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반 글이라 정말 엄청나게 깁니다.
괜히 무리하게 3 등분 한거 같습니다.
집에와서 다짜고짜 오데사로 가라는 모스.
모스의 화법은 특이합니다.
미국인들의 화법은 원래 기본적으로 우리랑 차이가 좀 있는거 같긴 합니다만
무뚝뚝하고 거친 카우보이면서
아내의 말에 꼬박꼬박 다 대답해줍니다.
묻는말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대답해주지 않고
그냥 제멋대로 대답해주는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가부장적인 느낌과 아내를 어린애 취급하는것 같지만
얕보거나 무시하지는 않지요.
학대적이고 강압적인
비뚤어진 우리사회의 권위주의적 인식과 비교하고 싶군요.
이 장면이 암시하는건 전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평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엉망인것에 기인한
우리의 언어생활에 대한 문제점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남녀 간, 가정 내, 수직 관계 간에서 특히 심하게 두드러지는)
수구적 보수와 마초의 상징인
80 년의 텍사스 카우보이의 묘사가 이정도인데
우리는 아직도...
우연만으로 사랑스럽고 미인인 아내를 얻는 사람은 없는거 같습니다.
왜 혼자 가야하냐는 아내에게
시간 경과에 기인한
갱스터의 추적 예측과 분석, 보고를 하는 모스.
너무 당연하거나, 감정에 관련된 대답은 잘 안하는
퇴역 군인이자 카우보이 모스는
언제까지 오데사에 가있어야 하냐는 아내의 질문에
`당신이라면 언제쯤 20 억을 포기할거냐`
고 되묻는 대답을 해줍니다.
`모른다` 라는 의미의 대답을 해야 보통일텐데
저 대답의 의미는...
모스는 늘 아내를 이름이나 you 로 부르는데,
여기서 아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베이비` 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자막으로 보니까 놓치기 쉬운 부분이겠죠.)
이건 죽음을 예감한 모스의 무의식을
소소하게 표현함과 동시에,
감독이 `남성적` 이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을
은근하게 표현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합니다.
모스는 마초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니까요.
(퇴역군인 + 참전용사(추정), 가난한 텍사스 카우보이, 가장)
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모두가
아주 강한 상징성을 띄고 있습니다.
특정 하나의 대상을 획일적으로 의인화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어떠한 계층과 사회현상을 연상시키는 행위를 하고있지요.
(만약 한 사람이 한 두가지를 집요하게 상징했다면)
(철학적 영화가 아니라 풍자 영화라고 했을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고작 그런 수준이 결코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은 영화 자체 줄거리를 연기 하면서도
사회현상과 특정 계층까지 내적으로 표현하는
다중적 연기를 하는 느낌입니다.
집중해서 세세하고 분할적으로 보면
정말 기가막히게 놀라운 영화입니다.
마약, 돈가방의 주인쪽에서 안톤을 청부업자로 고용한것 같군요.
수신기는 돈가방 안에 발신장치가 되어있다는 거고,
이제부터 갱스터와 모스의 싸움이 아닌
안톤과 모스의 싸움이 된다는걸 말해주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흔히 청부를 하게되면
청부한 쪽도 여생이 절대 편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처럼,
악에겐 같은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걸 보여줍니다.
(정중하던 안톤은 수신기를 받고, 현장을 확인하자마자 고용자측을 살해합니다.)
영원성, 진정성이 없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 자체의 삭막함과 허무함을 보여주는것 같기도 하고요.
안톤을 자본주의로 생각한다면,
외교의 본질이자 종착역을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저 빨갱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악 이라는 얘기 아닙니다.)
중요인물인 보안관 아져씨. (영화 내 모든 등장인물이 중요하지만.)
유려한 말솜씨로 멋지게 등장하네요.
이 황량하고 메마른 분위기의 영화에
단 한마디인데도 정말 이질적인 정도로 유려하게 느껴집니다.
사이좋고 가까운 부부간의 대화 같지만,
왠지 모르게 아내는 보안관을 아이처럼 대하는 느낌입니다.
퇴임을 앞뒀고,
부관에 비서까지 있는 보안관인데 말이죠.
사실 이 부분에서 저는 매우 큰 이질감을 느꼈는데요,
인물간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생략된 부분이 아주 많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책을 영화화하면 어쩔수 없이 생기는
축약으로 인한 어색하고 무리한 전개의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원작 소설이나 시를 못 읽었습니다.)
또한, 원작 소설과 무조건 똑같은 내용으로 구성하지도 않는게 흔하다보니
이 영화의 난해함이 심해진것이 아닐까 싶어요.
보안관의 행적은
영화를 몇번이나 되돌려보고 생각해봐도
첫 등장부터 시작된 이질적인 느낌이 사라지지 않고,
정상적인 캐릭터라는 느낌이 아닙니다.
원래는 완성된 퍼즐 액자 인데,
영화로 옮길때 퍼즐 여러 조각을 빠뜨릴 수 밖에 없었던 느낌입니다.
빠뜨려선 안될 묘사가 많은
애초에 특이하고 심오한 인물인데,
수정하지 않고 그냥 건너뛰기만 한 채로 나와버린것 같은 느낌입니다.
현장을 둘러보는데,
나이든 보안관 답게 빠르고 완벽한 추리를 해냅니다.
젊은 부관은 어리숙하고 어설프며, 모자른게 아주 많아 보이지요.
철없는 부관에게 짜증내거나 엄하게 타이르지 않고,
관용적 자세로 대합니다.
상관과 부관이라기 보단,
교육자와 학생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시사성 미국 영화엔 빠짐없이 등장하는 멕시코 비하.
외국인 혐오를 이용한 프로파간다는
우리도 지긋지긋하게 당하고 있지요.
(미국은 멕시칸, 인디언 우리는 조선족, 일본인.)
비하 강도가 꽤 높은걸 보면
감독은 정체성이 확실한 미국인이며,
보수 혹은 수구 성향을 가진 인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나쁜 의미의 수구가 아니라.)
더불어, 이 영화는 정치 분야를 내포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지요.
(사실 원래 철학은 정치를 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구현할 수 없는 철학은 공상일 뿐이고,)
(철학을 구현할 방법은 정치 말곤 거의 없습니다.)
이 영화가 너무 난해한 또 하나의 이유가 나온것 같죠?
시사성을 가미했다면,
미국의 정치상황이나 미국 역사를 상세히 모르는 우리는
당연히 100% 이해가 불가능 합니다.
영화내의 너무 이해 안가는 장면들은
우리의 이해력 부족이 아닌, 이런 이유일 확률이 높은것 같아요.
간단한 근거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인
주유소 주인과 안톤의 동전 앞뒤 맞추기는
당시 미국의 정치 풍자로도 볼 수 있거든요.
1980 년의 미국은 석유 파동으로
지독한 경제위기가 있었습니다.
초라하고 빈곤해 보이는 주유소와 늙은 주인...
(주유기 달랑 하나, 구멍가게만도 못한 내부.)
하지만 마침 80 년에 딱 석유 파동은 멈췄고
이걸 주유소 주인의 극적 생환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보통 첫번째 무기나 이념과 얽힌 인물은 사망하는게 보통인데,)
(생존이 꼭 보장되야하는 장기적 등장인물이 아닌 주유소 주인이 동전을 맞춰버리죠.)
주인의 심약한 태도는
당시에 인질 사건에 믿음직한 대응을 하지 못한
지미 카터 대통령의 모습을 연상할 수도 있지요.
80 년엔 대선도 있었고,
카터는 공헌도 많았지만 저걸로 연임에 실패합니다.
(물론 차기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 거저먹었다고 볼 순 없습니다.)
게다가 안톤은 땅콩 같은 과자를 하나 사먹죠. (안톤의 유일한 음식물 섭취 장면입니다.)
지미 카터는 땅콩 농사꾼 출신입니다.
그렇다고 안톤을 미국 대통령이나
자본주의 그 자체로만 인식하시면 안됩니다.
안톤은 추상적 인물입니다.
사람을 살릴수도, 죽일수도 있는 산소무기는 돈에 비유할 수 있지요.
소리없이 가정에 침투하는 점까지 일치합니다.
자본주의는 경제(돈)를 통해
당신의 식탁 메뉴까지 정해줄수 있습니다.
...이런걸로 날 궁금하게 해도 나는 영어 공부를 하지 않는다.
우유를 마시지도 않고 꺼진 TV 를 응시하는 안톤.
배경음도 거의 없고,
고요하고 정지된 모습들은 생각, 고찰을 강요합니다.
이 장면을 분석 하기 위해 미국의 엄청난 근현대사를 공부할 순 없으니,
거대한 폭력 앞에선
오히려 침묵하는 언론을 말하고 싶은게 아닐까 정도로 추측 합니다.
정말 굉장히 파격적인 장면이지요?
안톤과 마주쳤고, 심지어 대립했는데도 살아남았습니다!!
분노까지 보인 안톤은 어째서 그냥 돌아갈까요?
이 또한 여러가지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제가 가장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장면 하나때문에 글 자체를 포기하려했었습니다.)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었습니다.)
일단 제 기본적인 이해와 분석은,
안톤은 자신만의 철학이 꽤 투철한 인물이며
불필요한, 혹은 정당성이 결여된 살인은 하지 않습니다.
내가 취할것이 있거나, 나쁜놈이거나, 나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면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범죄 철학.
(안톤은 자꾸만 정당성과 공정함을 강조하고 있죠.)
완고하고 당당한 직원의 태도는
모스의 위치를 쉽게 말할것 같지 않으며
실제로 모를 확률이 너무 높은데다가
위협이나 설득보단 고문을 해야 입을 열까말까 한 상대죠.
안톤은 학대나 살인을 즐기진 않습니다. (쾌락 살인마와는 정말 거리가 멀죠.)
즉 안톤에게 꼭 필요한 살인은 아니라는 거지요.
심지어 안톤의 말에 얽혀들지도 않습니다.
(이 얘기는 마지막쯤에 한번 더 할겁니다.)
그리고 안톤은 방향성,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에 아주 민감합니다.
쉬거(Chigurh)라는 이름부터가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굳이 만들어 낸거고,
명확한 철학과 의지로 움직이는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게 다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주유소 주인에게도 그랬죠.
처음엔 멀뚱히 과자값이랑 가스값 물어봅니다.
근데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듣자마자 돌변 합니다.
안톤을 의심하는 느낌따윈 전혀 없는
질문이라기도 뭐한, 평범하게 이야기를 건넨 수준인데 말이죠.
정치, 시사적인 측면에서 봐도,
정체성, 방향성에 대한 질문은 정말 고통스럽지요.
지긋지긋한 빨갱이 타령부터,
좌파에겐 애국심을 묻고, 우파에겐 도덕심.
진보에겐 성장을,
보수에겐 분배를 물어가며
결론은 없고, 손해와 모순, 고통만 있는 질문 입니다.
이런 정체성이나 방향성을 묻는 질문은 보통
더욱 강력한 질문(네거티브)으로 파묻어버리거나
대답을 피하며 화제전환을 해야만 하지요.
우문현답이나 건전한 토론, 타협은 거의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정치 공세 중에서도
정말 최악으로 저질스럽고 짜증나는 질문이지요.
마지막은 기독교적 해석.
안톤은 같은 질문을 반복 합니다. 세번.
직원은 세번 다 거부하지요.
닭이 2 번 울기전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 부정한다는 이야기와 아주 비슷하지요.
세번 거부한뒤,
가까워지는 발걸음 같은 인기척이 들리니 안톤이 떠납니다.
안톤이 고작 그 인기척이 신경쓰여서 그냥 갔을까요?
절대로 그렇게 볼 순 없지요.
저는 신학쪽의 지식이 적어서
앞서 이런쪽 방향으로 해석을 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성경을 묘사한거라고 가정해놓고
작정하고 처음부터 분석하면
지극히 성경적인 해석도 가능할겁니다.
(기독교의 문학은 광범위한 만큼,)
(정치, 철학과 연계가 쉽지요.)
게다가 미국 영화니
성경을 암시하는게 별로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아카데미를 휩쓸고
수없이 많은 극찬을 받는 영화답게,
정말 광범위한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월마트에서 일하게 해서 욕먹는다는 걸까,
월마트에서 일하니 욕과 정신노동에 익숙하다는 뜻일까.
(1980 년은 월마트가 본격적인 성장세에 들어서는 때기도 합니다.)
차를 빌릴거라는 모스에게
돈이 없잖냐는 소릴 또 하는걸 보면,
모스는 정말 지독한 거지...
바로 옆의 가방이 완전한 자신들의 소유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전에 없이 갑자기 능글거리며 약간 들떠 보이는 모스.
컬러 진은 불안을 호소하며 이별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컬러 진은 수동적이고 약한 소시민을 대변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자유, 은퇴, 지나친 부, 독립에 대해
무척 강한 불안감을 보이지요...
80 년 당시의 미국 여성들의 위치를 보여주는걸 수도 있겠습니다만,
컬러 진의 감각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은
년도와 국적과 무관하게 익숙합니다.
다 적자면 너무나도 길어지니 그러진 못하지만,
아내의 바람(바램)과 모스의 절망적 욕심은
비극적 결말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이렇게 보고있는 나 또한
같은 상황이라면 모스와 똑같은 선택을 할거라는 생각에
여러가지로 너무나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입니다.
똑똑똑, XXX 입니다!! 라는 말 (특히 영어) 을 들으면
짐 캐리의 `케이블 가이~` 밖에 생각이 안납니다.
딱 노크 장면만 기억나는데,
그 장면이 살면서 영화보고 웃은것중 제일 심하게 웃은거 같네요.
...진짜로 숨습니다.
그냥 장난같아 보이는 모습이지만,
사실은 벨 (보안관) 의 정체성에 대한 강한 암시로 봐도 되실겁니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진지함만이 철철 넘치죠.)
벨은 유능하지만, 절대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요.
자본주의는 당신의 식탁 메뉴를 정할수 있다고 했죠?
도덕성이 없는 정부일수록, 강하게 강요할수 있습니다.
안톤과 같은것을 보고있는 벨 보안관.
기본적이고 훌륭한 수사관의 마음가짐이네요.
하지만 안톤은 우유를 마시지 않은것 같군요.
허언이 거의 한글자도 없는 이 영화는
어쩌면 벨 또한 똑같은걸 정말 봤지만
베드로 여직원을 찾아가지는 않는다는걸 보여주는 걸지도 모릅니다.
고지서는 못읽었지만, 이건 읽을수 있습니다. 알 이 쥐 에이 엘 엠 오... 호텔.
돈과 관련해 수없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들게 하는 모스 아져씨.
여러분, 돈은 지키거나 모으는게 근본 목적 인게 아닙니다.
환풍구에 돈을 숨기는것에까지 굳이 의미를 부여하진 않겠습니다...
...아아 장모님...
한 두마디로 정말 엄청나게 많은걸 설명하는 능력자...
.......귀여운 안톤쨔응의 초보 운전.
"살인마가 타고 있어요."
교통 안전 공익 광고로 써도 될듯 합니다.
"살인마도 과속, 난폭운전은 하지 않습니다."
모스가 가까이에 있군요.
산소통과는 비교도 할수없는 엄청난 무기를 들고왔습니다.
이름하야 열파참 소음기가 부착된 샷건.
저는 살면서 샷건에 소음기를 부착해 놓은건 처음 봅니다.
게임에서조차 본적 없는 소음기 샷건은,
허풍입니다 허풍!!
아무리 봐도 상징성과 시사성을 보여줄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폭력에
한계가 있거나, 결코 약하지 않음을.
(안톤은 살인을 피하지도, 은폐하지도 않는 인물이면서)
(반드시 소음이 없는 무기만 사용합니다.)
(피가 묻는걸 싫어하면서 상대를 박살 내는 샷건을 쓰고요.)
(이정도면 암시라기보단 거의 광고급입니다.)
안톤이 돈가방의 흔적과 관리 방식을 봤네요.
영문판 이건희...
안톤을 고용했던 부패한 기업가는
이번엔 안톤의 처리를 위해 칼슨 웰스를 또 고용하는군요.
결코 호의적이진 않은 대우를 하지만,
그가 제공한 카드는 하루 120 만원까지 사용 가능한
총액 12 억 짜리의 엄청난 카드입니다.
허세가 가득한 웰스는 이 말도 안되는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북미건희 기업가의 제안과 보수는 얼핏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야말로 기만에 가득찬 사기 계약 입니다.
안톤을 잡는데 1000 일이나 기한을 줄리도 없으면서
더 줄수도 있다는 식의 헛바람을 잡는 약속을 한거죠.
비가 안올때 우산을 빌려주고
비가 올때는 우산을 빼앗는,
웰스는 이 돈을 다 쓸수 없어요.
웰스는 얼마 못가 죽게 될겁니다.
안톤에게 죽던,
안톤처럼 죽던...
하지만 허세에 가득찬 웰스는
이 뻔한 사기 계약을 받아들이죠.
안톤을 상대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모스처럼 뻔한 죽음 앞에서도 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걸까요.
온갖 시건방과 어이없는 농담을 날리곤 사라지는 웰스.
(이건희에게 까불었다가 온전한 사람은 거의 없거늘...)
차림새부터 성격까지,
아는게 꽤 있긴 있으나
하필 하나 모르는게 `세상물정` 인,
사회초년 젊은이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기업의 무서움도 모르며, 위 장면들은 소모성 단기 인력을 뽑는 면접 장면 이지요.)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수상해서 일어난 모스.
발신기의 존재를 알게됐고
안톤을 대비합니다.
그 전에는 그토록 치밀하고 정확하던 모스는
매우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네요.
안톤이 그만큼 강한 상대라는 반증일까요.
사실 발신기를 소유하고있던때가
안톤을 쉽게 잡을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지요.
추적 당하는것과 유인 하고있는것은 아주 작은 차이 입니다.
유일하게 안톤과의 정면 대결을 한 인물이며,
안톤에게 큰 상처를 입히기까지 합니다.
거대 권력, 부패 정부에 맞서
가난한 유권자의 정치 참여, 역풍 등으로 해석을 이어갈수 있습니다만
이미 내용이 지나치게 길어졌으니 상세한 해설까진 하지 않겠습니다.
힘 없는 서민, 가난한 소비자가
어떻게 정부나 기업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냐고 생각하는분이 절대다수 입니다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그게 가능 하기에 살아남고 유지되는 구조입니다.
약간 비약하면,
오직 이거 하나만으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패퇴를
유도하고,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참기 어려운 분노를 일으켰던 장면이죠.
이 장면 또한 엄청나게 함축적인 시사를 하고 있지요.
호의의 습관성, 기대와 상식, 양심 대한 배신,
아직 죄도 안 저질렀는데, 연쇄 살인을 하던 안톤보다
더 강한 분노와 혐오를 부르는 감정과 논리의 뜨거운 간극...
저는 분노의 이면에 살짝 암시해놓은 부분을 말하고 싶습니다.
모스는 그간 습관적이고 강박적인 절약을 해왔습니다만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거액을 사용합니다.
그것도 고작 허름한 윗옷 한벌에.
또, 모스 뿐만더러
이 영화내에서 실제로 돈을 건네 주며 거래가 성립되는 장면은 처음이지요.
핵심장면인 안톤의 동전 조차도 건네 주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았고,
모스의 쇼핑때도 계산 장면만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꼭 보여줘야 했던 장면은 건너뛰어놓고,
안그래도 바쁜 영화에서 이 장면을 굳이 담아냈다는건
이 거래에 함축된 내용과 말하는 바가 아주 중요하다는 거지요.
어떤것을 얼만큼 떠올릴지는 당신의 몫.
(엄청나게 복잡하고 다중적 의미를 2 시간 안에 소화해야 하는 영화다보니)
(큰 의미 없거나, 눈요기 장면 따위는 일절 없지요.)
맥주는 마셔서 통증을 덜려고 받은게 아니었군요.
그저 그런 흔한 멕시칸 주폭을 위장하기 위한 구매였지요.
실제로 통증이 정말 심한 상태일때는
술은 마시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저런 외상에 술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와중에 어색하긴 커녕,
오히려 평소 모습보다 이 꼴이 훨씬 잘 어울리는 모스.
멕시코로 국경을 넘는 이 장면에서는
영화 협찬에 코로나 맥주가 참여했음을 유추...
멋지고 세련된 모스의 임기응변의 이면에
지긋지긋한 미국의 멕시코 비하를 또 끼워 놓았지요.
멕시칸은 원래 저런놈들이라는 의미도,
저런놈들은 멕시코로 넘어가도 괜찮다는 의미도...
실제 멕시코는 이런류로 좀 문제가 많긴 합니다만
미국은 그걸 또 집요하게 이용해 먹기도 합니다.
한국내 조선족, 외국인 노동자와 똑같지요.
해결할 수 있는데, 해결하지 않는 정부,
해결해선 안되고, 더 부추겨야만 하는 정부.
그들이 우리에게 그저 필요악 일까요?
그들은 희생자에 더 가깝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자본주의와 정부를 부정하는것이 아닙니다. 저 정말 빨갱이 아닙니다. BB탄 총도 없어요...
멕시칸과 조선족을 옹호하는것도 아니고요.
(저는 조선족이란 용어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부당하게 같은 민족 이미지를 쓰는게 싫다기 보단)
(용어 자체가 인종 차별적이고, 이념적 악용의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 조선족을 별로 안좋아하고 무서워 합니다.)
저는 부패한 자본주의의 문제와,
자발적으로 무능의 탈을 쓴채로
치밀한 부정을 저지르는 부도덕한 정부를 말할 뿐입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가 그립습니다.
스스로에게 BB...Q 를 수여하고 싶군요.
여러분. 이거 다~ 영화 얘긴거 아시죠?!!
빈사위기때 술을 마시는건, 염증 문제 뿐만더러
안전지역까지 도착하기 전에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는 문제도 있습니다.
모스 선생께선 안어울리는 역이 없군요.
모스를 깨우는 노상 악단.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직접 노출되는 음악 입니다.
(거의 나오지 않지만, 영화 배경음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경쾌하고 화려한,
하지만 왠지 악단의 표정이 진지했던 노래.
you wanted to fly without wings
you wanted to touch the sky
you wanted too much welth
you wanted to play with fire
(라틴어 계열은 늘 신비하고 아름다운 느낌이네요.)
그야말로 단 한장면도 그냥 만든게 거의 없다는
쐐기라고 볼수 있지요?
피 묻은 돈을 주는 장면의 노출 또한
지불에 대한 암시가 있음을 대놓고 외치는 수준이군요.
천재적 범죄 능력을 과시하는 안톤.
의료용품을 구하기 위해 약국에 들어가는데
차량을 폭발 시켜서 시선을 끌며 들어갑니다.
안톤의 폭력성과
지명수배중이라 병원에 갈 수 없다는것만 암시하는건 아니죠.
대중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담당자를 치워버린 뒤에
의료계에 침투하는 모습입니다.
그의 목적은 자가 치료고요.
의료 민영화를 암시하는 거네요.
우리도 무척 익숙하지요?
상관도 없고, 별것도 아닌 사건을 시끄럽게 터뜨린후
민영화를 하는것. (민영화 뿐만이 아니죠.)
민영화에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짧은 이야기만 드리겠습니다.
경쟁을 통한 발전이라는 멋진 문장의 이면에는,
경쟁에서 패배하면 도태되고 사라질 뿐임을 의미합니다.
기업간의 경쟁만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당신도 경쟁해야 합니다.
당신도 다른 소비자와 경쟁을 해야하는게 민영화 입니다.
경쟁에서 승리한 고급 서비스는
경쟁에서 승리한 고급 소비자만 이용하는 겁니다.
기업은 경쟁자가 몇개 안되지만
당신의 경쟁자는 5 천만명 입니다.
손님은 왕이라고 생각하나요?
의료는 취미나 기호성 서비스가 아닙니다.
거부하거나 포기할수 없는
의료가 민영화 됐다면,
당신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닙니다.
`을` 이 되는겁니다.
물론 물이나 전기 없이 살 수 있는분은
의료 민영화에만 집중하셔도 됩니다.
모텔 바닥에 피 튈까봐 비닐을 까는 훌륭한 예의를 가진 살인마.
영화의 거의 모든 등장인물은
격렬한 동작도, 큰 소리를 지르지도, 심하게 감정 표출을 하지 않습니다.
안톤의 경우는 특히 심한데,
비명도, 신음도 거의 없습니다. 인상도 거의 안쓰고요.
제가 살면서 본 바로는
이건 자제력 보다도 원래 성격과 표현 방식 자체가
눈에 잘 안띄는 사람 같습니다.
매에는 장사 없고, 인내와 자제는 회복이 느리더라구요...
안톤은 표정하나 없이 안아픈듯 멀쩡해 보이지만
TV 도 꺼버리고, 마취제도 쭉 놓는걸 보면,
느껴지는게 있군요.
예고 불륜의 패기
마약감식반도 계속 피하고, 용의자에 대한 정보까지도 안 듣습니다.
계속해서 직접적인 수사와 관련된 모든걸 피하고 있어요.
하지만 완전히 사건을 무시하는것도 아니며
추리와 분석, 파악은 사건을 무척 정확히 보고있지요.
공무원 특유의 미온적 태도만을 보여주는게 아닌거 같습니다.
매일 새롭게 전념해야 하는게 정의라는데
자신은 하루에 두번, 세번 전념해야 할것 같다고 합니다.
정의감이 부족하다는걸까요, 정의의 화신이 되고 싶다는 걸까요?
저는 벨 보안관의 정체성의 윤곽을 이렇게 잡았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정의.
침묵하는 지식인.
물론 벨은 방관자, 힘 없는 공무원,
`노인` 정도로 보는게 더 맞을거 같습니다.
네, 저는 벨이 싫습니다.
딱히 그렇게 미워할 인물은 아닌거 같은데도
괜히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까지 겹쳐보여서 더더욱 싫습니다.
사실은 얼마나 많은 욕을 썼다가 지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법과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장면.
벨이 공무수행을 엄격하고 충실히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무게를 더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나쁜사람이 아니라는 확신도 줍니다.
뭐든 반만 아는 반푼이 웰스.
모스는 이런 미래를 분명히 알고 있었지요...
그리고 자네는 유머 능력이 없지...
ㅠㅠ
심지어 라니... 너랑 같은놈이 있긴 있냐?;;
예쁘고 화사한 꽃다발로 시작하는 이 장면들은,
아주아주 강한 강조를 한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황량하고 메마른 영화 분위기에서
정말 너무 안어울리게 알록달록한 꽃다발을
그것도 이런 철부지형 인물이 들고 왔다는건,
감독의 강한 표현이 담겨있는것 같아요.
감독은 이 장면을 꼭 기억에 남겨주고 싶어하는것 같습니다.
직접적으로 모스의 과거를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모스는 직업이 2 개 였던것 같네요.
(저는 영어에 능하지 않아서 미국식 어순의 특징을 오해했을수도 있습니다.)
용접공때 전문분야 없이 다 했다는건
그만큼 유능했다는 얘기가 절대로 아닐겁니다.
모스는 이거저거 마구잡이로 일했던
힘들고 고된 노동자 였다는 얘기겠죠.
(전업 얘기에 자부심이 안느껴지고, 기피한다는건)
(정말 힘들고 고되서 싫었다는 뜻이지요.)
(정말 지독히 힘든 군생활을 한 남자들이 오히려 군대 얘길 안하려고 하듯이.)
그리고 Nam 이라는 생소한 전문 축약어가 등장합니다.
축약어 또한 첫 등장이고
모스는 약간의 뜸을 들이다 대답합니다.
Nam 이 상징하는게 뭔지 알수 없어서 검색해봤는데
그다지 비중있는 단체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베트남을 의미하는것 같다는 분들이 많더군요.
제가 볼때도 그런것 같습니다.
초반부터 나오던 일반인을 크게 상회하는 전투능력,
시체와 부상에 관해 엄청난 침착함.
군인을 넘은 참전 용사의 느낌은,
베트남전에 참전 했다는 의미겠지요.
이 장면은 감독이
베트남전 참전 용사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은것 같습니다.
Nam 소속이었단 모스의 대답을 듣자마자
시건방의 상징인 웰스가 모자를 벗거든요.
안톤 제거의 목적을 가진 웰스가
안 어울리게 모스에 대한 보호 의무를 말하기까지 하고요.
미국의 역사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알면
더 깊은 분석도 가능할 장면 같습니다만,
저는 미국인이 아니니
감독의 참전 용사에 대한 경의와 존경,
그리고...
참전 용사에 대한 부당하고 낮은 대우.
가난할 수 밖에 없는 퇴역 용사와
베트남전으로 인한 미국의 피해와 충격을 비난하는걸
지목하는 정도가 맞는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미국이 그래도 잘살고, 공평하고, 정의롭고, 개방적이며, 풍족하다 생각하지만)
(그건 미국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허상이고 착각 입니다.)
컬러 진은 모스의 아내라기 보단, 연인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남편이 최강자일거라고 생각하는군요.
직접 같이 살아보면 이 세상의 남편이란 존재들이
얼마나 한심한 놈들인지 알텐데 어떻게 저럴수있지... 아! 신혼인가...?
아 경험담이나 내 얘기 아닙니다. 정말 아님. 진짜 아님. 아님.
공포감을 앞세워 하는 설득, 전달 화법.
효과도 좋고, 벨은 틀린 이야기를 하지도 않습니다만
저는 이런 화술을 정말 혐오합니다.
사실 이 두사람은
모두 안톤을 본적도 없고, 사건의 자세한 정보도 없습니다.
하지만 둘다 내용을 무척 잘 꿰뚫어보고 있네요.
벨의 능력이 이런정도면
컬러 진을 설득하고 보호하는게 아니라
안톤을 잡으러 가도 충분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영화에서 생략된 부분인지도 모릅니다.)
100% 허세는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웰스.
가방을 찾아★냈지만, 들고 오진 않습니다.
좀 황당하고 한심한 느낌이 강했지만
어쩌면 꽤 유능하고 괜찮은 인물인지도 모릅니다.
....................아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
마냥 기분 좋은 안톤쨔응
형광등 100 개를 켜놓은거같은
눈부신 안톤쨔응의 미소에 감히 눈을 못드는 웰스쿤.
웰스의 불안해 하는 모습은, 무능한 인물만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웰스는 안톤과는 정말 상성이 안맞는 느낌입니다.
상황, 관계의 특수성을 떠나서
아예 서로 간 대화의 초점 자체가 안맞습니다.
웰스쿤은 품위 있어 보이기 보단,
살아있어 보이길 원하겠죠.
(여담으로 안톤의 중저음 목소리가 아주 매력을 발하는 장면들 입니다.)
(둘다 대단히 세밀하고 현실적인 내면 연기까지 보여줍니다.)
(표정, 시선, 미미한 몸의 움직임, 말의 강세, 호흡까지 정말 엄청난 연기력들을 보여줍니다.)
(대체로 전 등장인물이 다 그렇긴 하지만요.)
죄송합니다. 웰스쿤은 생존도, 품위도 관심없었습니다.
웰스는 죽음을 받아들였는지,
안톤이 자존심의 마지노선을 건드린건지 공포를 좀 벗어난거 같습니다.
정말 무척 기분이 좋고 우월감에 취해있는 안톤.
영화에선 거의 묘사된게 없지만
안톤과 웰스는 숙적이거나,
오랜 관계가 있는것 같습니다.
웰스의 규칙이나 인격, 신념 같은건
전혀 보여준게 없는거 같은데
이런 대화가 나오니까요.
어떤 싸움에서도 희망을 0% 로 만드는건 서로 위험합니다.
자존심의 마지노선 또한 건드리지 않는게 좋습니다.
대화의 포인트가 안맞는 두사람.
안톤은 인간을 보고, 인간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철학만 보고, 생각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더이상 대화할 생각이 없는 웰스.
안톤은 그간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 같은걸 즐긴적이 없는데
웰스의 불안과 공포는 대단히 기뻐하며 즐깁니다.
서로 간의 꽤 깊은 내적 요소가 있었던게 분명해 보이죠?
웰스와 안톤과의 관계는 묘사된게 너무 적다보니
꽤 중요한 장면이지만 타당한 분석은 무리겠습니다.
이 상태만으로 대충 느껴지는건
굳이 적고싶진 않은 내용들이네요...
웰스의 죽음은 작은 의미가 하나 더 있습니다.
강조되지 않은 부분이라 거의 다들 모르고 계시지만,
`카우보이 모자` 를 쓰는 사람중 2 번째 죽음입니다.
첫번째는 시작때 안톤을 체포했던 보안관. (모자를 쓴 채로 죽지는 않았음.)
두번째가 웰스 입니다.
영화내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쓴 인물은 한정돼있고,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리숙한 부관과 관용적 혹은 미온적 태도의 벨 보안관.
...내가 벨이었으면 폭언을 쏟아냈을 장면입니다.
여전히 벨은 구체적 증거와 참여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해결해 줄 생각이 없다기 보다도
이 사건에 얽히고 싶지 않아서 애쓰는것 같습니다.
이런 심각하고 끔직한 이야기를
농담처럼 받아들이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부관.
점점 삭막해져가는 세상과
현실감각과 도덕관념이 이상해져가는 젊은세대를 보여주고 있네요.
지금 벨 자신의 태도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 일조한다는것을 알고 있을까.
벨 보안관이 바로 `노인` 의 모습을 상징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끊임없이 멕시칸 비하를 달고 사는 벨은
고령층이 보수화 되는 현상을 보여주는것 일수도 있고요.
(노인들이 보수를 지지하는게 되는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바지도 안입고 있는 사람을
Nam 소속이었단 한마디에 국경경비대가 `모셔다` 드립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장면 자체를 스샷찍으며 다시 보다 거의 처음 봤습니다.
워낙 내용이 난해하고 함축적이다보니
처음 봤을때 집중도와 이해도가 엄청나게 낮았습니다.
대선 끝나고 얼마 안되서 이 영화를 처음 봤던거 같은데
너무 끔직해서 정말 절대로 다시 보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죠...
당시의 피폐했던 제게는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 그 자체인 영화였습니다.
파격적인 차림새의 모스와 명확한 발음이 멋진 가게 주인.
...기껏 새옷을 사입는다는게 이전과 완전 똑같은 옷...
안톤과 갱스터가 쫓아올텐데 외모의 변화를 안주다니...
여자의 감 일까, 사랑의 힘 일까.
합리적인 선택 같아보이지만
상대는 어느정도 미친건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안톤.
기약 없는 도망 생활을 선택하느니
원인 자체를 제거하겠다는 생각은 무척 좋군요.
모스는 안톤과의 정면전에서
유일하게 도망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회장님, 웰스 안부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어딘가 약간 성향이 바뀐거 같은 안톤.
동전 맞추기가 아닌, 연장을 들라는 기회를 줍니다.
사실 사상범에겐
동전 맞추기보다 이렇게 대화하는 쪽이 더 어울리는 일이죠.
이럴때의 정답은 뭘까요.
정말 짧은 시간안에 성격 표현이 가능한 분이네요;
장모님은 좀 특이한 인물 같습니다... (암환자가 아니라 치매환자 같기도 하고...)
진짜 온 천지에 널려있는 멕시칸 비하.
또 한번 벨의 실망스러운 모습이 나오는 장면.
벨, 정말 도와줄겁니까? 정말 직접 도와줄겁니까?
글쎄, 저는 벨의 태도에 무척 화가나고 실망스럽습니다만
다른분들이 볼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 장면 때문에
`방향성` 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을 굳혔지요.
여기서 안톤의 태도는 좀 이상한데요,
공항이 어디냐는 질문을 합니다.
이런 질문엔 의례 예상되는 `어디 가냐` 는 질문을 받자
모르겠다며 웃습니다.
차에 케이블을 꽂지도 않고
뜬금없이 닭장을 치울 수 있냐고 하고요.
안톤은 왜인지 차를 고칠 생각이 없습니다.
네, 차 주인은 아마 죽었을 겁니다.
안톤은 자신에게 방향성의 질문을 하는 사람을 죽이려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살인은 하지 않고요.
주유소 주인에게
나쁜놈이라는 꼬투리를 억지로 만들려고 했듯이,
여기서는 `차가 망가졌다` 는 핑계 거리를 유지합니다.
심지어 `닭장을 내려라` 는 요구는
주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거절하고 싸움을 하게 될 확률이 높지요.
동전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는데
닭차를 타고 나타난걸보면,
주인은 순순히 닭장을 치워주지 않았고
당연히 안톤에게 저항해서 죽었다는 뜻이겠지요.
만약 주인이 순순히 닭장을 치워줬다면 (주유소 주인이 시비를 잘 피했던것처럼.)
동전 맞추기를 했어야 했을겁니다.
하지만 웬만해선 그럴리가 없죠.
안톤의 웃음은 `너는 피할곳이 없다` 는 확신에서 나온게 아닐까요.
..........................운동선수 말하는 겁니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쓸법한 발성이 인상적입니다.
1. 잘 생길 것.
2. 못생기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