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인사를 했던 소방관이,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도지사도, 마찬가지 시민이오. 대뜸 비상전화를 걸어서 어쩌자는 거요?"
"도지사."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시간이란 말요. 비상전화에 걸어서 왜 용건을 얘기하지 않소?"
"도지사."
....(중략)....
아까부터 그는 소방관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전화에서 진행될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화내용도 상상해 보고 있었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도지사."
"음, 도지사시군."
소방관은, 앞에 놓은 서류를 뒤적이면서,
"도지사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장난전화인지 어찌 알겠어요. 소방관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하루에도 장난전화가 수십 수백통씩 걸려온다고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답답함은 나도 압니다. 소방관들이 과중 업무에 시달려 장난전화라고 의심하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도 장난전화로 의심되는 전화엔 응대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권리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 긴급전화를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도지사."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나라 내 민족의 한 사람이, 가장 바쁘고 급한 긴급전화를 하겠다고 나서니, 동족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곳에서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건져서, 가족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도지사."
"당신은 국회의원에까지 당선된 지식인입니다. 국민은 지금 당신을 욕하고 있습니다.(원글 : 조국은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일반전화가 아닌 긴급전화로 끝까지 용건을 전하렵니까?"
문수는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막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도지사."
소방관은, 이쯤 되면 나의 권력에 굴복하고, 자신의 이름을 대면서, 곁에 앉은 다른 소방관을 돌아볼 것이다. 다른 소방관은, 어깨를 추스르며, 도지사님께 최선의 예우를 다해 굽신굽신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