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지금도 이런 말을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자부합니다만, 사실 그렇게 민감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제가 생각하는 '최소한도'만 지켜주면 무난하게 사는 소시민이구요.
실제로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나름 진보계라고 불리는 대학교를 나왔지만 대학생 시절에 시위에 참여해 본 적은 한 번도 없구요.
딱히 정의로운 성격도 아니고 감정적인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무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던 것이 광우병 촛불집회 때였던 것 같네요.
그때는 뭐 솔직히 조금 짜증나는 기분으로 나갔습니다.
'왜 이런 일 때문에 나 같은 시민까지 나서야 하냐.'라는 기분이었죠.
지금 되돌아 보면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절을 거치면서 너무 편했던 거였습니다.
이 앞의 세 분도 평가하는 입장에서 고하가 나눠지긴 합니다만, 2mb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거든요.
광우병이 낭설이다? 루머다? 그럴수도 있겠죠.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럼 정부가 충분한 해명을 하고 그에 의해서 시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죠.
해명할 수 없으면 그러질 말았어야 하구요. 그런데 정부의 태도는 '어쩌라고?'였습니다.
정말 '어쩌라고?'였습니다. 제가 느낀 기분은 딱 그거였습니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며? 님들 건강 다 팔아치우고 돈만 받으면 장땡 아니야?'
전 솔직히 광우병 별로 믿지 않았고 광우병이 있다고 해도 어차피 다른 병으로도 충분히 죽을 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는 굉장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다른 안건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를 취하면 어떻게 하지?
모든 걸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말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하지?
그리고 실제로도 4대강이 그랬죠.
전 당시 막 예비역 전역을 했었고, 복학을 준비하는 휴학생이었습니다.
나름 한창 바쁘고 마음 심란한 시기에 이런 일이 터지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짜증이더군요.
'왜 이런 때 이런 일을 터트려서 날 괴롭게 만드냐 빌어먹을 2mb야.'
뭐,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편했던 겁니다. 정말 웃기도록요.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길게 글을 쓸 시간은 없네요.
광우병 촛불집회가 있고 7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죠.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거짓말처럼 돌아가셨고, 박근혜가 당선 되었고,
국정원이라는 간첩 잡는 건줄만 알았던 기관이 우리 입에 자주 맴돌게 되었고,
세월호가 침몰했고, 메르스가 발발했고, 많은 사람이 죽고, 죽고, 죽고, 또 죽고 있습니다.
그때의 위기감, 그때의 짜증을 '멀리서 살인마가 달려오는데 왜 경찰이 저 살인마를 막지 않는가' 하고 비유하자면,
지금의 위기감은 '그 경찰이 살인마와 함께 내 목을 겨누고 있다.'로 비유할 수 있겠네요.
지금도 솔직히 짜증은 납니다.
저는 정의감은 쥐뿔도 없고 애국심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영웅심도 없고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당장 내일 뭘 먹고 살까, 집은 살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그 전에 여자친구는 사귈 수 있을까 걱정하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즉 내 일하기에도 벅찬데 여기서 시위까지 나간다? 정부에게 너네들 잘하라고 소리쳐야 한다?
짜증나는 일이죠. 그냥 이렇게 외치기 전에 좀 잘하면 안 됩니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말 2mb, 바끄네 이전의 민주정부 시절은 좋은 시절이었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술자리에서 이런 짜증을 보이면 친구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렇게 싫으면 그냥 가지 않으면 되잖아.'
'어차피 니가 나가든 나가지 않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우리는 우리 분수대로 살아야지. 그런 건 잘난 민주투사들이나 하는 일이잖아?'
뭐 그렇지요.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이 친구들의 말에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그래서 광우병 촛불집회에 나갔을까, 지난 광화문 민중총궐기에 나갔을까,
그리고 12월 5일 다시 나가려고 하는 걸까, 고민합니다.
레미제라블의 노래 중에서 좋은 가사가 있더군요.
'북소리 너의 심장을 울릴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구나 싶은 감동, 광화문을 막는 차벽, 가차없이 떨어지는 물대포, 우비를 뒤집어 쓴 시민들,
아비규환, 그들을 품을 생각은 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폭력시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는 정부와 언론들,
지금도 간절히 다시 일어나시기만을 기도하고 있는 백남기 어르신.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 사람들, 해명을 요청하는 시민의 목소리에 '밝은 새로운 미래를 열자'며 함구하는 정부.
초기에 막을수도 있었던 메르스, 도저히 풀리지 않는 국정원의 수수께끼, 헬조선이라고 흙수저라고 불리는 우리들.
독재와 식민의 논리는 매우 비슷합니다.
결국 '우리가 독재하지 않으면', '우리가 식민지배를 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결코 발전할 수 없고 진보할 수 없다.'
'이만큼 너희가 발전한 것도 우리가 독재해서, 지배해서 그런 거다.'
저는 일본제국과 박정희와 박근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스스로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며 일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까지 인간에 절망하고 있진 않습니다.
단지 그들은 너무나도 오만하고 너무나도 눈이 멀었고 너무나도 귀가 멀었을뿐입니다.
11월 14일을 마치고, 조용히 있을 때 마음이 고요했습니다.
너무나 신기한 기분이었습니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도 시원찮은데 왜 그렇게 고요했을까요.
고요한 와중에 단지 멀리서 북소리만이 들려왔습니다.
그 북소리는 오직 저에게 '노예로 살지 말아라'라고만 합니다.
'너는 독재자나 제국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없어선 살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대체 이 감정을 무슨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시위가 끝나면 저는 다시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 겁니다.
다시 무덤덤 할 것이고, 세상사 별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고, 남의 아픔에 그렇게 많이 공감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 나라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싸구려 커터칼처럼 살 겁니다.
원래 천성이 그렇고,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 거니까요.
하지만 12월 5일엔 나갈 겁니다.
민주노총이니 새누리당이니 새정연이니 폭력시위니 그런 거 다 상관없고,
단지 대한민국과 자유와 민주주의와 제발 말이 좀 통하는 사회와 저의 평화로운 소시민 라이프를 위해서요.
제발 시위 좀 그만 나가고 싶은데, 아마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는 힘들 것 같네요.
오랜만에 술 좀 마셨다고 이상한 소리를 게시판에다가 찌끄르고 가네요.
많이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박사학위 따겠답시고 박그네 당선 되자마자 독일로 튀어버린 우리 빌어먹을 선배가 남기고 간 한 마디를 남깁니다.
「Winter is Coming.」
빌어먹을 정도로 추운 겨울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추위로 사람이 죽는 시대입니다.
다들 몸 조심하시고, 12월 5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