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김대중 칼럼 ‘대통령과 응원단장’은 첫째, 조선일보가 유무형의 사회 현상에 대해 어떻게 이름붙이고 이미지를 고착시켜가는가를 보여준다.
김씨는 <“‘동네 통반장’스타일의 지도자를 선택했고...“군기 잡으려 하면 물어뜯어 버리겠다”는, ‘한때 빨갱이 노래’로 몰렸던 노래를 청와대가 부르게 된 것에 감격하는 사람들을 뽑았다>고 쓰고 있다.
지난 5월 31일 기사에서 조선일보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당선자 만찬 자리에서 불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소재로 기사를 쓰면서 '빨갱이로 몰린 것은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지, 그 노래가 빨갱이 노래였던 적은 없는데도 '한땐 빨강이 노래로 몰렸던’ 이라고 해 노래를 부르면 빨갱이가 됐다는 서술적인 표현을 ‘빨갱이 노래로 몰렸던’이라는 관용구로 바꿔치기 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김씨의 칼럼을 통해 다시 한번 ‘임을 위한 행진곡’에 (한때)‘빨갱이 노래’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자신들의 열혈 독자와 생각 없는 독자들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 빨갱이 노래’라는 이미지를 주입시키고 있다.
둘째, 김씨는 이 사설에서 “우리는 더 이상 군림하는 통치자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뽑긴 ‘자전거 타는 지도자’를 뽑아 놓고 기대하기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제왕적 지도자를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이중심리” 때문에 지도자의 수준을 염려하는 소리가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진단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마치 한국 유권자의 이중성을 질타하는 것 같지만 읽기를 계속하면 ‘이중성’에 대한 우려와 질타가 아니라 이중적인 것은 바로 김대중 자신이며, 제왕적 지도자를 김씨가 그리워하고 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지도자를 두고 ‘나나 그나’ 별로 다를 것 없어서 권위와 영이 서지 않는 분위기가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총알이 비오 듯 쏟아져도 돌격 앞으로의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의 지휘에 따라 돌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투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오늘을 규정한다. 따라서 그의 결론은 당연히 “우리와 다른 높은 수준의 의지와 실천능력이 절실하다”이다.
결국 김씨는 명령을 내리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자기보다 한 수 위인 탁월하고 전응한 그런 지도자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칼럼 앞부분에서 “우리의 리더십은 권위에 젖어 있다 못해 권위주의에 몰입해 군림하는 대통령의 형태로 존재해 왔다. 건국 이후 한 차례 짤막한 실험이 있었고 그 뒤 꾸준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이 내각책임제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것은 이 같은 우리의 오래된 지배구조 지배의식 지배형태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은 김씨가 보기에 우리한테는 권위적 리더십이 아직도 더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적합하다는 말을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전쟁 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에게는 명령하면 복종하는 군대식 리더십이 절실할 것이지만, 미안하게도 김씨와 주식회사 조선일보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 빼면 지금 우리가 전쟁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냉혹한 국제 사회에서 무역하고 외교하며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은유와 비유의 세계이다.
현실과 메타포를 구분 못하고, 그래서 아직도 박정희식, 전두환식 리더십이 그리운 김대중 이사가 조선일보 부사장이다. 한마디로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흘러간 과거를 이상향으로 그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지 못하고,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정신 분열증 환자가 조선일보 대표 논객이다.
김씨와 조선일보는 응원 단장 같은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가 원하는 대통령은 별 다섯 개 달린 군대 지휘관이지 응원 단장이 아니다. 따라서 이 칼럼의 제목은 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