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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은 원래 자체가 무덤이 었습니다.
게시물ID : sisa_4380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미가고향
추천 : 11
조회수 : 955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09/12 14:50:57


1.png

출처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3300000,11


위키백과

역사[편집]

본래 1956년에 효창공원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고 그 자리에 운동장 건립 계획했지만, 사회 기관 단체, 여론, 국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959년 6월 아시아 축구 선수권대회 유치가 확정되자,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효창공원에 축구 경기장을 짓도록 지시한다. 한달 뒤 1959년 7월 14일 이기붕 대한체육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축구경기장 건설위원회가 구성된 후 효창공원 내 7,822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959년 11월 19일 축구장 건설에 들어갔다. 경기장은 건물형 구조물이 아닌, 언덕을 깎아내고 흙을 돋우어 관중석을 설치하는 설계법으로 공사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1960년 10월 12일 개장 기념으로 경평 OB전이 열렸고, 그 해 10월 14일 제2회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완공 당시는 천연잔디 경기장이었으나 이 후 잔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표면이 흙바닥과 같은 상태가 되었고, 1983년 4월 1일 인조잔디, 조명탑, 나이트 시설등의 개보수 공사 기공식을 하였으며[3] 10월 3일 완공식을 가지고 [4]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를 초청해 4개국 청소년 축구대회를 열었다.


정치적 보복[편집]

1956년 정부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묘가 있는 효창공원에 다른 곳으로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6월 9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김두한 의원은 "선열에 대해서는 물질보다 추모의 정신으로 보답해야 만큼 우선 정부는 분묘에 대한 모든 절차를 결정한 후에 운동장 설비공사에 착수했어야 할 것이라."라고 말하고 "효창공원의 선열 묘지는 성묘이다. 이 성묘를 함부로 파서 헐어 트리는 것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친 선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피력하였다. 공사중지건의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5][6]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골프장을 만들려는 공사를 시도하고, 효창공원에 반공투사 위령탑, 김구의 묘 옆에 노인회관을 세웠다.[7]


http://ko.wikipedia.org/wiki/%ED%9A%A8%EC%B0%BD%EC%9A%B4%EB%8F%99%EC%9E%A5#cite_note-6




효창공원은 원래 정조의 큰 아들 문효세자가 있던 무덤을 일제가 강제이장하며 만든 효창원이 효창공원으로 되었다.


일제 잔제를 뿌리뽑자는데 왜 한나라당 아니 새누리당의원들은 극구 반발하는지... 


난 내 집 옆에 국립묘지가 생긴다면 자랑스러울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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