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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시위, 집회 앞에 ‘불법’ ‘폭력’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든 분께 바칩니다.
필자주: 이 글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 경찰 살수차 운용규칙 및 채증규칙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각 원문 링크는 각주에 게재돼 있습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 제 6조 1항에 따르면,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자는 1) 목적 2) 일시 3) 장소 4)주최자(주소/성명/직업/연락처) 5)참가 예정인 단체와 인원 6)시위의 경우 그 방법(진로와 약도 포함)을 포함한 신고서를 해당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 조항과 5조(집회 및 시위의 금지)에 명확히 표현돼 있듯이, 집회 및 시위는 신고제다. ‘불허’했다는 표현은 불가능하다. 1)
시위 및 집회가 금지되는 경우는 굉장히 제한적이다. 집시법 5조 1항에 명기된 두 가지(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집단적 폭행, 협박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 그리고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 하지만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도 집시법 제 12조 2항에 따르면, 시위의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행진할 경우 금할 수 없다. 집시법 10조를 들먹이며 해가 진 후에도 민중총궐기 집회가 행진을 이어갔으므로 불법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헌법재판소에서 2011년에 이 조항에 위헌 판결을 내렸음을 명심하시길.
즉, 2015년 11월 14일의 집회의 계획과 신고는 집시법의 어느 조항도 어기지 않았다.
집시법 11조(외교기관 주변 100미터 이내에서 시위 금지 조항) 2003년에 위헌판결이 났다. 위헌판결이 난 조항을 가지고 왜 왈가왈부잼…?
광화문 광장에서 정치적 집회를 금지하는 서울시장의 ‘조례’를 가지고 와서 이를 불법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조례보다 법이 위다. 그리고, 정치적 집회가 금지된다는 광화문 광장에서 애국단체총연합회 등이 이미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애국단체총연합회’의 시위는 정치적인 게 아니었나…? 거 참 이상하다.
즉, 11월 14일의 집회 및 시위는 집시법 11조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것은 두 가지의 개소리의 콤비네이션…! 먼저 차벽을 설치해 시위대의 진로를 막는 것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린 바가 있다. 그것도 현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 때 분명히 난 판결이다. 두말하면 입아프다. 더불어, 시위 주최측인 민주노총은 분명히 집회 신고서와 안내문에 각자의 궐기 대회를 마친 뒤,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해 집결한다고 했다. 그런데 먼저 차벽을 치고 폴리스라인을 통해서 신고된 집회 장소인 광화문광장의 출입을 원천차단하고, 청와대로 가는 길을 ‘먼저’ 막은 건 누구더라?
그러면 차벽이 아니라 폴리스라인(질서유지선)의 설치는 적법하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면적법하지 않다. 집쇠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아래 시행령)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한해서 질서유지선을 설치할 수 있다.
1), 2)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 1)의 경우, 시위의 장소를 한정하기 위해서 차벽이 설치된 게 아니라 아예 집회의 장소를 원천차단하기 위해 차벽이 설치됐는데, 시행령의 과잉 집행이다. 집회, 시위의 참가자와 일반인을 구분할 필요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경찰의 차벽은 집회 참가자와 일반인을 구분하기는 커녕 인도까지 통행을 막아 집회 참가자와 일반인을 되려 섞어놓기까지 했다. 역시 과잉 집행이다.
2)의 경우, 집회와 시위의 참가자를 일반인이나 차량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한 근거는 3)인데, 시위대가 신고한 경로 필요 이상으로 차벽과 폴리스라인을 동원해 도심에 대대적인 교통체증과 불편을 초래한 건 경찰이다.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의 협조가 아니라, ‘대규모 집회… 도심 곳곳 교통 불편 초래’와 같은 헤드라인을 뽑아 주려고 먼저 나선 수준이다.
일단, 채증이란 걸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부터 보자. 경찰채증규칙에 의하면, 채증은 ‘불법행위자의 증거자료 확보를 위한’ 활동이다. 불법행위를 뭘 저질러야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건데(경찰청 예규 제 472호), 경찰의 채증은 이번 집회 뿐만 아니라 꾸준히 대오에 참가한 시위 참가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채증을 자행해 왔다. 당연히 불법이다. 2)
또, 시위 대오 건너편에서 정복만 입고 채증하지도 않았다. 사복경찰이 너무 널려있어서 미스핏츠의 취재진 중 하나가 사복경찰로 오인받았을 정도인데, 집시법 제 19조에 의하면 이것도 불법이다.
다음은 물대포. 경찰의 살수차 운용지침에 따르면 살수차는 경찰관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신체에 대한 위해를 가할 경우, 화재 진압 또는 분신의 방지 등을 위할 경우 등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의 살수차는 꼬부기 뺨을 서른 대는 후려쳤을 법한 살수파워를 뽐냈고, 경찰을 향해 다가오는 집회 대오에게도 먼저 물대포를 쐈다. 그리고 살수 방법도 원래 분산살수 -> 곡사살수(공중을 향해 쏘는 물대포) -> 직사살수 순인데, 경찰은 곡사살수 없이 직사살수만 남용했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법에 따라도 이건 불법이다. 또, 최루액,염료 혼합살수는 곡사 또는 직사살수로도 해산하지 않는 경우에만 섞을 수 있다. 그렇지만 물론 경찰은 그 전부터 최루액과 염료를 섞어서 물대포를 파워 발사했다. 이것도 불법이다.
즉, 이번 집회에서 경찰의 채증과 살수차 운용 방식은 모두 법령을 기준으로 봐도 위법이다.
집시법 5항 1조에 따르면, 이미 해산된 정당의 요구를 하기 위해 모인 시위는 불법이다. 하지만 민중총궐기 대회의 요구안 11가지와 22가지 세부 요구사항에 이석기 석방은 공식적으로 천명된 바가 없으며, 시위 현장에서 수만 명의 사람이 모인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주최측의 통제가 가능한 범위 밖에서 벌어졌을 수 있다. 따라서 집회의 목적이 ‘이석기 석방’이었고 다수의 참가자가 이 구호를 외쳤다면 집시법 5조 1항을 근거로 불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수의 시위 현장 보도에 따르면 이석기 석방은 시위대의 주요 요구가 아니다.
시위대의 이른바 ‘폭력’은 집시법 16조 4항 중 1, 2번 항목 위반의 소지가 있다.
결론: 민중총궐기 대회의 신고, 기획 및 진행은 합법적이다. 하지만 경찰의 차벽 설치, 과도한 폴리스라인 설치, 채증과 살수차 사용은 모두 불법 및 규칙 위반이다. 그리고, 민중총궐기 대회의 ‘폭력’적 행동은 불법이다.
하지만 경찰의 민중총궐기 대응이 합법적이었고 민중총궐기에서의 시위대가 불법적이었다 한들, ‘합법’이라는 딱지가 이 법 집행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정당한 행위였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합법, 불법 여부가 아니라 법 자체의 정당성이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의 불법 여부를 열심히 따지고 ‘불법’ 딱지를 붙이지 못해 안달하는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3.1운동은 합법적인가?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은 합법적인가? 1987년 6월 항쟁은 합법적인가? 2011년의 월가 점령 운동은 합법적인가? 모두, 그 당시의 현행법 기준으로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시위였나? 시위대의 폭력만 불법이고 불순하며 국민을 지켜줘야 할 국가가 법을 근거로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풍경은 합법적인가?
현행법이 수호하는 가치가 곧 정의고 사회의 가치관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지만, 법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를 짓밟고 유린한다. 뭐든지 ‘법’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 가장 정의로울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재갈을 물린 유신헌’법’이 가장 정의로운가? 인간의 생사여부를 인종으로 결정하겠다는 독일 나치의 유태인 차별’법’이 정의로운가? 법은 때로는 부조리하고 부당하다. 민중총궐기 대회에서의 시위대를 ‘불법’으로 옭아매는 법 역시 유신헌법, 유태인 차별법과 같이 부당하다.
예를 들어, 시위대 일부에서 외친 ‘이석기 석방’ 구호를 가지고 이 시위가 위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는 물론 있다. 하지만 그 법은 민주주의에서 보호되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최대한 보호하는 조항이 아니다. 되려,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뿐만 아니라 발언의 자유마저도 침해한다. 이 법은 민주주의에서 보호되어야 할 발언의 자유와 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우리는 법이 정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고,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는 모두가 지켜야 할 도덕의 최소 기준이라고 너무 쉽게 믿는다. 그리고 그 눈 먼 믿음은 법의 권위를 더욱 공고하게 한다. 하지만 법은 생각보다 공정하지 않고, 공고하지도 않다. 법은 오랫동안 인정돼 전해져 내려오는 고결한 성전이 아니다. 국회에서 새 법안을 발의하거나 개정안을 발의하면 곧바로 고쳐지는 게 법이고, 시행되다가 법안이 폐기되면 1년도 안 돼 그 효력을 잃는 것도 법이다. 법이 있어도, 그 세부적이고 실질적인 시행 범위나 방법, 권한을 대통령령에 떠넘겨 놓기 때문에 사실상 집권하고 있는 정부의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는 법도 있다. 집시법의 집행 조항들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그렇다. 어떤 이에게 민중총궐기 집회 및 시위는 불법이고, 또 어떤 이에게 경찰의 강경대응 역시 불법이다.이 두 불법행위 중 어느 것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침해하고 국민의 보호를 대원칙으로 삼는 법의 가치를 침해하는지는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불법’이라는 단어는 곧 정당하지 않고 불순함을 이르지 않는다. 단순히 현재의 법치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한낱 불법이란 단어로 민중총궐기 대회에 모인 10만 시민의 뜻을 ‘후려치기’ 하지 말라.
그렇다고 ‘현행법 모두 X까! 나는 내일 오함마 들고 그 놈의 손목을 자르러 간다, 껄껄’하라는 게 아니다. 법의 합리성은 존중하되, 그 법의 권위를 필요 이상으로 치켜세우지 말라는 이야기다.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악법은 법이 아니다. 악법은 법의 껍질을 뒤집어쓴 기득권의 일방적인 통치와 권력의 규제다. 헌법에서도 명시한 민주주의 체제에서의 집회, 결사의 자유가 ‘법’의 이름으로 통제될 때, 결국 우리는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민주주의가 중요한지, ‘법’이 중요한지. ‘불법 시위대’가 될 지, ‘합법적인 법의 수호자’가 될 지.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출처 | http://misfits.kr/121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