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역 폭발사고는 창업 이후 가장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었습니다. 선친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룹 전체를 내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부가 당시 이리시 재건에 총예산 130억원을 잡았는데, 한화가 내놓은 돈이 91억원이었으니 선친의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선친은 이리 폭발사고가 났을 때 ‘개인재산을 모두 헌납하겠다’고 밝히고 91억원을 사회에 헌납했습니다. 91억원을 헌납하고 내가 물려받았기 때문에 사실은 마이너스 상태에서 물려받았습니다. " "그래서 선친이 돌아가신 상황에서도 울 겨를조차 없었다. ‘죽기 살기로 3년만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볼만 하면 계속하고, 아니면 손을 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년 정도 하니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더라. 그래서 3년 뒤 어느 비오는 날 선친 묘소로 가서 ‘어려웠던 3년이지만 해보겠습니다’고 신고식을 했다.” (김승연 회장의 인터뷰 중)
한화 그룹 총수 김승연 회장의 위엄 1. 우리나라의 국방을 책임지는 군수사업체. 이게 왜 중요한지 알지? 2. 김승연 회장이 자기 회사 내에 난치병 환자 혹은 난치병 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는 사원이 있 으면 수술비 전액 지원해준 사건이 있었음. 이게 왜 일어났냐면, 한화 경리 한명이 난치병에 걸려서 김승연이 수술비 대줬는데 이걸 계기로, "우리 그룹의 다른 사원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이 있을 것 아니냐"면서 하게되었음. 한화 이글스의 故진정필 투수도 이 사업의 혜택을 받은 사람. 돌아가시기야 했다만. 3. IMF때 한화 에너지를 현대정유에 넘기면서, "20-30억 덜 받아도 좋으니, 직원들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해 달라"고 하는 동시에, "한화에 남고 싶은 직원은 최후의 마지막 한명까지도 받아 주겠다. 설령 현대정유에서 해고가 되더라도 받아 주겠다."라고 한 사건. 그 덕에 한화 에너지의 직원 706명과 한화 에너지 프라자의 직원 456명은 완전 고용 승계가 이루어 졌다. 이 구조조정은 잡음도 없었고, 언론에서 휴머니즘 경영이라며 대서특필했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김승연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서 '가장 모범적인 구조조정의 사례'라며 칭찬했음. 이 사건으로, 김승연 회장은 '구조조정의 마술사'라고 불리게 된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은 이 별명을 가슴아픈 별명이라고 했다. 모든 구조조정을 완전 고용승계로 하는것을 목표로 했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으로 50∼60명의 직원이 일터를 잃게 되자 사내 방송에서 “선대 김종희 회장이 한화를 창업한 이래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었다.”면서 “나는 그들의 가정에 많은 고통을 준 가정파괴범이며, 만일 내가 경영을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비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4. 김승연 회장과 한화 노조위원장은 늘 대립해왔었다. 그런데 그 자신을 골치아프게 했었던 한화 노조위원장이 죽자, 장례식장에서 노조위원장 아들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회장실로 오라"고 하며 수표를 주 고 갔던 사건. 5. 4번과 같은 사건때문에, 노사관계가 정말 원활하여 3년 연속 노조가 임금협상을 회사측에 전면 위임한 기업. 6. 천안함 사건때, "군수사업을 하는 기업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숙고해보자"라는 말을 회의때 임원진에게 남겨서 적극 검토하게 했음. 그 결과, 천안함 유족들에게 3억의 위로금을 전달하는 한편, 유족관계자들을 전면 우선채용해 준 기업이 한화 그룹이다. 7. 영업이익이 1조가 넘는 우리나라 몇 안되는 기업. 60년대 재벌 10위 안에 들었던 기업들 중, 현재도 10위 이내인 그룹은 한화와 삼성 뿐이다. 8. 화약 팔아먹던 시절에, 임직원의 사고를 늘 걱정해서 공장에 기도실을 설치했던 기업. 9. 김승연 회장은 2002년 만성적자에 시달렸던 대한생명을 인수 후, 대한생명의 현금흐름을 흑자로 돌리기 위해 3년간 대표이사를 하면서 월급 한 푼 받지 않았고, 누적적자 2조 3천 억원을 다 갚는 동안 배당도 받지 않았다. 회사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회계를 조작한 대우와는 대조되는 사례다. 10. 매년 사회공헌 우수기업 시상과, 준법우수 기업 시상때마다 단골으로 불려나가는 기업 한화그룹은 직원 뿐만 아니라, 김승연 회장 또한 사무실에만 앉아있지 않고 일반 직원과 똑같이 직접 연탄 나르면서 땀흘리며 빈자를 돕는 봉사활동을 매년 해 오고 있다. 11. 29세의 젊은 나이에, 최연소 재벌 회장으로 취임하여 아버지뻘 되는 쟁쟁한 이사들을 휘어잡 은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모두가 '젊어서 안된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을 때, 김승연은 '젊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대형 M&A를 잇따라 성사시키는 기염을 토했음. 12. 신입사원이 김승연 회장과 단둘이 앞에서 멋 모르고 대놓고 담배를 피자 그 자리에서 신입사원에게 귓방망이를 날리면서 "어디서 어른 앞에서 그러는 버릇을 배웠느냐"고 일갈. 그 사원은 그 다음날 사표를 내어, 예의를 지키는 기업문화를 만듬. 존나불쌍 13. 북창동 삐끼 양아치의 문란하고 폭력적인 유흥문화를 일소하시기 위해 친히 금장 리볼버를 들고 경호원 30여명을 끌고 가셔서 처리 주시고 사회적 책임을 홀로 떠 맡으시어 건전한 유흥문화를 조성하는데 힘 쓰신 분이 김승연 회장. 14. 김승연 회장의 아들 셋 모두 병역문제에 대해 깨끗함. 첫째 아들은 하버드 졸업 후 공군 장교로 복무(공군사관후보생 117기) 둘째도 장교복무 중 막내 아들은 승마 금메달리스트(미국국적 아님. 미국국적이면 한국대표로 금메달 따는게 불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