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 출범이후 한국을 들썩이게 했던 광우병 사건은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지만 아직까지도 여러가지 의미가 죽어버린 채,
이른바 '좌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비웃는 재료로 종종 사용되고 있다.
1. '광우뻥', '선동' 두가지 레토릭에 관하여
광우병사건을 광우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흔히 즐겨쓰는 단어가 '선동'이다.
선동이란 말은, '남을 부추겨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게 함' 이라는 뜻을 갖고있는데,
그들의 논지를 요약해보면, PD수첩이 광우병에대해 이른바 "뻥"을 쳤고, 갖가지 인터넷,문자등 루트, 그리고 어떤 사회적 유명인사들(웹툰작가라던지)에 힘입어 거짓된 정보들로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일을 부추긴 것일까?
1-1. 부추기다. 누가?
'광우뻥'이라는 말을 즐겨쓰는 사람들의 설명에 의하면,
정권교체 직후, 정권교체에 반발하는 세력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한다.
따라서 광우병사건이 발발하자,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조성하여 정권에 타격을 입히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1-2. 어떤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었나?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선동된 행동들은 시위의 피켓, 이른바 'MB OUT'으로 대표되는 것에서 확인할수 있다고 한다.
MB OUT이 정권교체에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이용(선동)되었다는 증거로 보는 것이다.
1-3. 어떤 가정이 숨어있나?
일단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여러가지 가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단, 광우병사건을 조망하고 이를 현재 정권에 타격을 입히기 위한 요소로써 활용하고자 하는 '주체'가있어야한다.
이는 왜냐하면, 사람들이 MBOUT이라는 피켓을 통해 선동되었다면, 적어도 그러한 피켓을 만드는(그 문구를 피켓에 반영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수
있도록할 수있는 영향력을 가지고있는)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피켓을 만든다는 것은 피켓을 물질적인 형태로 제작한다는 의미로만 국한되는 것
은 아니다. 그러한 문구, 그리고 그 문구에의 반영을 실제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행사하는 주체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여기서 사람, 이
것들을 조망하고 힘을 행사하려는 사람은 어떠한 개별적인 단위의 사람들이나 연결된 조직의 사람이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그렇다.(물론 이 지점에
서 이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데에 있어서 한계를 드러낸다.)
1-4. 반론 : 그 주체는 확인 가능한 주체인가?
혹자는 어떠한 일련의 사회적 작용-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그러한 내용이담긴 문자들이 유통되고하는 것- 들의 부산한 움직임들 속에 남아있는
흔적으로써 그주체를 우리가 당연히 존재한다고 여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Isn't it obvious?하는 되물음으로)
그러나 여기서 필자는 짧게 그러한 사람들의 흔적을 통한 목적론적 추론의 문제점과 인과의 전도를 짚어보고자 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수도사는 수도원장의 잃어버린 말의 흔적을 용케도 찾아낸다. 그는 발굽의 모양, 발자국의 간격, 나
뭇가지가 부러진 높이, 그리고 그의 다양한 지식을 통해 말의 이름(브루넬로)까지 추론해 낸다. 결국 이러한 흔적들의 추론이 맞아 들었을때 윌리엄이
정답을 찾아 냈다고 생각 할 수 도 있겠으나, 사실 나뭇가지는 브루넬로가 부러뜨린 것이 아닐수도 있었고, 그 발자국도 다른 어떠한 말이 찍고 간 것일
수도 있었으며, 말의 이름도 브루넬로가 아닐 수 있었는데 정답을 찾아낸 것은 거의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윌리엄의 추론은 굉장히 빈약한 근거(흔
적)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결국 정답이 되자 그 추론(흔적)들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쉽사리 브루넬로라는 관념
적(관념적이라는 표현을 쓴것은 정답이 흔적들의 중심으로 있지 않는다는 생각에 기초했다.) 정답에 이어지기까지 선별된 흔적들(발자국,부러진 나뭇가
지 등)을 하나의 말이라는 목적하에서 그 원인을 거슬러가는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브루넬로라는 정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
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신은 막연한 믿음으로 작용하는데, 이러한 막연한 믿음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용되는지는 나중에 다루고자 한다.
또한 모두가 알다시피, 목적론적 추론은 하나의 결과를 하나의 인과로 자꾸 엮으려고 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것의 원인은 무엇이
고, 그 원인의 원인은 무엇인가? 하면서 원인이 없는 결과(가톨릭의 신이라던지)나 존재 이전의 존재를 상정하게 됨으로써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적절
한 설명을 해주지 못하게 된다. 차라리 그것은 돌발이거나, 다양한 힘에 의해 중층결정 된 것이라는 설명이 더욱 적합하다.
두번째로,혹자는 이러한 선동자-선동되는자의 관계를 (정권에 타격을 입히고자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러한 효과를가진 행위를 하고마는)무지의 선
동자-선동되는자의 관계로 재설정하여 불분명한 주체로부터 벗어나 가시적인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앞서 살펴본 '선동'의 의미는 문
자 그대로 해체되고 만다.(정권에 타격을 입히기 위한 목적으로 선동된 것이다! 하는 선동의 의미에서)
이러한 난점을 벗어나려면 무지의 선동자-선동되는자의 관계에 다시 자신의 행위의 목적을 알고있는, 실제의 선동자-무지의 선동자-선동되는자 의 관
계를 상정해야만 하는데, 또 다시 이러한 실제의 선동자가 실제로는 그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자신의 엉덩이를 자신이 걷어차는 무한한
오류에 빠지고 만다.
여기서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실제로 입증하기가 곤란하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예를 들면 PD수첩이 의학적인 부분에서 잘못된 사실관계
를 보도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정권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 그러하였다는 것은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언급할 수가 없는 것이다.
1-5. 그렇다면 왜?
실제로 정권에 타격을 입히고자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들을 우리가 하나의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로써 인정하는 한, 그 사람들에
이유에는 다른 것들이 있어야하고 이 때문에 그 행위의 원인또한 그 다른 이유들에서 해석되어야만 한다. 동어반복적인 설명이지만 행위의 의미를 그
행위의 다양한 원인에서부터 나름대로 찾아가기 위함이다.
이런 설명과 더불어서, MB OUT이라는 기호가 알튀세르가 사용한 의미로써 '중층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한 인과관계(원인:이
명박 정권을 흔들고 퇴진시켜야한다는 사람들에 의지; 결과: MB OUT이라는 피켓)에 의한 것이 아닌
"
일련의 다양한 사회적 힘들이 결과적으로 정치혁명과 같은 하나의 중층결정된 사건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층결정 [重層決定, Overdetermination]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1.30, 국학자료원)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것은 피켓을 다양한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제작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피켓을 누가 만들었던 간에 같은 피켓을 들고 있지만 실제로 그 내면의 동기나 심리는 스펙트럼 처럼 정도와 내용이 개별적이지만, 그 분노의 표출이 보편적인 피켓의 문구로 분출되었다는 것이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1-3과 연관하여, 정권에 불만을 품고 흔드려는 힘이 사람들이 하나의 주체로 조직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무정형으
로 흩어져 있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어떠한 목적적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부르기 부적합하다.(주체가 없으므로) 그러한 힘은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와
심리(광우병에 대한 광역적 공포, 신뢰할수 없는 식품에대한 불안감 등)와 결합하여 하나의 깔때기 처럼 MB OUT이라는 피켓으로 표출된 것이다.
예를들면, 아동에대한 성범죄가 극심하던 때에 사람들은 인터넷 댓글에 '거세를하고 죽여버려도 시원치않다'라는 식의 댓글을 달았지만 진중권의 말
처럼 사실 그것은 정말로 그 범죄자를 거세하고 사형에 처해야된다는 목적의 주장이 아닌 '내가 이만큼이나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화가 난다'는 식의 분
노의 표출인 것이다.
MB OUT으로 대표되는 광우병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과 걱정의 피켓도 위와 같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덧붙이자면, 자신들이 선동에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사실 선동자의 의지대로 그러한 생각을 품거나, 실제로는 정권을 뒤집기 위해 촛불을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동자는 시위대와 정부의 관계에서 제3자로 추락하고 만다. (우리나라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는것이 북한의 김씨 체제를 지지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이 맥락속에서 인도적 지원은 북한의 김씨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론이 오류임은 자명하다.)
2. 광우병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정치적 수사(rhetoric)에서 벗어나 해답을 위하여.
광우병 사건을 어떠한 '거짓을 통한 정치적 선동'의 결과로만 바라보게 되면(실제로 '광우뻥'이라는 정치적 수사가 이러한 역할을 한다. 무언가를 부를
때 그것을 대표해서 부르는 것의 중요성은 생략하기로 한다.) 결국 사회적 현상을 한국 사회의 끝임없고 소모적이고 정치적인 정치인들의 그들만을 위
한 투쟁으로써 괴리시켜버리게 된다. 이는 광우병 사건이 우리에게 제기할 수 있는 수많은 물음들을 질식시킨다. 광우병 사건은 그저 정권교체에 불만
을 품은 자들에 반동적인 책동으로써 그에 선동된 사람들로 인해 파급된 하나의 우스갯거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광우병 사건을
바라볼때 우리 사회가 또 다음에 다른 제2의 광우병사건과 같은 사태들을 맞이할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길은 요원하게 된다. 우리
가
최근 맞닥뜨리는 후쿠시마 원자로 붕괴로 인한 방사능 유출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차원에서 광우병 사건에는 정치적 레토릭이아닌 다른 측면들이
중요하다.
2-1. 해답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기억. - 국민과 정부의 신뢰관계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가 공동체의 일원이고, 우리는 그 공동체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
다. 그런 의미에서 광우병 사건을 기억하자면, 왜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왜 사람들은 집에 들러붙어 있지 않고 촛불을 들러 나왔는
지, 그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광우병에 걸려 죽을 위험이 0.0001%일지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한다. 또한 그 시점에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5%라는 소
문들이 무수하게 떠다니던 시절에는 아마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이를 해소하려 한다. 누구나가 그렇다. 그
래서 가장 직관적으로 정부에게 그 방향이 설정되는 것이다. 정부가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협상을 진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이러한 일명 '광우병 괴담'에 대해 어떤식으로 대처했는지, 그 과정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관점 속에서 어떤 식으로 국민들의
불안이 표출되었는지,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광우병 사태를 다시 바라봄으로써 다음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유사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 국민과 정부
가 보다 나은 신뢰속에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지 그 해답에 대한 고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답은 개개인의 몫일수도 있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결국 개개인이 구성하는 공동체의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관점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
고민해야만 다음에 일어날 유사한 사건에 대해서(최근에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 조금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광우병 사건을 국민의 불안감과 공포, 정부에 대한 불만과 그에 대한 표출의 과정으로 기억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