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최초의 사설시조로 분류되는 이 시가에서 시적화자의 정서는 예전 학력고사와 수능시험에 상당히 자주 출제되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록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한번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 이 시조의 1행과 2행이다.
1행은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로 시작된다.
왠지 혼자만 먹는 것이 아니라 최소 두사람 이상의 사람들이 먹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행인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부분에서 이 시는 매우 아름다운 봄철(사계절 다 꽃이 피지만 주로 봄에 핀다는 가정하에 봄이라 본다) 꽃이 피어 있는 자연 속에서 술을 마시면서 우정을 나누며 자연과 교감을 하던 조상들의 멋진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늘 문제인 것은 우리가 현대에도 술자리에서 자주 접하는 것인 '나는 두잔을 먹었는데, 너는 왜 안마시느냐?' 혹은 '나는 너에게 세잔을 따라줬는데 왜 내 술잔을 채워주지 않느냐?' '나는 한잔 술을 마시면서 시를 한 수 읊었는데, 왜 당신은 세잔을 마시고도 시 한수 못 만드느냐?' 같은 아주 사소한, 하지만 진짜로 자존심이나 왠지 기분이 나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다. 아니라고? 아님 말고.
어딜가나 술 약한 사람, 혹은 술자리에서 수작하는 매너가 없는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보다. 하지만 술마시면서 쪼잔하게, 술 취했다고, 기억안난다고 핑계대는 이를 생각하면 뭔가 증거를 제시할 부분이 필요하다.
왜 꽃잎을, 혹은 꽃가지를 가지고 셈까지 해가면서 먹었을 것인가?
여기서 꽃이 바로 우리 기록인들의 핵심인 증거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꽃이 증거적인 가치로서 산(셈)을 하면서 먹은 그 것을 증명하고, 술자리에서 오리발 내미는 어떤 이를 징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겠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한민족의 술꾼, 주당들은 이렇게 마시면서 놀았노라고 후세에 길이 남기길 바라면서 짓고 남긴 것이 아닐까 싶다.
사족이지만 이렇게 놀수 있는 바로 그때에 제대로 놀지 못한다면 마지막 행에서는 무덤가에서 원숭이가 휘파람 분때에야 후회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정철의 주위에는 이런 증거적 가치가 필요한 술친구가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철의 장진주사는 당시 사람들이 꽃이라는 요소를 어떤 증거적 관점에서 활용했는지 잘 알게 해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료라 할 수 있겠다.
-- 이상 대학원 개강하고 식사하면서 술자리에서 술 안따라 줬다. 안마신다. 술따라 줬다는 증거가 없다. 하면서 웃고 있을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능력이 되면 UCC 같은 것도 제작해 보면 아주 재밌을것 같은데 아직은 할 상황이 아니므로 그냥 글만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