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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흘 전 증후군(syndrome)
게시물ID : panic_572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19
조회수 : 372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09/09 20:24:27

 < 사흘 전 증후군 >
 

 네모난 박스 같은 방안, 한 남자가 허공을 향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는 공포에 사로잡힌 것처럼 머리를 무릎 사이에 숨기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방에는 남자 혼자뿐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저렇게 두려운걸까.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그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에도 이렇다할 이상한점은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허공을 가리키며 도망치려고 하고 있었다.
 
 이윽고 남자는 공포를 이기지 못한 듯, 옆으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곤 오랫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은 낱낱이 기록되고 있었기 때문에 기절하는 과정 역시 저장되었다. 그가 완전히 의식을 잃었음을 확인한 박사는 방의 조명을 어둡게 바꾸었다.
 박사는 도전적인 실험방식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는 겁없이 몸을 일으켜서 벽 안에 숨어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 남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맥박과 혈압을 체크한 박사는 다시 벽 사이에 숨어있는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 박사의 제자는 스승을 대신해 꼼꼼하게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사흘 전 증후군'
 '남은 시간 약 7시간' 
 
 방안에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사흘 전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박사는 예전부터 '사흘 전 증후군'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적절한 실험대상을 찾지 못했다. 방안의 남자는 박사가 발견한 첫번째 환자였다. 그러니 작은 실수라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제자는 이곳에 앉아서, 남자가 눈을 몇 번 깜빡이는지, 몇 분 만에 기절하고 몇 분 만에 깨어났는지, 또는 채식을 좋아하는지, 육식을 좋아하는지 등등 아무리 사소한 사항이라도 모두 기록하고 있었다.
 
 박사와 제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 모두, 이번 실험을 성공으로 이끌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서로의 눈빛을 봐도 그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제자는 작년 이맘때 스승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박사는 그 자리에서 '사흘 전 증후군'에 관해 처음 얘기를 꺼냈다.
 
 ‘사흘 전 증후군? 그게 뭡니까, 처음 들어보는데.’
 
 ‘세상에 무슨무슨 증후군, 많잖나? 이것도 그런 것 중에 하나일 뿐이야. 평범한 사람들로는, 아니 비 증후군환자로선 도무지 이해불가능한 현상과 증상. 왜, 갖다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 많잖아. 세간에 발표된 신드롬이 아닌데도, 자기들 편의에 따라 입맛에 따라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그건 저도 알고 있는데요, '사흘 전 증후군'이라니 생전 처음 듣는 것 같아서요.’
 
 제자의 말에 박사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는 안경을 위로 치켜 올리며 제자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생전 처음 듣는다니. 그럼, 자네는 번아웃 증후군, 스와이어 증후군, 묘성 증후군, 피스트 증후군을 다 들어봤단 겐가?’
 
 ‘…아니요.’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열거해줄 수 있단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제자는 스승의 이런 점이 참 싫었다. 어디, 잘난 척 증후군은 없나? 콧대높이기 증후군 같은 거 말야. 박사는 제자의 입이 꾹 다물어진 것을 본인의 발언에 오류를 지적당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서,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제자는 박사의 괴팍한 성격을 나타낼만한 증후군이 어떤 게 적당한지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떤 증상을 나타내는 증후군입니까?’
 ‘한번 맞춰보게나.’
 ‘사흘 후에 벌어질 일에 관한 초조함? 불안증세? 제 추측이 맞습니까?’
 ‘비슷하지만 중요한 알맹이를 빼먹었다네. 바로, 사흘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경우엔 그게 중요하다네.’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요?’
 
 이때까지만 해도 제자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죽음. 사흘이 지나면 죽는다네.’
 ‘네에?’
 
 제자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이건 죽음에 관한 증후군이야. 죽음의 비밀을 풀어낼 인류 최초의 발견일 수도 있단 말이야. 사흘 전 증후군이란, 미리 죽음을 감지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걸세. 어때, 흥미롭지 않나?’
 
 ‘죽음을 예견하다니…쥐들이 지진이나 태풍을 예고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까요?’
 
 ‘이건 쥐에 비견할 게 아니야. 사흘 전 증후군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학계가…아니, 온 세상이 변할 걸세. 그리고 미래도 변하겠지. 미지의 영역이었던 ‘죽음’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거라네.’
 
 제자는 그 말을 하던 순간의 스승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성격이 괴팍한 영감이란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 그 눈빛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열의가 넘치다 못해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게다가 그 의기양양한 미소라니. 그 확신에 담긴 웃음, 열기어린 눈빛. 바로 그 때문에, 제자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사흘 전 증후군’이란 신드롬을 증명하는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말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제자는 아직도 죽은 듯 기절해 있는 남자를 유리 너머로 바라보았다.
 박사는 그 곁에서 만년필을 쥐고 무언가를 정신없이 휘갈겨써내려가고 있었다.
 
 “이번 실험이 성공한다면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이런 골방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실험을 진행할 수 있을 테지.”
 
 “그게 가능할까요? 이제 하루 남았는데.”
 
 “정확히 7시간 남았지. 7시간이면 증명하기에 충분하다네.”
 
 제자의 우려와 달리,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박사는 실험의 결과물인 ‘캡슐’을 언론에 공개하며, 그가 주장하는 ‘사흘 전 증후군’에 대해 설명을 붙였다. 캡슐 한 알만 복용하면, 인위적으로 '사흘 전 증후군'에 걸리게 만들 수 있다는게 그의 주장이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박사가 비밀리에 진행한 실험의 결과를 들고 나타나자, 기자들이 앞다퉈 취재를 경쟁했지만 그 열기는 단 며칠 만에 사그라졌다. 열기의 끝에는 호된 비난도 함께였다.
 
 “뭐? 죽음을 감지한다고? 하하하! 차라리 우리 복둥이한테 물어보지 그래? 복둥이가 누구냐고? 시골에서 키우는 똥개가 한 마리 있는데, 그놈이 참 신통한 게, 어느날은 밤이 새도록 컹컹 짖는 거야. 잠귀 어두운 노인네가 깨서 이놈의 개새끼, 오늘이 제삿날이라고 몽둥이를 들고 나오는데 그때 마침 둑이 터져서 물이 밀려들어오더라 이거야. 집이 침수될 뻔한 걸 그놈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지. 또, 그뿐인 줄 아는가? 사기 치려고 찾아온 괘씸한 조카놈을 물어뜯은 적도 있고, 개장수한테 끌려갔다가 도망쳐온 일도 있단 말이야. 태어나서 집 마당 밖을 나가본 적도 없는 놈이, 몇 키로미터나 되는 길을 되짚어 왔단 말이야. 정말 영특한 놈 아닌가? 귀신같이 않냐구? 그렇지? 그런데, 뭐? 사흘 전 뭐? 박사씩이나 되신 분께서 하는 일이라곤…원, 쯔쯧!”
 
 하지만 박사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박사는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공들이 실험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곁에서 지켜보는 제자가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뒤,
 
 박사가 몰래 유통시킨 ‘캡슐’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가 유통시킨 ‘캡슐’은 다섯 알이었다.
 한달이 지나자 정확히 다섯 명이 이상증세를 보였다.
 
 그 중 한명은 시내 한복판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바람에 주요 뉴스의 메인을 차지했다.
 경찰에선 cctv 화면을 확인했지만, 영상 속의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다급해보였고, 허공을 향해 비명을 질러대는 둥,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박사의 실험실에 있었던 남자와 비슷한 증상이었다. 그의 죽음이 커다란 이슈를 몰고오면서, 동시에 박사에 대한 관심 역시 쏟아졌다.
 
 한 케이블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선 한 달 전에 발표된 박사의 기사를 보도하며,
‘사흘 전 증후군’에 관한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이쯤되자 사람들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도대체 사흘 전 증후군이란 게 뭡니까?
 
 제자 역시 궁금했다.
 실험을 곁에서 함께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사흘 전 증후군’이란 것이 도대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죽음을 예견하는 거라면, 왜 저런 증상을 보이는 거지? 헛것이 보이는 것처럼 도망쳐다니고, 안절부절 못하고.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걸까? 호기심을 참지 못한 제자는 감히 스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한테 설명 안 해주신 게 있죠?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 보이는 증세는 정신이상증세가 전부가 아닌 것 같은데요. 이번 자살사건만 해도 그렇고요.”
 “사흘 전 증후군이란, 간단히 말해서 사후세계를 보는 병이라네. 아직 죽지 않았는데 사망 후의 세계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 거지.”
 
 “그럼……시내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은.”
 
 “시내를 가득 메운 귀신을 본 거겠지. 원한이 맺힌 원혼이나, 살인자의 귀신이나,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존재로부터 달아나려고 했던 거야. 결과는 예상보다 끔찍했지만, 그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야. 극도의 공포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니까 말일세.”
 
 “하지만 그런 능력을 끄집어내는 게 인위적으로 가능한 겁니까? 어떻게 알약 하나로...”
 
 “복잡할 것 없어. 아주 간단하다네. 자네가 예로 들었던 쥐 같은 동물처럼, 우리 인간들도 위험을 예견하고는 한다네. 하지만 동물들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반면, 인간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게 태반이지. 왜 그런지 아나? 무관심 때문이야. 본능이 외쳐대는 경고음을 무시하는 습성 때문이지. 자신의 본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대인일수록 이 습성은 잘 드러나지. 어쩌면 우리 옛 선조들도 명명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이 증후군에 관해 알고 있었을지 모르네."
 
 "선조들이요?"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안하던 행동을 한다는 말, 한번쯤은 들어봤을 테지?"
 
 "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낱낱이 조사를 한다면 많은 자료들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이건 현대인의 병처럼 갑자기 발생한 증상이 아니니까. '사흘 전 증후군'은 인류 역사를 따라 온 거란 말일세. 아직 그걸 밝혀내려고 시도한 사람이 없었을 뿐이지. 내가 만든 캡슐은 그저 본능을 따르도록 돕는 역할만 할 뿐이야. 그것만으로도 '사흘 전 증후군'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거지.”
 
 “그런데 말입니다, 박사님. 왜 하필 사흘 전 증후군이죠? 왜 3일인 겁니까?”
 
 “3은 신비한 숫자야. 특히 동양문화권에선 마법의 숫자라네. 3일은, 내가 임의로 정한 숫자가 아니야. 72시간이 남은 상태에서야 뚜렷한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지. 그때가 돼서야 저승문이 열린다면, 자네는 내 말을 믿겠나?"
 
 그는 고민에 빠진 제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조금 더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우린 누구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고 있지. 당장 가까운 예를 들면, 몇 초 뒤에 연구실 천장이 무너져 내려서 자네와 내가 압사 당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 창문 밖을 지나가는 학생들 중 한명이 심장마비로 쓰러질 수도 있는 거지. '죽음'은 보이지 않는 거야. 그러니 느낄 수도 없는 법이지.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찾아오는 거라네. 괜히 사신의 낫이라는 표현을 쓰겠는가? 낫에 머리를 잘리듯 댕강! 순식간이면 숨이 끊어지는 거라네. 자연재해가 닥치기 직전에야 쥐들이 위험을 감지하는 것처럼. 위험은 바로 코앞에 다가와야만 느낄 수가 있는 거야. 지금은 3일 앞의 죽음을 내다보는 게 한계라네. 좀 더 연구한다면야, 열흘, 보름...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을 받아볼 수도 있게 되겠지.
 캡슐은 '사흘 전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한테서 추출한 호르몬을 분석해 그들의 특성을 극대화 시킨 거야. 캡슐을 복용한 사람들은 '죽음'을 온몸으로 느끼다 못해, ‘자각상태’에 이르게 되지."
 
 박사는 위험한 눈빛을 빛내며 길고 긴 설명을 마쳤다.
 
 “바로, 이 알약으로 저승에 속한 것들을 보게 되는 거야.”
 
 그의 이 가설은 점차 증명되기 시작했다. 그의 실험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발적 참가자가 수백, 수천으로 늘어난 덕분이었다.
 처음에, 캡슐은 합법적인 루트를 통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짝퉁캡슐이 암시장을 통해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효과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사후세계, 즉 귀신을 목격한 사례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이 쏟아져 나왔다. 온 매체에서 박사의 이름과 ‘사흘 전 증후군’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사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체계적이고 합법적으로 실험의 규모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견장에 있던 한 젊은 기자가 질문했다.
 
 “실험대상을 어떻게 고르시겠다는 겁니까? 누가, 언제, 어디서 죽을 줄 알고 캡슐을 나눠준다는 거죠? 박사님의 주장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만이 진짜 사후세계를 볼 수 있지않습니까? 죽음을 3일 앞둔 사람들이요. 그런데 벌써부터 수많은 경험담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초등학생, 이십대 대학생과 같은 죽음과 거리가 먼 사람들의 경험담도 다수 포함돼있습니다. 알약 하나로 사후세계를 본다는 게, 진짜 가능한 겁니까? 박사님을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저를 사기꾼으로 매도하지 말아주십시오. 기자님도 아시다피, 제가 진행한 실험은 백건이 채 안되니까요. 현재 유통되고 있는 캡슐의 99%는 가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회적으로 이렇게 큰 파란이 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한 단계 더 발전한 실험을 진행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저희 팀은, 앞으로 사형수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형수만큼 죽을 날짜와 시간이 정확하게 정해져있는 사람도 없는데다, 거짓으로 유통되고 있는 캡슐을 미연에 방지하는 작용도 할 테니까요. 물론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문제가 따르지만요. 그 외에 질문, 더 있으십니까?”
 
 “첫 번째 실험자에 관해서 한가지만 질문드리겠습니다. 36세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36세면 한창때 아닙니까? 한창때의 젊은이를 실험자로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첫번째 실험자라면, 민연홍 씨 말이군요. 두살배기 어린아이든, 아흔을 넘긴 노인이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너무 공평해서, 때로는 불공평하게 느껴질 정도죠. 민연홍 씨는 제 지인이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사흘 전 증후군 환자를 발견 한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을 뿐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젊은 기자는 못미덥다는 얼굴로 재차 질문을 퍼부으려고 했지만 선배 기자들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박사는 이어지는 다른 기자들의 질문에 여유롭게 대답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날 촬영된 영상은 전세계 각국에 번역되어 퍼져나가며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
 
 기자회견이 있고 보름 만에, 제자는 박사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최고의 수재들로 구성된 팀이 꾸려졌고, 절대적인 보안이 보장되는 최고의 시설과 환경이 주어졌다.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전세계 각국에서 박사를 스카웃하기 위한 시도가 빗발쳤다. 박사를 모셔가기 위한 싸움이 계속되는 이유는 단순했다.
 
 ‘죽음을 볼 수 있다면, 죽음을 피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가 높으신 분들의 공통된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박사가 ‘사흘 전 증후군’이란 걸 발표한지 불과 3개월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단 3개월만에,
 이 허황된 가설은 정설이 되었고, 이 정설은 인류의 과반수를 넘어, 먼 나라까지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 이 ‘사흘 전 증후군’의 증상과 이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의 특별한 능력에 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기자회견 이후로 박사는 언론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실험에 매진했다.
 추가로 발표된 사항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거짓 소문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구 밀집도가 높기로 유명한 어느 나라의 수도에서 집단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수십, 수백의 규모가 아니었다. 수십만명이 자발적으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었다.
 이 수십만명의 사람들은 생전에 모두 자신들이‘사흘 전 증후군’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사흘 전 증후군'은, 기본적으로 3일, 72시간 뒤에 죽는 다는 걸 의미했다.
 사흘 뒤에 죽는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했다.
 
 그들이 불타오른 자리에 거대한 잿더미가 남았다. 현지 특파원은 이 끔찍한 사건을 영상으로 전하며, 화산에 의해 사라진 폼페이 사람들의 시신이 눈앞에 나타난 것 같다고 전해왔다. 이들이 '사흘 전 증후군'에 걸렸음을 증명할 단서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은 전파를 타고 퍼져나가 겉잡을 수 없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던 박사의 발언 영상이 편집되어 퍼져나간 덕분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패닉 상태에 이르렀다. 공평하다는 말은 누구나 죽을 수 있으며, 누구나 '사흘 전 증후군'에 걸릴 수도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집단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이틀 만에 서울의 모든 초등학교는 임시휴교를 선언했고, 대중교통을 제외한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비행기 납치 사건과 은행 및 각종 절도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사람들은 꼼짝없이 집안에 숨어선 이불을 뒤집어쓰고 언론에서 쏟아내는 전세계의 소식들을 보며 사신의 낫이 자기 앞에 드리워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과거 어느 유명한 예언가가 2013년,
 온 인류가 화염에 휩싸여 종말을 맞이할 거라고 예언한 적이 있었다. 그를 추앙하던 세력들은 고개를 들고 대중 앞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예언자들을 추켜세우며, 2013년이야 말로 인류가 멸망할 때라고 주장했다. 곧 종교단체와 시비가 붙었다. 종교 건축물을 시작으로 많은 건물들이 폭파되었다.
 
 나라 곳곳에서 침략과 강탈이 잇따랐다.
 정부는 버젓이 존재했지만 사실상 무정부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절도와 살인사건으로 잡아넣은 범죄자는 너무나 많아, 수감할 시설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박사가 개발한 캡슐은 여전히 불법으로 밀거래되고 있었고, 그 어떤 마약보다 비싼값에 팔렸다.
 캡슐을 뺏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마약밀매단이 캡슐로 눈을 돌리자,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이쯤 되자, 정부에선 종적을 감춘 박사의 행방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괴팍하기로 정평이 나있던 만큼, 고국에 있을 때에도 행방이 묘연하기 일쑤였다. 불쑥불쑥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했었다.
 
 박사는 미국 정부에서 지원한 비공개시설에서 실험을 진행 중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오지나 다름없는 작은 나라에 체류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전세계에 들끓고 있는 ‘사흘 전 증후군’이나,
 ‘세계 종말’과는 무관하게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박사의 실험을 도왔던 제자는 근심어린 얼굴로 박사를 설득해서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박사는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에 있는 실험실에서 보냈다. 도대체 무슨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좀이 쑤실 지경이었지만, 지하의 실험실은 박사의 유일한 제자조차도 출입이 금지된 장소였다.
 
 어느 밤,
 제자는 스승만이 출입할 수 있는 지하의 실험실에 몰래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실험실은 초라했다.
 인류가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 그 방향을 손에 쥔 사람의 실험실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문서 몇 장이 흩어져 있는 테이블과 천장에서 24시간 돌아가고 있는 cctv가 전부였다. 제자는 카메라의 영상을 확인했다. cctv가 찍고 있는 것은 유리창 너머의 네모난 상자 같은 방이었다.
 
 그곳엔 하얀색 구속복을 입은 남자가 갇혀 있었다. 제자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구속복을 입은 남자가 무척 낯이 익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이 맞다면 남자는 이미 몇 개월 전에 사망했어야할 사람이었다. 제자는 홀린 것처럼 테이블 위의 문서들을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뭘 보고 있는 겐가?”
 
 박사였다.
 제자의 손은 어느새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박사는 사랑하는 제자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그렇담 자네도 이제 알겠군. 전에 내게 왜 하필이면 '사흘 전 증후군'이냐고 물었었지? 사람들은 카운트다운하기를 참 좋아하지. 거기서 착안한 거였다네.”
 
 제자의 손에서 떨어진 문서가 바닥에 흩어졌다. 문서에는 방안에 갇힌 남자의 사진과 함께 '민연홍, 36세' 라는 간략한 신상이 적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첫 번째 실험자이자, 박사가 처음으로 발견한 ‘사흘 전 증후군’ 환자였다.
 
 “이번에도 설명이 더 필요한가? 내, 마지막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박사는 늘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고는 했었다. 그는 다리가 풀려서 주저 앉아버린 제자의 곁으로 걸어갔다. 제자의 주변으로 출력된 종이가 낙엽처럼 흩어져 있었다.
 문서에는 민연홍 씨의 신상 외에도,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의 증세 역시 적혀 있었다.
 반복적으로 거짓통증을 호소함, 뮌하우젠증후군으로 의심됨.
 자기가 죽음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함. 허언증, 과대망상 역시 의심됨.
 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박사는 제자가 보고 있던 종이뭉치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바닥에 흩어진 문서 외에도, 테이블엔 사진과 진료차트가 첨부된 문서가 몇 장 놓아져 있었다.
 
 “이 '사흘 전 증후군'이란 건 말이야……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죽음을 예측한다는 건 민연홍군의 머릿속에서 나온 발상이지. 황당하지 않나? 저 남자의 망상에서 비롯된 이야기에 중독된 수십억 인류가, 도무지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야.”
 
 제자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스승을 두려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나는 지금 현대인의 증후군(syndrome) 그 자체를 연구하고 있는 거라네."
 
 박사는 구속복을 입은 환자처럼 광기어린 눈빛을 빛내며 제자를 위한 마지막 설명을 마쳤다.
 
 "인류 최후의 증후군이 될테지. 바로, 멸종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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