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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
게시물ID : panic_628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ementist
추천 : 18
조회수 : 2924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4/01/15 17:19:40
아파트 단지 밖 최촌마을이란 곳에서 학원을 다니고 있던 어린 저는 그 당시 레인가드라는 온라인게임에 빠져있어서 학원을 빼먹기 일쑤였습니다.



그 날도 집에서 게임을 하며 학원을 땡땡이 칠 궁리를 하고 있을 때, 일터에 나가셨던 어머니가

집에 전화를 하셔서 저에게 호통을 치시며 학원을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셨을 때의 후환이 두려워, 일단 집을 나서긴 했지만 학원은 여전히 가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집에서는 나와서 학원 입구에서 그냥 걷고 있었는데, 그 때 누군가가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야! 너 여기 살아?"



말소리가 난 곳으로 돌아보니 거기엔 약간은 통통하고 갈색뿔테 안경을 쓴 제 또래의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니. 나는 여기 학원다녀.. 이 건물 3층이야."


그 아이에게 그렇게 대꾸를 하고 전 또 학원을 가기 싫은 마음에 걷는 것을 멈추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공벌레를 잡으려 바닥의 돌을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뒤통수에서 그 아이의 말이 들렸습니다.



"너 뭐 잡는거 좋아해? 나랑 가재잡으러 갈래?"


마침 학원가기 싫었던 저는 그 아이의 말이 너무도 반가워서



"그래!! 우리 빨리 가자~"


하며 그 아이를 쫓아갔습니다.


그 아이는 최촌마을 뒷편의 산을 올라가더니 성림스포츠센터 건물을 지나 인창초등학교 쪽의 산을

오르고, 점점 더 사람의 인적이 없는 외진 곳으로 갔습니다.


저는 처음 본 아이에게 얕보이고 싶지 않아서 힘들다는 소리 하나 없이 혼자 낑낑대며 따라갔습니다.


그렇게 1시간여를 더 넘게 따라갔을까요?



제 얄팍한 자존심은 한 여름의 땡볕과 궂은 돌길에 서서히 무너지고 설상가상으로 신고 있던 신발이 샌들이라 발가락이 너무 아파 그 아이에게 짜증과 투정을 부렸습니다.


"야!! 어디까지 가야 가재가 있는데?! 가재 잡으러 가자며!"


그러자 그 아이는 히죽 웃으며 손가락으로 저 멀리 있는 조그마한 빌라를 가리켰습니다.


"저기가 개나리 아파트거든? 저길 지나면 57사단이란 곳이 나오는데, 거기서만 가재가 살아"


그 말에 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았어.. 가재 없기만 해봐!"



하고는 다시 그 아이의 등 뒤만 쫓아갔습니다.


그렇게 다시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걷자, 정말로 산 속 깊숙한 곳에 조그마한 계곡을 발견했는데,

그 계곡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작은 소를 이루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거기엔 정말로 제 손바닥만한 가재들이 이리 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자 봐! 정말이지? 이제 잡으면 돼."


그 아이가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고, 또 생전 처음보는 가재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그 동안 투덜거리고 짜증이 났던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가재를 잡기만 하면 되는건데, 가재들이 정말로 재빨라서 전 겨우 한마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실망한 표정을 짓자, 같이 갔던 아이가 말했습니다.


"너 되게 못잡는다. 저 밑에 내려가면 여기 물을 쓰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내가 잡아 줄께."


저는 가재 잡을 생각에 좋아라 하며 그 우물로 갔습니다.



그 우물은 특이하게 우물벽과 땅바닥이 맞닿아 있는 곳에 작고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었고 거기서는

쉴새없이 물이 졸졸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옷이 젖는 것에 아랑곳없이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서 손을 구멍으로 넣고는

무언가를 움켜쥐는 시늉을 했습니다.


"아 정말 안잡히네.. 다 있긴 있는데.. 아 진짜.."


"지금 가재를 잡는거야? 여기 가재가 있어?"


저는 그 아이가 하는 걸 가만히 보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있긴 있는데, 자꾸 손 밖으로 도망간다. 니가 우물안에 들어가서 가재 좀 몰아다줘."



라고 했습니다.


저는 신나서



"알았어!"


하고는 우물벽을 기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안을 향해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킬킬킬..."


마치 유리를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내는 듯한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였습니다.



그 때 저는 우물벽에 시야가 거의 가려졌기 때문에 그 웃음을 누가 내는지는 몰랐지만,

정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며 우물로 내려 앉았습니다.


그러나... 발이 땅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 우물은 정말 깊었고, 땅바닥 쪽에 있던 네모난 구멍은 우물물이 넘쳐 오르지 않게 하기 위한

물을 내보내는 곳이었던 겁니다.


껌껌한 우물 속으로 발이 쑤욱 들어가서 다시는 못 나올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며 미친듯이 우물벽을

긁었습니다. 발로도 계속 우물벽을 차고, 입과 코가 물 밖으로 나올때마다 숨을 쉬고 그 아이를

미친듯이 불렀습니다.


"야!! 야! 허웁.!!! 야!! 웁..."


그러나 그 아이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 때까지 살아온 짧은 인생에서도 가장 후회되는 순간들만 머릿 속을 스치며 정신을 잃는 순간에...

왼발 끝에서 제 샌들을 누군가가 벗겨가는듯한 느낌이 들더니 다시 한번 물 밖으로 떠오를 수 있었고,



저는..






깜깜한 늦저녁의 고속도로 중앙선 위에 서 있었습니다.







손톱은 다 깨지고, 옷엔 진흙이 묻고 온 몸은 흠뻑 젖은채로요.


그리고 한손엔 가재 한마리를 쥐고 왼발만 아무것도 안 신은채로요.



그렇게 제가 처한 상황이 ...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렇게 중앙선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가 겪은 일이 모두 현실로 와닿기 시작할 때 저는 목놓아 울었습니다.



방금 물에 빠져 죽을뻔 했는데, 이젠 난데없이 차들만 쌩쌩 지나다니고 분명히 한 낮에 땡볕이었는데

지금은 깜깜한 밤이고.. 어떻게 고속도로 지나시던 분 중에 저와 제 부모님을 아는 분이 계셔서

제 부모님께 연락이 갔습니다.


중앙선 가운데서 하염없이 울다가 절 발견하신 부모님의 차를 타고 전 밤 11시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은 아무말도 없이 차를 운전하셨습니다.



그러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제 57사단 이라는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저는 너무 울어 끅끅 거리는 목소리로 그 이정표를 보고서는



"끅.. 엄마 나 저기 어떤 애랑 갔었다? 끅끅.. 가서 가재잡아왔어.. 봐봐"


하고는 한 손에 꼭 쥔 가재를 보여드렸습니다. 가재는 여직 잘 살아 있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어머니는 한참동안 가재를 들여다보시더니 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도 부모님은 절 혼내지 않으셨습니다.



전 단순히 학원빠진 것으로 혼나지 않아서 약간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중에 부모님께 그 일을 말씀드렸더니, 그 일이 있었던 일주일 전에 최촌마을에 사는 한 아이가

가재를 잡으러 갔다가 그 우물에 빠져죽었다고 합니다.



최촌마을에 살던 부모님친구분이 제가 학원에 가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셨고,



저는 계속 입으로



"가재..가재.."


을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우물에 빠져죽었던 아이는 절 우물에서 죽지 않게 막아준 그 어떤 것이고...



저에게 가재를 잡으러 가자던 그 아이는 우물로 아이를 꾀어 죽이는 사악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전 제가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를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출처 : 카카오피아 - WootOpia -
http://wootopi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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