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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수 년 전에 이미 멈춰버렸다.
게시물ID : soju_340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추악한괴물
추천 : 4
조회수 : 32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9/11 00:16:25
2013. 9. 10 화요일
 
날씨가 쌀쌀해졌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듯 여름 최후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항상 이맘때 쯤이다. 년중 극도의 우울함을 경험하는 시작은 차가운 공기가 마음 속 깊이 스며들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올해도 변하는 건 없구나..
 
겉으로는 웃으며, 밝은 척 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억지로 내색하며 겉과 속의 괴리감을 느낀지 올해로 몇 년 째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누구도 알아주지 못할 혼자만의 공간 속에 쓸쓸한 독백을 남기는 것이 과연 내 마음을 진정시켜 줄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붉어지는 눈시울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추스리려 노력해본다.
 
누구도 알아주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믿기 때문은 아니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혼자 근거도 없는 주장을 내세워본다.
 
나는 혼자다. 25년간 혼자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표현할 줄 모르는 무뚝뚝한 분이다. 아마도 자식을 사랑하셨겠지만 정작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셨다. 이건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불효자다. 어머니의 사랑을 몸소 느껴왔으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그랬을까 하고 돌이켜본다. 내가 혼자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기운이 없이 축 처지며 매순간 담배와 알코올을 갈망하게 되는 이유..결국 결론은 정해져있는 것이다. 똑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다. 이미 그것은 내 인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구강악안면장애라고 명명된 심각한 주걱턱 밑 부정교합이었다. 이빨이 닿지를 않아서 밥을 씹어먹어본 적이 없었다. 양악수술의 대가인 서울대병원의 모 교수님은 내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는 티나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과 뛰어놀고 어린 마음에 동심의 사랑도 해보며 세상 쓴맛 따위는 알지도 못하는 맑은 정신의 소유자였다...중학교 3학년쯤 되니 달라지더라. 물론 나의 얼굴 그 자체가 달라진 것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차피 그럴 운명이었으니까.. 진정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남들과 "틀린" 나의 얼굴이었고, 그와 더불어 나를 대하는 주변의 태도와 나라는 인간 그 자체였다.
 
한 아이의 인격과 정체성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나는 고등학교 3년과 대학교 1년을 포함한 5년 남짓한 시간을 지옥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왔다. 세상을 보는 안목이 형성되어갈 무렵에 나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험난한 시간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의 정신세계는 이미 붕괴되었다. 도저히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등학교 떄 나는 필사적이었다. 흉측한 외계인과 다를 바 없던 내가 큰 풍파없이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나는 외모 이외의 것에서 최고가 되어야 했다. 다행히 초등학교 때 하도 뛰어놀아서 운동을 잘했고 공부는 운동 이상으로 잘했다. 아니 잘 하려고 죽을만큼 노력했다. 나의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나 싶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 다른 반의 어떤 아이가 내가 속해있던 반에 와서(우리반이라고 표현하고싶지도 않다) 출석부를 보더니 "거봐. 내가 우리학교에 입돌아간 새끼 있다그랬지? 하하하....".....자존심이 살아있는 혈기왕성한 사내아이라면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나는 이미 몇 년간의 지옥을 경험하며 극도로 소심해져있는 상태였다. 머리를 책상에 처박고 자고있는 척을 했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분노와 좌절과 슬픔에 심장은 내 인생에 두 번다시 없을 정도로 쿵쾅쿵쾅 뛰었다. 머리속이 백지장으로 변하고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머리가 저려왔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당시 생각을 하면 여전히 눈물이 나온다. 나는 25살 남자인데 말이다..나는 그 이후로 더욱 강도높은 혼자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나는 대학교 3학년 학생이다. 심각한 비대칭 및 주걱턱이었던 내 외모는 각각 14시간, 8시간의 전신마취를 동반한 2번의 대수술을 거쳐 정상처럼 보일 수 있게 되었다...라고 주변에서 말하곤 한다. 심지어 잘생겼다는 소리를 한 두번 들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아직도 비대칭 주걱턱이라는 것을.. 다른사람은 모르겠다고는 하지만 내가 거울을 볼때면 항상 거울을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얼굴이 한쪽으로 쏠려있다. 과거 학창시절의 고통은 나를 극도로 사람을 의심하게 만들었으며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 못생기고 이상하게 생겨서 쳐다본다고 인식해버리고 만다.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따뜻한 말을 건네면 나는 그 사람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나는 이미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누군가 미운정도 정이라 했던가. 내 외모에 대해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허언이다.
 
나는 자살시도도 해봤다. 용기가 없어서 시도에 그쳤지만 말이다. 군대 신체검사를 받을 때 인적성검사를 했었다. 나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솔직한 나의 정신상태와 일치하는 항목들을 체크했을 뿐이었다. 그 결과 나는 수많은 예비장병들 중에 유일하게 당당히 2차검사로 불려갔다. 2차적성검사를 마친 후 며칠 뒤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재수학원의 같은 반이었던 어떤 아이가 일부러 나쁜 항목들을 체크하여 2차로 불려갔을 떄 담당 여자의사가 거짓말해도 모두 들통나니까 솔직히 답변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며 그 아이는 결국 자기는 현역이 되었다며 욕을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 여자의사는 나를 담당했던 동일한 의사였다. 그 의사는 내 앞에서는 "지금 기분이 굉장히 안좋아보이니 일단 검사를 마치겠습니다"라며 재빨리 나를 방에서 쫒아냈다. 이것이 누군가에게 외적이미지가 그 사람의 인상과 나아가 내면에 대해서까지 강력한 편견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게 된 사건이었다. 
 
민법상 성인이 된 지 얼마 안된 나는 재수학원을 독단으로 결석하고 소주를 사서 한강으로 갔다. 고시원과 학원이 대치동에 있었어서 한강까지는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였다. 술도 잘 못마시는 내가  그자리에서 소주 한 병을 원샷하고 담배를 피면서 신명나게 웃어제꼈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무서워서 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미친놈 보듯 노려보며 지나가던 것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결국 나는 투신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나약함을 질책하며 고시원까지 비틀비틀 걸어서 돌아갔다.
 
나는 과거에 사로잡혀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악몽을 꾼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매일 밤 꾸는 악몽에 시달리며 깊은 수면을 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나는 한강에서의 자살시도로부터 5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항상 죽고싶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눈이 안떠지기를 항상 바라곤 한다. 어린 학창시절의 몇 년이 인간의 80년 가량의 인생과 비교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는 시간인가..라고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그 시기를 겪어보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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