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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도 생동성이 필요하다는 글의 댓글 보다가 새로 글을 씁니다.
게시물ID : sisa_617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솔미르
추천 : 2/2
조회수 : 829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08/11/11 11:27:53
얼마 전 매일경제신문에 한의대 지원자들의 입시성적과 경쟁률이 날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의를 경험해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한의의 치료 효과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늘어나기 마련이고, 매년 700명 가량 배출되는 한의사들은 호구 잡기가 쉽지 않아 수입이 급감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위에서 한의학에 대해 신뢰를 보내고, 기대를 갖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가 있다. 그들이 한의학에 대해 지니고 있는 호의적인 태도는 우리 것이 제일이라는 소아적 애국심과 합리적 판단이 결여된 오리엔탈 판타지의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한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가까운 지인 마저 학문으로서의 한의학에 깊은 회의를 지니고 있던 차, '學'자 붙이기도 미안한 한의학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자 이 글을 쓴다.

의사의 직무란 어떤 것일까. 우리 몸의 균형상태를 점검하고, 불균형 상태일 때 균형상태로 되돌리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의사가 하는 일은 진단과 처방으로 볼 수 있겠다. 서양의학, 동양의학, 대체의학 등 각종 의술이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서 신체의 무병함을 바라는 우리가 취할 것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들의 진단과 처방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가로 가늠해보면 되는 것이다.

진단이라는 것이 근거 없이 대충 때려 치는 겐또라면, 그 진단에 근거해서 내려지는 처방 역시 신뢰할 이유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소 뒷발로 쥐 잡는 확률로 우연찮게 제대로 된 진단을 했고, 그에 따른 처방을 했다고 치자. 처방과 환자의 호전 사이에는 인과관계라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 인과관계가 없는 것을 우리는 미신 내지는 주술이라고 부른다. 진맥이라는 진단법과 탕재, 침, 뜸이라는 처방이 상식에 비추어 봤을 때 합당한 것일까. 한의는 우리가 서양의학이라 부르는 현대의학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수가 없다. 한의사는 오히려 무당이나 주술사에 가깝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전통적인 한의사들의 진단은 크게 문진과 진맥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문진은 서양의학에서도 기본적인 것이고, 그것만으로는 확진을 할 수가 없다. 현대의학에서는 확진을 위해서 온갖 의료기기를 동원하여 정밀하게 진단한다. 진단을 위한 지표는 매우 계량적이다. 통풍(gout)의 진단을 위해선 피 검사를 통해 혈중 요산수치가 7.0mg/dl 이상이 나와야 한다. 한데, 한의사들은 우아하게도 진맥 한번으로 만병을 알아맞히니, 초능력 쇼에 나가면 돈벌이가 대단할 듯싶다. 진맥을 해서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의사들은 시계도 없이 맥을 짚고선 엄숙한 표정으로 진단이랍시고 한 마디씩 뱉어낸단 말이다.

“속이 냉하시군요”

“씨발러마, 니가 언제 내 곱창에 온도계라도 꽂아봤어?”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진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단위 시간당 박동 수와 박동의 세기 뿐이다. 그나마 박동의 세기는 여러 요인들로 왜곡될 수 있으니 진단의 지표로 사용하기가 미안할 지경이다. 남의 손목을 지긋이 누르고선 알아낼 수 있는 게 더 있을까. 그런데도 그들은 강약허실로 진단인지 지랄인지를 한단 말이다. 강하거나 약하고, 허하거나 실하고, 온하거나 냉하고, 하는 것이 한의학의 유일한 진단이다. 맥을 짚어서 어떤 경우면 속이 냉하다고 진단할 수 있는 것일까. 이건 엉터리를 넘어서 사기 수준이다. 사극에선 의원이 아가씨 맥만 짚고도 임신여부를 판단한다. 사람들은 한의학의 우수성을 칭송하며 박수를 보낸다. 영화 속에선 해리 포터가 빗자루를 타고 날라 다닌다. 영국인들이 그들의 빗자루 제조업자를 자랑스러워하나. 한의학이 효과가 있는 곳은 오직 TV 속 세상뿐이다. 

이런 한의 진단의 허구성은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동네 백수 하나를 몇 군데 한의원에 데리고 가서 의사들 보고 맥을 짚고, 그들이 주장하는 8맥이나 28맥이나 기타 잡맥 중 어떤 것에 해당되는지 하나 적어보라고 하면 어떨까. 산포도를 그릴 수 없을 정도일 거라 확신한다. 소비자 권익을 되찾고자 하는 수 많은 TV 프로그램에서 한의에 대해 검증하지 않는지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떤 치료 효과도 없이 소비자들을 기만하며 돈 벌이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행여 이 글을 보는 방송사 PD님이 계시다면, 한번 시도해 봄이 어떨는지. 그 프로가 뜨는 건 당연할 테다. 공익에 부합함은 물론이고. 

한의사들의 처방은 조금 나을까. 한의의 처방은 탕재, 침구, 뜸으로 나눠볼 수가 있는데, 황당하긴 세가지 모두 막상막하다.  

한의사들은 탕재라며 각종 풀 달인 물을 처방 해 주는데, 처방은 십인십색이되 작용기전을 설명할 수 있는 놈이 하나 없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수많은 탕재 처방은 절대 다수가 약리 작용의 설명이 불가한 것들이다. 이 약재가 빠지고, 저 약재가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라고 물어도 대답을 못한다. 이 약재에 산삼을 50g 더 넣고, 당귀는 10g을 덜 넣으면 어떤 작용을 기대할 수 있나요, 라고 물으면 전부 벙어리가 되어버린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해서 6년씩이나 공부를 했다는 의사 선생님들이 말이다. 한의사들이 그나마 한다는 항변은 한의 처방이 부작용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선 떠벌리고 다니는 바보들이 주위에 왕왕 있다. 반작용은 작용이 있을 때만 성립하는 것이지, 아무런 작용이 없는데 어떻게 부작용이 있겠느냔 말이다. 풀 달인 물 먹고 죽거나 아프겠나? 난 오늘 점심으로 이름도 모르는 나물 비빔밥을 먹고서 끄떡 없이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물비빔밥이라는 작용에 대한 반작용은 '똥'일 뿐이다. 십전대보탕? 웃기지 말자.

미군정 중에 맥아더 장군이 침술의 야만성과 미신성을 한 눈에 꿰뚫어 보고선, 그 폐해가 큰 바 한의를 폐기한 바 있다. 일찍이 서구의 합리적인 교육을 받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그의 뜻을 계승하여 한참 동안 한의학 교육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의사가 하나 둘씩 배출되더니, 황당하게 바늘 쇼를 펼친다. 침술로 암까지 고친다면서 나발을 불면서도 어느 학술지에도 실리는 법이 없다. 침구사가 10명이면 침 놓는 자리는 10군데고, 침구사가 100명이면 침 놓는 자리는 100군데가 되는 것이 이 나라의 위대한 한의다. 침술의 효과도 검증하기가 몹시 쉽다. 다리를 삐걱한 동네 백수 하나를 몇 군데 한의사한테 데려가 보는 거다. 그들은 똑 같은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동일한 패턴의 침을 꽂아댈까. 천만에. 상황이 이러할진데도, 침을 맞고 나면 한결 몸이 가벼워진다는 인간들이 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방구석에 누워서 쉬다 나오는데 기분이 더 나빠질 놈이 있나. 요즘은 공기 청정기까지 한대씩 갖다 놓던데 말이다. 거기다가 치료를 받고 있다는 위안에서 오는 플라시보 효과까지 더해지니 바보들은 그냥 뿅 가는 거다.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 가면 침을 안 맞고도 아주 뿅 간다. 길거리에서 짜증이 솟구치다가도 카지노 장에만 들어가면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오존이 살포된 쾌적한 환경과 돈을 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말이다. 서구인의 눈에는 60년 전에도 황당하게 보였던 한의가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돈 벌이가 된다니 조국의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뜸까지 이야기하려니 피곤한 감이 없진 않지만 내친 김에 이것도 마지막으로 살펴보자. 신체의 특정부위에 쑥을 놓고 태우면 왜 질병이 사라질까. 그 오묘한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이 단 하나라도 있느냔 말이다. 쑥 말고 미나리를 태우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니, 손바닥 말고 손등에 뜸을 하면 어떤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걸까. 전국에 널린 수련단체에선 하꼬방에 아줌마, 아저씨를 모아놓고 무면허로 쑥뜸을 해대고 있다. 그런 아줌마, 아저씨에게 필요한 것은 쑥뜸이 아니라 몽둥이 뜸질이다. 제발, 가끔은 생각도 해보고, 책도 한번 보고 그러자. 어떤 놈은 쑥뜸이 피부를 자극해서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고도 한다. 뭐,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런데, 요즘엔 가정용 의료기가 워낙 잘 나오고, 전문 교육을 받은 물리치료사들도 있는데, 화상의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그 역한 쑥 타는 냄새를 참고 맡을 필요가 있겠느냔 말이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수천 년 전통의 한의학이 그렇게 치료 효과가 뛰어난 것이라면, 조선시대의 왕들은 과연 몇 살까지 살았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날로 치자면, 서울대병원, 삼성병원, 아산병원을 집 안에 들여다 놓고, 수시로 의학 박사들을 불러대며 살았던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들 중 마흔 넘긴 사람 찾아보기가 힘들다. 감기라도 잘못 걸리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100년 전 이 나라의 의학이었고, 지금의 한의학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허준이나 이제마를 최고의 명의로 치고 있는 판국이니, 수준은 더 낮아졌다고 해야 할까.
 
데카르트 사후 수백 년이 흘렀건만, 이 땅에선 아직도 합리와 이성보다는 미신과 주술이 판치고 있다는 데서 암담함을 느낀다. 전문 지식일지라도 상식을 범할 수는 없다는 게 내 믿음이다. 내가 한의학이 엉터리라고 단정 짓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유추해 낸 결론이다. 아직도 인간의 이성에 대해 확신을 못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독서하고 사유하길 바란다. 한의학의 절대적 신봉자라도 한밤 중 극심한 흉통이 찾아오면 손끝이나 따고 앉아 있을까. 아닐 것이다. 엠뷸런스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달려갈 테다. 매일 하나님의 나라를 찬양하면서도, 병이 들면 천국으로 갈 생각은 않고, 새벽마다 안수기도 가는 기독교인처럼 이율배반적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근원을 탐구해보자. 왜, 우리는 한의학에 대해 방어적일까. 우리네 것이 소중하다고 떠들어대는 인간들이 넘쳐나지만, 내 눈에는 버려야 할 것들이 더 많아 보인다.

현대의학을 굳이 서양의학이라 부르며, 그에 대적할만한 韓의학을 들이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건 왜일까. 우리의 그릇된 역사적 피해의식 때문은 아닌가 한다. 거기다가 합리적 사유를 하게끔 도와주는 교육적 장치가 부재한 판국이니, 한의의 신비로운 효험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일 테고. 우리는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조선민중이 우매한 덕분에 한의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고, 우수한 인재들이 한의대에 몰린다. 나름 서구식 교육을 받은 이들은 한의학의 허구성을 자각하면서도 쉽게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허구성을 시인하게 되면, 그들의 밥그릇이 깨지고 마니깐. 결국 그들은 재래의술과 현대의학으로 나눠봐도 될 것을, 굳이 서양의학과 韓의학으로 나눈 뒤 애국심에 호소하며 방어적 자세를 취한다. 기득권이란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잘못된 기득권의 타파는 민중의 각성에서부터 나온다. 한의학은 암만 좋게 봐주려해도 존립의 이유가 없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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