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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 짼 썰 푼다
게시물ID : military_298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리한
추천 : 11/5
조회수 : 151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9/04 23:59:01
때는 바야흐로 2005년 4월 중순.

아마도 상병이 꺾인 뒤였습니다.


중대 군종병이었던 저는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사단 법당으로 한달정도 되는 파견을 가게 됩니다.


이 파견은 매우 꿀빠는 파견으로써.. 

4박5일 휴가증까지 나옵니다. (부사단장 명의로 나왔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불교 군종을 내려받기위해 일병때 전역을 앞둔 옆소대 선임 군종병한테 얼마나 샤바샤바했던지..ㅠ)

사단 영내에 있는 각 부대에서 군종병들이 모여서

한달내내 먹고자고놀고 하면서 연등행사를 준비하게 됩니다. (대략 14~15명쯤 됐던걸로 기억합니다.)

20120226210053.png
( 이미지 출처 - http://www.s20.co.kr/s20/empathy/UTHSE4002.jsp?REGT_SEQ=2838 )

이렇게 꽃잎을 2주가량 엄청나게 만들게 됩니다.

꽃잎은 끝을 돌돌말아서 촛농을 묻혀 굳히면 저런 모양이 나옵니다.

하지만 만들때 조심해야되요 (나중에 대참사가 일어남)


촛농 묻히다가 꽃잎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불타버려요.

그걸 놓쳐서 다른데 옮겨붙으면.. 수십장이 순식간에 날아갑니다 ㄷㄷ


저렇게 만든 꽃잎으로 보살님들 나눠드릴 종이컵 연꽃을 비롯해

연등도 만들고..

코끼리(!!)도 만들고..

용(!!!)도 만듭니다..

뼈대는 이미 있구요, 창호지 바른 다음에 밀가루 풀로 꽃잎을.. 일주일에 걸쳐서 붙이면 됩니다.

지겨워서 죽을것 같죠.


저 작업이 끝나갈때쯤 사단 영내를 돌아다니며 연등을 설치할 기둥을 박기 시작합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연등을 달죠.

초파일 까지는 밤마다 불을 켜는데, 불이 잘 들어오는지 확인을 하고.. 전구 나간건 없는지 매일 매일 체크합니다.


그러다가 중대에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대에서 유격을 떠난다구요. 석가탄신일 다음날부터!! (나중에 대참사가 일어남)
(아마 제 기억엔 2005년 석가탄신일은 일요일이었을 겁니다.)

저는 큰 갈등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꿀을 빨데로 빨다가 갑자기 유격이라니! 토나오는 유격이라니!


짬 없을때 뛰다가 죽을뻔했던 작년 유격의 추억이

대뇌에 전두엽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루하루 걱정만 쌓아가며 나머지 준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제 석가탄신일이 되었습니다.


구경온 중대원들한테 위문품좀 챙겨주고

주차관리좀 하면서 시간을 때웠습니다.


대대 군종병 네명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들어갔습니다.

중대로 복귀해 행군준비를 해야할지, 버티는게 좋을지 고민하다보니.. 어느덧 다음날이더군요.
(원래 파견은 행사 뒷정리까지 포함해 월요일까지였습니다.)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행사 정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데 저 멀리 유격장으로 뛰어가는 중대원들이 보이더군요.

밤새 행군하고 오침한 뒤에 기초유격을 하러 뛰어가는 것이겠지요.

(유격장이 사단 바로 뒤에 있어서  아침에 구보로 유격장 갔다가 저녁때 구보로 막사 복귀후 취침합니다.
텐트는 안쳐도 되서 편할지 모르겠지만 구보 거리가 꽤 됩니다..)

그런 중대원들을 뒤로 한 채, 저는 다른 군종병들과 함께 영내로 나가서.. 찜질방을 갔다가.. 소주 한잔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하루는 넘긴것이지요.


또 갈등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대대 군종병 네명이 다시 모였습니다.

다른 대대 군종병들이 빨리 복귀해서 유격이나 뛰라며 압박을 줍니다.

고민합니다. 토론합니다. 대화합니다.

혼자 겪는 어려움 보다는 여러명이 함께 나누는 어려움이 헤쳐나가기는 더 쉬운 것이겠지요.

초파일 파견 전통에 따라.. 파견 종료후 법당에서 바로 휴가출발.. 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대 및 중대 보고..를 어찌할 것이냐.. 에 대해서

전원 만장일치로.. 



보고따윈 하지 않고 바로 떠난다! 이건 사단 휴가증이니까! 감히 일개 대대에 보고할 필요가 있느냐!!



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보고하러 갔다가 유격을 강제로 뛰게 될 확률이 매우매우 높았으니까요.

파견 끝나고 휴가가는건 소대원들이 알고있으니 보고해줄거란 계산도 있었습니다.

최소한 탈영처리는 안될거라는 믿음이었죠.


어쩄든 저희 대대 군종병들에겐 복귀후 타게될 갈굼보다 유격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혹자는 육체의 고통이 정신의 고통보다 낫다고들 하지만

우리에겐 육체의 고통을 심하게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의 궤변일 뿐이었습니다.

진짜 육체의 고통이 심해지면 정신적 고통도 생기는 법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짬이 제일 많았던 저는.. 병장이 코앞이라 별로 갈굴 사람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선동을..)


그렇게.. 중대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휴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중대에 연락도 취하지 않고.. 열심히 놀았습니다.

하루하루 복귀날이 다가올수록 부담감은 더욱 커져갔지요.


어쨌든 휴가를 즐겁게 보내고 복귀를 했습니다.

저희 소대장님이 근무를 서고 계시더군요.

저를 보자마자



"야이 씹x끼야, 너 ㅅㅂ 미쳤어?'

로 환영해 주시더군요.


저는 군장을 쌌고.. 행정반 앞에 엎드려있다가.. 연병장을 돌았습니다..


그게 처벌의 끝이었어요.

하핳하하하하ㅏㅎㅎ하ㅏ하ㅏ 기뻐라


그리고...
11월초에 B조 유격이 잡혔습니다...........
















역시 쨌습니다.


A조때 봉와직염으로 유격을 쨌던 후임이 행군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저는 말년휴가를 떠났습니다. 유후~

그리고 건강하게 전역했답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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