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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장교들에게 드리는 글 (14) - 트럭 전복사고
게시물ID : humorbest_6280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중대장
추천 : 25
조회수 : 2826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2/12 10:06:54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2/12 00:43:41

간부가 적어서 일주일에 두번씩 당직이 돌아왔다. 아주 죽을 맛이었다.
당직을 하고 나면 다음날 오전취침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그런것도 없었다.
밤샘은 밤샘이고 다음날 작업은 작업이고 따로따로였다.


그날 석식후에 상황실에 앉아 아까 작업나간 인원들을 체크하고 있을 때였다.


딸딸이가(TA-312 자석식 전화기) 요란하게 울렸다.

 

** TA-312는 수화기 고장시 말하는 곳을 귀에 대고 들어도 잘 들린다.
수화기가(귀에 대는 부분) 고장이나 파괴되었을 때에는 송화기(말하는 곳)을
무전기처럼들고 입과 귀를 번갈아가며 이동하며 통화하면 된다. 감도가
좀 떨어지기때문에 소리를 질러야 한다. 보기에는 좀 웃기지만 진짜 된다.

 

아까 선탑나간 이중사가 숨이 턱에차서 외쳤다.


- 이소위! 아이구 이소위! 일났다! 일났어! 10분전에 호박돌 가득 싣고 오던
두돈반이 논두렁에서 굴렀소! 적재함에 김병확이 앉았다가 돌무더기에 칵 깔리삣다!
어이구구구... 우야노.. 이 일을 우야노..


그는 숨이 차서 그런지 아니면 감정이 격해서 그런지 꺽꺽대고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평소에 반말 비슷하긴 해도 존대를 꼭꼭 해주던 그가 반말로
마구 외치고 있었다. 사고지점에서 가까운 인접부대로 뛰어와 전화하는 것이라
했다.


사망사고다. 머리털이 곤두섰다. 김병확 이병. 심중위가 장난삼아 어이 김병화이~
라고 부르곤 했던 김이병. 다른 병사들보다 확실히 한 박자 늦던 그는 특이하게
넓고 큰 앞니 두개를 내보이며 씩 웃는 웃음이 아주 재이있던 친구다. 덕분에
깐따삐야 라는 별명을 얻었다.(둘리의 도우너와 닮았다.)


- 잠깐 잠깐, 이중사요, 숨좀 고르시고요, 김병확이 어찌 됐다고요? 그리고
이중사는 괜찮습니까? 운전병은요? 작업병력은요?


- 두돈 반 가득 호박돌 싣고 오다가 운전병이 마 존게 아인가 싶심더. 길도 쫍은데,
오른쪽 바퀴가 논두렁으로 미끄러지면서 굴렀고요, 나하고 운전병은 바로 띠
내리가 개안코, 적재함에 작업병력들도 워낙 서행이라 다 띠 내려갖고 개안은데
김병화이 글마가 졸고 있었는지 미처 못 띠 내린기 아인가 하는데.. 글마 아마도...


- 아마 뭐요?


- 아마 틀린기 아인가.. 싶심더!


이중사는 거의 반 울고 있었다.


아아 이런. 우리 불쌍한 깐이병. 매일 고된 작업의 강행군을 하더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다음절차는 급히 연본 의무대에 연락해서 앰뷰런스를 출동시키고 대대장 및
상급부대에 상황전파를 해야한다. 일이 끝나면 헌병대 그리고 재수없으면
보안대의 조사를 받게 되겠지. 이제 줄줄이 골치가 아프게 생겼다.


그런데 잠깐. 이중사는 사고가 나자마자 인접부대에 뛰어와서 전화를 했다.
그렇다면 사고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사고현장과 이중사의 위치는 뛰어서 10분 거리다. 차후 상황전파는 어떻게
업데이트 되는가? 뻔하다. 이중사는 전화대기를 하고 병사가 교대로 현장과
전화대기를 하고있는 이중사 사이를 셔틀처럼 왔다갔다 할 것이다.


말이 뛰어서 10분거리지 전력질주로 10분을 뛰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상황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포반장급 똘똘한 하사를 호출해서 렉카차 선탑시켜 현장으로 보내고
연대 의무대에 앰뷰런스 출동 전화를 하기로 했다.


막 전화기를 드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 보좌관님? 이중사요.


아까보다는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 김병확이 살 수 있을것 같심더. 아니, 생명에는 지장 없을것 같다 하는데..
근데 아아가 워낙 많이 다치가가... 일단 다른 트럭에 태워서 연대 의무대로
보냈심더.


좋은 소식이었다. 앰뷰런스는 출동 안해도 좋게 되었다. 나는 상황전파를 잠시만
보류하기로 했다. 잠시후 다시 전화가 울렸다. 사고를 낸 트럭 운전병이었다.
짜식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충성! 보좌관님 김병확이 심각한 중상은 아니랍니다!


시시각각 김병확이의 상태는 좋아지고 있었다. 나는 상황전파를 보류하기로
했다.


십분쯤 지나 또 전화가 울렸다. 또 다른 병사였다.


- 충성! 보좌관님 김병확이 경상이라 일단 부대복귀 하랍니다!


죽었던 애가 한시간도 안되어서 중상에서 경상으로 바뀌었다.


대충 그림이 보였다.


트럭이 굴렀다. 선탑자와 운전병 그리고 적재함에 타고있던 병력은 다 뛰어
내렸다.


그런데 김병확이 안보인다.


저만치 굴러 옆으로 누워있는 트럭을 샅샅이 찾아보니 사람 머리만한
호박돌 무더기 밑에 김병확이 다리가 삐죽 나와있고 미동도 없다.


죽었구나! 판단하고 모두들 어쩔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래도
간부인 이중사가 인접부대로 뛰어가 최초로 상황 전파.


한시간 후 렉카차가 보였다. 사고난 트럭은 휀다가 처참하게 구겨졌을 뿐
다른 곳은 멀쩡해 보였다.


곧이어 누군가가 상황실로 들어와 보고를 했다. 깐따삐야였다.


- 충!성! 이병 김병확 작업 마치고 복귀했슴다!


깐이병은 이마에 대일밴드 몇개를 붙였을 뿐 멀쩡했다.
아무리 작업 잘하고 사격 잘해서 사단 표창받고 돌아온 모범 병사라도
이때 깐이병 만큼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나도 반가와서 나도 모르게 와락 끌어안았다.
우리의 깐따삐야 이병은 영문도 모르고 눈만 껌뻑껌뻑할 뿐이였다.


나중에 전해들은 정확한 사안은 깐이병이 돌무더기에 깔렸던 것은 맞다.
다리 두개만 삐죽 내밀고 죽은듯 미동도 안했던 것까지는 맞다.


그런데 10분 후에 돌무더기가 들썩이더니 깐이병은 이마빡에 몇개의
찰과상과 함께 스스로 돌무더기를 헤치고 나왔던 것이었다.


한참 돌무더기를 치우느라 법썩을 떨던 나머지 병력들중 한놈씩 교대로
전화대기하고 잇는 이중사에게 상황전파를 했으니 그렇게 상황이
왜곡이 되었던 것이었다. 마치 사람을 일렬횡대로 세워놓고 귓속말
단어 전달하기와 같은 상황이었으니 제대로 정확하게 사실전달이 될
리가 없었다.


상황 진행중에 이중사는 안되겠다 싶어 병사 하나 전화기 들려놓고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아무튼 우왕좌왕 혼란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상황발생시에는 즉각대처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상황파악이 최우선이다.
귀관은 어떠한 사고가 발생해도 다 수습할 수 있다.
겁먹지 말고 침착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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