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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공안 전성시대다. 대통령은 복면을 쓴 시위대를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하고,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지 하루 만에 집권여당은 '복면착용금지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정식 발의했다. 경찰의 복면 탈의 요구에 불응하는 사람에게 징역형과 벌금형을 가하는 개정안 역시 여당 내에서 준비 중이라 한다.
어디 이뿐인가. 법무부장관은 복면착용금지법안이 통과되기 전이라도 집회 현장에서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는 양형기준을 대폭 상향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고,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공권력의 확립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불법시위에 대한 보다 엄격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며 사법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고 있다.
ⓒ 한국일보
대통령의 강력한 주술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통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정부여당이 납짝 엎드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법치를 책임져야 할 법무부장관은 아직 통과도 안된 법안으로 국민을 겁박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집권여당의 대표는 정신차리라며 사법부를 닥달한다. 국민들은 2015년을 살고 있는데,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인식은 70~80년대에 머물고 있다. 저들은 복고 열풍을 불러 일으킨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어떤 영감이라도 받았던 것일까.
기실 2015년의 한복판에서 펼쳐지고 있는 '백투터퓨처'는 예견되어 있던 일이었다. 권위주의 체제로의 복귀를 선언한 이명박 정권에 이어, 자라온 환경, 가치관과 철학 등에서 미래보다는 과거지향적 성향을 보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선택된 순간 이 정부가 그려나갈 국정운영의 윤곽은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는 뜻이다.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일방통행식의 국정운영,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 비판과 쓴소리를 싫어하는 20세기 스타일의 지도자에게 절차와 과정, 소통과 배려, 화합과 상생의 민주적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요원한 일이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가치와 헌법질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불분명해 보이는 대통령 아래에서 공안통치가 부활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
ⓒ 한겨례 by 늙은도령
공안이란 본래 '공공의 안녕'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공안통치의 '공안'이 그 '공안'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수 국민의 안녕을 의미하는 '공안'이 강화되면 될수록 안녕한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권이었고 권력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공안통치는 교묘한 은폐의 언어이자 기만의 언어다. 공안통치를 통해서 보호받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권력자이며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산 자들의 욕망은 죽은 자를 무덤에서 불러내기도 하고, 잊고 싶은 과거의 악몽을 소환해 내기도 한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부활시키고 있는 공안통치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과거로 남아있는 과거의 유물이다. 70~80년대의 권위주의 체제를 부활시키려는 박근혜 정부의 몸부림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마치 화려한 불꽃에 취해 그 속으로 제 몸을 던지는 불나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공안통치는 결국 권력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다. 정당치 못한 권력이 공안통치를 강화해 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과거를 살펴 보더라도 명확해진다. 이승만 독재정권, 박정희 유신정권, 전두환 신군부 시절 권력은 체제의 유지와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공공의 안녕'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공안통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언제나 권력에 대한 집착과 욕망, 불안과 두려움이 상존했다.
ⓒ 미디어오늘
모든 법에 우선하는 초법적 통치수단인 공안통치에도 그러나 명암은 존재한다. 권력의 방패인 공안통치는 결국 권위주의 권력의 붕괴를 알리는 서막이기 때문이다. 4.19 혁명과 부마항쟁, 그리고 87년 6월의 민주화 항쟁도 그 시작은 언제나 극에 달했던 공안통치에 대한 국민의 반발과 저항으로부터 비롯됐다. 부당한 권력이 공안통치에 의존하려는 관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에게는 그에 대항하려는 저항의 유전자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공안통치의 결말은 언제나 같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가 증명하는 명징한 진리다. 대통령이 시위대를 IS에 비유하고, 복면착용금지법이 발의되고, 법무부장관이 국민들에게 엄포를 놓고, 집권여당의 대표가 사법부를 다그치는 이 장면들은 그래서 아주 반가운 신호다 . 박근혜 정부의 공안통치가 강화되면 될수록 국민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러진 민주주의와 볼품없이 쪼그라든 시민의 권리가 바로 설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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