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부대라 평시 감편운영을 했기에 대대급이긴 해도 부대인원이 별로 없었다.
나중에 많이 신병과 보충병을 받아 늘어나긴 했다.
때문에 지역 방위병을 운영했다. 즉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병사들 말이다. 요즘에도 방위병 제도가 있는지 모르겠다.
방위병중에 부대지역인 깡촌에서, 개천에서 용난식으로 서울대학을
나오고 서울대 대학원 재학중에 휴학을 하고 방위복무를 하는 병사가
있었다.
당시 우리 부대에는 고졸이 반 정도, 중졸포함 이하가 반, 그리고
대졸이나 대재가 두어명 있었을 뿐이니 서울대 대학원이란 간판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스펙이었다.
마른 체격에 곱상한 얼굴, 그리고 굵은 검정뿔테안경을 쓴 모습이 전형적인
학자로 보였는데 아무리 지식이 많은 고매한 학자인들 무엇하랴, 이제
후줄근한 군복을 입은 방위병 이등병 김이병일 뿐이었다.
그런데 대대장이 이녀석을 아주 노골적으로 개인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자기 아이들의 개인교사로 활용했던 것이다. 완전 100% 알짜배기 무료
개인교사였다.
대대장은 김이병을 아예 CP당번병으로 말뚝을 박아놓고 주간에는 커피
심부름좀 시키다가 애들 학교갔다 오면 관사로 내려보내 애들 공부를
가르치게끔 하였다.
대대장은 김이병이 예뻐보였는지 아주 옆에다 끼고 사는 것이었다.
그때당시 방위병이란 용어가 비하성이라 해서 '단기사병'이라 호칭을
변경했었는데 공문 오자마자 대대장이 간부들 모아놓고 앞으로 방위병이라
하는 간부들은 가만 안두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지경이었다.
장교 계급장을 달고도 고문관 짓을 하면 이등병에게조차 무시를 당한다.
호칭이 방위병이든 단기사병이든 본인의 격은 본인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지휘부에서는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병사들은 물론이고 간부들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비리와 유착된 또 하나의 비리.
역시 지식이란 인간이 지니는 보편적인 양심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 발전은 커녕 인간의 추악한 이기적 본성을 파렴치하게도 합리화
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일까.
창설부대다 보니 작업이 많았다.
작업차출을 하다 보면 김이병은 기껏 하루종일 대대장 커피나 몇 번
타는게 전부 이면서도 온갖 핑게를 대고 작업은 정말 단 한차례도
동참하지 않는 것이었다.
병사들은 석식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삽질 곡괭이질에 공구리치는
일에 시달리는데 방위병 이등병이 일과 후는 그렇다 쳐도 일과시간에도
작업을 안 하는 것이다.
허리가 아파서. 교회에 행사가 있어서. 대대장이 작업지시한게 있어서.
간부가 뭘 물어봐도 입안으로 웅얼웅얼댈 뿐이니 고참병사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기간병들이 새카만 몰골로 중노동을 하고 있는 옆을 도시락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퇴근을 한다.
모든것이 대대장 아이들 가정교사라는 역할로 무마되는것 같았다.
보다못한 심중위가 어느날 결산때 대대장에게 직언을 했다.
대대장님, 김이병이 글마 안되겠심더. 온갖 핑게를 대고 작업은 고사하고
병 기본훈련도 안한다 아임니까. 방위병은 우리 아아덜 아임니까? 우리
아아덜 밤낮으로 저리 쌔빠지게 고생하는데 김이병 글마 이등병노무 새끼가
저래 헐랭하게 부대에 놀러온거마냥 왔다갔다 해가꼬 아아덜 불만이 말이
아임니더. 글마 CP 당번 빼주시모 안되겠습니까?
대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이 심중위 CP 당번 빼면 애 잡을려고 그래? 가혹행위하면 곤란해.
알았어. 고려해보지.
대대장은 얼마후 진짜로 CP당번병을 빠리빠릿한 조상병으로 교체했다.
김이병은 당번병에서 떨려난게 영 불만인 모양이었다. 낮에는 작업이나
훈련으로 피곤한데다가, 저녁때는 가정교사로 뛰자니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물론 방위병은 일과후 퇴근이지만 부대에 작업이 있거나 훈련이 있으면
야근이나 주말 출근도 하던 시절이었다. 다른 방위병들은 기간병들에게
온갖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부대생활에 적응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김이병은 영 달랐다.
개새끼. 진짜 개새끼였다.
우리 부대에 신참 하사들이 전입왔다.
병장에서 올라간 하사들이 아니라 하사관 과정을 마친 장기하사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장기지원을 한 하사들이라
나이도 어렸었는데, 그동안 창설부대라고 다른 부대에서 방출되어
억지로 전입온 늙다리 하사 중사들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내가 가장 아끼던 인물은 정하사였다.
동생도 막내동생뻘인 그는 자기보다 나이많은 병사들 앞에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고 리더쉽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 하사 중사들처럼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패고 계급장으로 곤조를 부리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병사들과 잘 섞이고 잘 어울렸다. 지금 생각하면 웬만한 장교들보다 훨
나았다.
한마디로 "심성이 바른" 사람이었다.
김이병이 이 정하사에게 걸려들었다. 사단 검열이 있어서 온 부대가
뒤집어져 난리를 치며 청소를 하고 있는데 CP 앞에서 멍하니 뒷짐지고
밖을 보고 있다가 정하사가 본 것이다.
김이병 청소 안하나?
김이병 대답이 걸작이었다.
"대대장님이 언제 부르실지 몰라서 대기하고 있는데... 웅얼 웅얼"
나이로 따진다면 김이병이 큰형뻘 정도 될 것이지만 정하사는 말대신
가차없이 군화발을 날렸다.
김이병이 저만큼 복도에 나가떨어지면서 하필 걸레 빤 양동이를 치고
넘어지는 바람에 흠뻑 젖고 말았다. 걸레 빤 물에 젖어 복도바닥에
허우적거리는 김이병을 정하사는 무자비하게 밟았다.
아! 어억! 윽! 하면서 한동안 밟히던 김이병은 다른 하사들이 정하사를
억지로 붙들어 떼어내는 바람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포대의 촉새 하병장이
아주 생생하게 음향효과를 섞어서 전해주었기 때문에 마치 본것 처럼
생생하게 느껴졌고 또 한편으로 속이 후련했다.
김이병같은 인간들이 사회에 나오면 그의 지식을 무기로 정하사 같은
사람들의 위에 설 확률이 많은데 저런 사람이 한국 사회 피라미드의
윗부분에 앉을 생각을 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
한국이 건강해지려면 정하사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하며 김이병 같은
자는 아깝지만 아예 도태되는게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