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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사 연재 - 0
게시물ID : history_115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솥매니아
추천 : 21
조회수 : 2034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3/09/10 20:02:44
0. 비단신이 층계를 내려오고 나막신이 층계를 올라가는 소리를 들어라

q6.jpg



이 그림은 낭만주의 화가인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가 1830년에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입니다. 삼색기와 총을 들고 시체를 넘어 민중을 이끌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현재까지도 프랑스의 혁명정신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 '마리안느(Marianne)'죠. 

이 마리안느라는 캐릭터는 1775년에 최초로 그 모습을 선보이는데, 처음의 그녀의 모습은 로마식 복식을 입고 머리엔 프리기아 모자(고대 아나톨리아 지방의 모자)를 썼으며 손에는 창을 들고 있는, 다소 고전적인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공화국의 상징이 된 것은 1789년 바스티유 함락을 기념하는 메달에 그녀의 얼굴이 새겨지면서였죠. 그녀의 이미지는 척 보기엔 고대 로마의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유사한데요, 이러한 고전주의적 미의식은 당시 1789년의 혁명을 성공시킨 세력의 정치의식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혁명이 급진화되기 시작한 1792년(혁명력 3년) 이후 그녀의 이미지 역시 급변합니다. 고결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던 로마 복장을 벗어던진 그녀는 파리에서 베르사유까지 행진했던 상퀼로트 부녀자들과 같은 옷을 입고, 당당하게 가슴을 풀어헤친 채로 무장한 남성들을 이끄는 이미지를 새로이 갖게 되죠. 혁명 지도 세력의 급진화와 함께 이미지도 보수적인 색을 탈피하게 된 것입니다. 그 형상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 바로 위의 그림입니다.

그러나 급진화된 혁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공포정치로 빠져들면서, 프랑스 공화국은 유약한 여성보다 더 폭력적인 상징을 원하게 됩니다. 1793년 지롱드파의 숙청 이후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은 헤라클레스로 교체되고, 마리안느는 잠시 뒤로 물러납니다. 이후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나고 훨씬 온건해진 집정 정부의 시대에 마리안느는 돌아오지만, 그녀는 초기의 형식미적 이미지에서 되려 창을 빼앗기고 법전을 받은 모습이 됩니다.

이후 나폴레옹 제정과 제 2공화국, 제 2 제정과 제 3공화국 등을 거치면서 마리안느의 이미지는 많은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소비됩니다. 현재에 이르러 마리안느는 프랑스 좌익의 상징이자, 잔 다르크로 대표되는 프랑스 우익의 애국주의에 대항한 또 하나의 프랑스-여성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리안느 얘기를 서두에서 길게 한 이유는, 그녀가 프랑스 혁명의 상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음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입니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건은 실로 신적인 사건이었기에 숭배받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기에 전유와 재전유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죠. 이 이중성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그녀 - 프랑스 혁명, 그리고 마리안느 - 는 여신인 동시에 창녀인 셈입니다. 누구도 감히 그녀를 모독할 수 없는, 불가침의 신성성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그녀는 역사적 세력들의 드잡이 속에 휘청대며 범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때문에 프랑스 혁명은 아직까지도 완전한 '이해'의 영역에 속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이 사건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 세계 전체에 대한 인식과도 같으며, 이 세계의 구조가 비가역적으로 변화하기 전까지 그것은 숭배하면서 동시에 정복해야 할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프랑스 혁명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어느 정도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밝힌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내가 이 마리안느라는 여신을 어떤 방식으로 숭배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정복하려 하는지에 대한, 다소 노출증적인 서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그래서 역사 게시판에 뭔가를 써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정작 논하는 것은 영 꺼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꺼림칙함을 넘어 프랑스 혁명사에 대해 아는 것들을 정리해 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물론 제가 요새 다소 한가한 탓도 있겠습니다만, 프랑스 혁명이 아직 완전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역동적인 생명력이, 우리 사회에선 거의 인식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바스티유, 단두대, 공포정치 따위의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과 인상들로만 남아 앙상해진 마리안느의 모습이 매우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이 실로 숭배받을 만한 신적인 사건인 이유는, 그것이 이 근대 세계의 정치라는 것을 통째로 만들어낸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근대가 가진 갈등과 모순을 가장 격렬하고 원초적으로 내뿜은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가진 자들의 비단신이 층계를 내려오고, 못 가진 자들의 나막신이 층계를 올라가는, 시끄럽고도 어수선하고 온갖 고함소리와 드잡이가 오가던 들끓는 현장이었습니다.

그 역동성을 붙잡아 역사의 메아리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끝끝내 근대 사회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프랑스 혁명은 비록 만리 타국의 사건일지언정 고조선이나 고구려보다 훨씬 가까이 두어야 할 역사적 대상임을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대단히 신기한 내용들을 말하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굉장히 낡은 얘기들을 하려 합니다. 아마 전공자나 관련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것들,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에 정설이 되었거나 각종 반박이 제기된 바 있는 얘기들일 겁니다. 제가 주로 참고하는 책인 알베르 마티에(Albert Mathiez)의 <프랑스 혁명사>는 1922~1924년에 걸쳐 나온 것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최근의 프랑스 혁명 관련 연구논문을 찾아볼만큼 역사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제가 노력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께 프랑스 혁명의 소리를 조금이나마 전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 천지가 들썩일 정도의 시끄러움을, 당대인들의 야만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드잡이를, 마치 시장 바닥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글로 옮겨 보고 싶습니다. 지식은 짧을지라도, 오히려 그 짧은 지식 때문에라도 읽으시는 분들이 이 사건 속에 자리잡고 있던 적대와 싸움들 속에 휘말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고자 합니다.



프랑스 혁명사,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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