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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타쿠 후임.
게시물ID : humorbest_6223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111
조회수 : 8157회
댓글수 : 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2/03 15:41:28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2/03 14:14:50

처음 녀석을 만난 건 부대로 전입온지 한달이 채 지나가기도 전이었다. 나보다 한달 후임이었던 녀석을 처음 보았을때부터

범상치 않은 놈이란 걸 느낄 수 있었고 역시나 내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녀석은 흔히 말하는 오타쿠였고 그중에서도 아주

악질이었다. 그리고 내가 오타쿠에 대해 안좋은 인식을 가지게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현역으로 왔는지 의심이 가는 정신세계와 개념을 가지고 있던 녀석을 고참들 역시 곱게 볼리 없었다. 일단 말투부터가

남달랐다. 자꾸 자기 입으로 이상한 효과음을 내는 것이었다. 움직일때 입으로 휙휙,슉 이런소리를 냈고 그럴때마다

나는 손발이 오그라듬을 느꼇다. 그 버릇은 고참들이 아무리 얘기를 해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고 결국 열이 받을대로 받은

고참이 한번만 더 휙휙,슉 이지랄 하면 너를 퍽퍽 때려줄거야. 라며 녀석을 갈궈댔고 실제로 몇번인가를 퍽퍽 때려준 후에야

녀석의 말투는 고쳐졌다. 하지만 언제나 뭔가 나사빠진 행동으로 우리는 항상 긴장해야만 했다.

 

대대전술 훈련이 있던 날이었다. 그날 밤 매복훈련이 예정되어 있었고 하필 그녀석과 한 진지를 쓰게 된 나는 제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훈련이 끝나기를 기도했다. 산 중턱에 진지를 파고 들어가 있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모기가 극성이었다.

보급으로 나온 바르는 모기약을 챙기라고 훈련 전에 미리 얘기를 했었는데 혹시 또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모기약 챙겼냐고 물어보니 이번엔 왠일로 잊지않고 챙겨온 것이었다. 그 후임에게 먼저 바르고 달라고 얘기하고 잠시 후 모기약을

건네받기 위해 고개를 돌린 나는 기절할 뻔 했다. 달걀귀신 처럼 맨들맨들 광이나는 후임의 얼굴에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도대체 뭘 발랐기에 얼굴이 저모양이 된건지 랜턴을 켜서 나에게 전해준 모기약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녀석이 가져온건

총기 수입할때 쓰는 윤활유였다. 이 마귀같은 새끼.. 모기잡을때 wd뿌릴 새끼.. 오만 생각이 다들었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얼굴에

기름칠을 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 그녀석을 보며 얼굴을 닦아주고 모가지를 조여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녀석은 분기마다 한번씩 대형 사고를 치고는 했다. 그 시작은 사단장이 격려차 부대를 방문했을 때부터였다. 부대를 정비하고

사단장이 방문해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방문의 하일라이트인 사단장과의 식사시간이 다가왔다. 하필 멀지않은 자리에서

밥을 먹게 된 나는 긴장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귓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밥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갈때 쯤 사단장은 넌지시 우리에게 애로사항이 없는지 물어왓다. 요즘 흔히 말하는 답정너의 군대버전인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에 군생활이 너무 행복합니다. 말뚝박고 싶습니다. 사단장님 사랑합니다. 이런 입에발린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런 말들이 오가고 있을 때 한참동안 말이 없던 그녀석이 입을 열었다.

 

"김치가 너무 맛이 없습니다."

 

한반도를 관통하는 북서쪽 시베리아 대기압의 영향인지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고 중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굳은 얼굴로 사단장이 떠나고 얼마 후 부대에 피바람 아니 양념바람이 불어닥쳤다. 실제로 업체가 바뀐건지

아니면 기분탓인지 김치가 맛있어진 느낌이었고 흔한 군대의 답정너 퇴치를 몸소 실천한 그녀석은 졸지에 군납업체를 쥐고 흔드는

큰손이 되어버렸다.

 

거꾸로 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도 그녀석도 짬을 먹고 윗 고참들이 하나둘씩 제대하기 시작했다.

항상 주눅들어 지내다가 고참들이 하나 둘 제대하면서 녀석은 슬슬 고삐풀린 망아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랑은 한달차이 밖에 안나는데다

원래 후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터치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일단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후임중 한명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그녀석과 같이 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한창 근무를 서고 있는데 녀석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무슨 마인부우 집같이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이내 듣기싫은 멜로디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건 오카리나

라는 물건이었다. 개인적으로 하모니카에 안좋은 추억이 있어 입으로 부는 악기라면 치를 떨던 시기였다. 매우 심기가 불편해 그만하라고

얘기했다. 내 얘기를 못들었는지 아니면 듣고도 못들은척 하는건지 녀석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심 귓방망이를 뎀프시롤로 돌리고

싶다는 욕구를 겨우 참아내고 그 망할놈의 오카리나를 뺏어들어 바닷가에 던져버리고 그간 쌓아놓았던 욕들을 풀어놓았다.

처음 보는 내 그런모습에 놀랐는지 그녀석은 근무가 끝날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복귀하자마자 쪼르르 소대장에게 달려가

근무시간에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보고를 올려버렸다. 평소 그녀석의 행실을 잘 알고있던 소대장이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리 만무했다.

이 골칫덩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우리에게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검문소에 근무자가 부족해 우리소대에서 한명을 파견 보내야

했고 그녀석은 귀양가듯 그렇게 검문소로 파견됐다. 그렇게 골칫덩이를 해결한 우리는 발뻗고 잘 수 있었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그녀석은 파견간지 한달도 못되서 근무중에 자다 대대장에게 걸리는 바람에 14박15일 패키지 를 다녀온 후에 다른 중대로 전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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