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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람을 있게 한것은 위대한 어머니.
게시물ID : lovestory_18760짧은주소 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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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3
조회수 : 44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5/10/05 10:59:27
일제강점기때 한 독립 투사가 독립운동을 하던중 일본 경찰에 쫓겨 이리 저리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그 독립투사가 지나던 곳이 마침 자신의 옛 고향 자신의 집이어서 자신의 집으로 갔다.

  "어머님 아들이 왔습니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불은 켜져 있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여긴 그 독립 투사는 다시 한번 좀더 소리를 높여 불렀다.

  "어머님 아들이 왔습니다."

  그때서야 안에서 어머니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아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큰 뜻을 품고 나갔는데, 아직 큰 뜻을 이루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돌아올일이 없소.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나의 아들은 아니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독립투사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한번 큰 뜻을 품고 집을 나섰다.

  그 독립 투사는 이후로 큰 일을 한 안중근 의사와 그의 어머니 조 마리아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라서 올립니다..


  그리고 이 밑의 글은 안중근 의사에 사형 선고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출처는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입니다.


  1910년 2월 14일, 마지막 공판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이 선고되자, 일본에는 사형 이상의 형벌은 없느냐며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고한다.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태도에는 항소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2월 19일, 안중근 의사가 항소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일본정부는 크게 놀랐다. 

고등 법원장 히라이시(平石)는 일부러 형무소로 안중근 의사를 찾아와 항소할 것을 권했으나, 안중근 의사는 찾아와 항소하지 않은데에는 옳은 일을 했으니 구차하게 목숨을 구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굳은 의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놀라운 애국심이 뒷받침이 되어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안중근의사의 두 동생을 급히 여순(旅順)으로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일렀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이소식이 알려지자, 한국의 대한 매일 신보와 일본의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는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안중근 의사는 항소를 포기하기로 결심한 뒤,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며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自敍傳)'안응칠 역사'는 1909년 12월 13일에 쓰기 시작해서 1910년 3월 15일에 끝마친 것으로, 출생에서부터 의병 활동과 하얼빈 의거 그리고 여순에서 사형 선고를 받기까지의 옥중 생활을 기록하고있다. 

안중근 의사는 자서전을 끝마친 뒤, 3월 15일부터 '동양 평화론(東洋平和論)'을 쓰기 시작했다.

이 때, 안중근 의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염려하여, 히라이시 고등 법원장에게 '동양평화론'이 완성될 때까지 사형 집행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뒤, 3월 26일 에 사형이 집행되어 안중근 의사는 불과 10여 일 동안에 '동양평화론'의 머리말과 제1장인 전감(前鑒)의 일부분밖에 쓸 수가 없었다.

'동양 평화론'은 안중근 의 사의 사상을 대표하는 것이다. '동양 평화론'은 일본, 한국, 중국이 각기 자주 독립국으 로서 힘을 합하여, 서양의 침략을 막아 내자는 데 근본 정신이 있었다. 

이것은 일본이 침략 전쟁을 감추기위해 주장햇던 '아시아 연대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상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을 쓰며 자신의 삶과 사상을 정리하 는 한편, 형무소장에게 부탁해 홍석구(洪錫九)신부로부터 마지막 고해 성사를 받았다. 평소 신앙심이 깊었던 안중근의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신앙인으로서 인생 을 끝마치려 했던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 전날 국내외의 동포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의 독립을 되찾고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3년동안 해외에서 모진 고행을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 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노력하여 학문에 힘쓰고 
농업, 공업, 상업 등 실업을 일으켜, 나의뜻 을 이어 
우리 나라의 자유 독립을 되찾으면 죽는자 남은 한이 없겠노라. 
안중근의사의 애국시 내가 죽은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 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 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 나라의 독립 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국민된 의 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큰 뜻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 려 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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