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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시위꾼이라고 하니 이 사람들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게시물ID : sisa_6270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주는25도
추천 : 6
조회수 : 50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1/18 21:51:46
시위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시가지 대로상의 만세시위, 시골 장터에서 행한 장터 만세시위, 야간 산상의 봉화시위, 한 장소에서의 1회성 만세시위, 같은 장소에서 몇 차례 거듭된 시위운동, 인근 지역을 찾아다니며 행한 만세꾼들의 시위운동, 지역과 지역이 릴레이로 이어 받으며 행한 릴레이 시위운동,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사람의 시신을 떠메고 행한 상여시위, 상점 문을 걸어 잠근 상인들의 철시 시위, 학생들의 동맹 휴학시위, 노동자들의 파업, 광부들의 순사주재소 습격시위, 어린이 시위, 거지들의 시위, 기생들의 시위 등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전 계층이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였다. 이렇게 행한 총 시위 회수는 2,000회 이상, 연인원 200만 이상으로 추산되었다.

특정한 지도부의 조직 없이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 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든 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하고자 했던 대중적 자발성 덕분이었다.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분물하고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이끌었다. 
시위가 확산되면서 '만세꾼'이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만세꾼들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수십 명씩 떼를 지어 주로 장날을 쫓아다니며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시위를 유도하고, 지역 간의 연계를 꾀하였으며, 도시에서는 밤에 횃불 시위를 벌이고, 파출소에 돌팔매질을 하고 다녔다.

만세꾼을 요즘 용어로 하면 전문시위꾼 정도 되겠군요.
물론 저때도 시위는 불법이었고, 경찰 나으리들이 총쏘고 칼질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 총쏘자는 이완영 의원님은 미국이 아니라 그 시절을 그리워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보니 이름이 비슷한 분이 그 때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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