본래 늪지대와 평지에 살던 호랑이들은 쫒겨쫒겨 전라도 섬지방이나 아주 깊은 산속, 백두산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전라도 진도에는 특히 호랑이가 많이 살아 집집마다 진돗개를 키우고 부엌에 개구멍을 만들어 호랑이가 민가로 내려오는 것을 대비했다고 합니다. 진돗개가 용맹했지만 호랑이 앞에서는 앓는 소리만 냈다고 해요. 너무 무서워서. 진도에 호랑이가 많이 살때는 10마리도 넘게 살았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백두산으로도 많은 수가 밀려올라갔는데 백두산에 숨어든 호랑이를 사냥하기 위해 백두산 인근에는 포수들이 아주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시대에 이르자 조선인에 대한 총기 도검 금지령을 내려 이들의 총과 검을 모두 수거해가 버리는데, 이것때문에 줄어든던 호랑이 숫자가 늘어 호환피해가 다시 극심해졌다고 합니다. 특히 호랑이 수가 줄자 늑대때가 창궐했는데 포수가 제 역할을 못하자 피해가 어마어마했다고. 그때서야 부랴부랴 일제는 포수를 고용해 대대적인 호랑이 토벌에 나섰다고 합니다. 안그래도 줄어들었던 호랑이 숫자는 일제에 이르러 씨가 마르게 됩니다.
한편 일제에 총을 빼앗겨 일자리를 잃게 된 포수들은 이 횡포에 분개해 의병전쟁에 투신하게 됩니다. 호랑이포수 출신의 가장 유명한 독립운동가가 홍범도 장군과 안중근의사죠. 홍범도 장군은 호랑이 포수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끌었고 안중근 의사도 어릴때부터 포수들을 따라 호랑이사냥을 다닌걸로 유명합니다.
호환사례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야기로 전해져내려오다 6.25 전쟁을 끝으로 남한의 호랑이는 멸종상태로 보입니다. 가장 최근의 호환기록은 70년대에 동물원에 술먹고 들어가 호랑이에게 팔을 먹힌 남자가 있겠네요...=_=
여기서부터 진짜 공포.
호랑이 무서운걸 모르는지 민족의 정기를 부활시켜야 하니, 뭐니 하며 대한민국에 호랑이를 복원하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리산 반달곰 방사계획처럼 호랑이를 방사해 번식시켜 호랑이를 복원하자는 말도 안되는 계획이죠. 이 계획은 민족의 영물을 복원한다느니 하는 식으로 호응을 받았으나 다행이도 엎어집니다. 하지만 연천군에서 방사계획을 자체적으로 추진하다 다행이 이것도 말아먹은 걸로 알고 안심했습니다. (겨울철 군인들 호랑이에게 물려갔다는 뉴스 볼지도...) 그런데 이번에는 경북 봉화에서 호랑이를 풀어 노루 사슴처럼 자유롭게 뛰어놀게한다는 프로젝트를 2014년까지 완료한다고 그럽니다. 제발 이런 짓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호랑이는 민족의 영물도 아니고 산신도 아닌 사람 물어가는 산짐승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등산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이런짓을 하다니. 진정 공포게시판에 어울리는 글 아닙니까? 호랑이는 민족불문하고 배고프면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공평하게...
[해인사 감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