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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새집증후군(sick house syndrome)
게시물ID : panic_576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17
조회수 : 2847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3/09/17 20:11:39
 
< 새집증후군 >
 
 (sick house syndrome)
 
 
  
“포장이사로 하실 거죠?”
 
견적을 뽑으러 온 이삿짐센터직원은 당연하다는 투로 물었다. 그는 방 세 개짜리 빌라를 꼼꼼하게 확인하며 세간을 체크하고 있었다.
 
“일반이사로 했으면 하는데요.”
“이 정도 짐이면 혼자 포장하시기 힘드실 거예요. 마침 할인행사로 얼마 차이나지 않으니까 포장이사로 하시는 게 어떨까요? 청소 서비스가 포함되어있는 가격이거든요.”
“혼자 정리하고 싶은 물건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버리는 게 더 많아서, 가져가는 건 거의 없을 겁니다. 일반이사로 할게요.”
“가구를 새로 하시려고요?”
 
이삿짐센터 직원의 눈이 이사갈 집의 주소에 머물렀다. C 아파트라면 이번에 새로 지어진 새 아파트였다. 새집으로 이사가면서 오래된 가구를 버리고 새로 장만하는 일이 드문 건 아니었기 때문에, 직원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곤 다음질문으로 넘어갔다.
 
“뭐...그러시다면야. 이사 예정일은 언제로 잡으셨나요?”
“다음 달 초로 계획해놓긴 했는데, 어차피 비어있는 집이라서 조금 앞당겨도 좋고, 늦춰도 좋습니다.”
“다음 달 초라...그 주에 손 없는 날이면 4일은 어떠신가요?”
“손 없는 날이요?”
“아무래도 이삿날은 손 없는 날을 선호하시니까요.”
 
젊은 집주인은 검은 뿔테 안경알 너머로 이삿짐센터 직원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언뜻 집요해 보이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오늘 방문으로 처음 만난 그들 사이에 원한이나 악감정 같은 것이 존재할리 없었다. 순전히 기분 탓이겠지만, 젊은 집주인은 싸한 무언가가 있었다.
 
“저는 그런 미신 안 믿습니다.”
“이 동네 분들이 다 손님 같으시면 좋을 텐데. 손 없는 날이면 아주 죽어납니다. 예약이 밀려서 값을 두배로 부르는 분들도 계세요.”
 
이삿짐센터 직원은 젊은 집주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괜스레,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였다.
 
“이사는 정말 중요하니까요.”
“이사 갈 집에 이미 지박령이 붙어있다면요?”
“네?”
“귀신 붙은 집이면, 손 없는 날이고 손 있는 날이고 쓸모없는 일 아닌가요?”
“하하...그렇긴 하네요. 에이, 그래도 귀신붙은 집이 어디 흔한가요.”
 
또다.
젊은 집주인의 눈이, 그 퀭한 두 눈이 기묘한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삿짐센터 직원은 헛기침을 하며 방에서 빠져나와 견적서의 하단에 날짜를 기입했다.
 
“정확한 날짜를 정해서 연락드리죠.”
“네. 연락주세요.”
이삿짐센터 직원은 한시라도 빨리 이 기분나쁜 남자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위협적인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예의 없는 행동으로 신경을 거스른 것도 아니었는데도 불쾌감이 스물스물 몰려왔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인지도 몰랐다. 코를 찌를 정도로 곳곳에 뿌려진 락스냄새, 그리고 독한 락스냄새로도 완벽하게 덮지 못한 비릿한 악취. 락스냄새도 그렇지만, 이 비린내는 난생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이게 무슨 냄새야. 도축장도 아니고.
 
“이삿짐센터에서 짐을 열어보거나하진...않겠죠?”
 
아무것도 아닌 질문이, 기묘한 남자의 입에서 나오니 기묘한 물음으로 변질되어 들린다.
이삿짐센터 직원은 굳어지는 입매를 겨우 미소로 가릴 수 있었다. 덕분에 입매가 비뚤어졌지만.
 
“당연하죠.”
 
곧 이삿날이 다가왔다. 젊은 집주인의 요구대로 가구를 모두 1층으로 내린 다음 처분했다. 거의 버린다더니, 이건 전부 버리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침대 세 개에 4인용 식탁, 그리고 아동용 동화책이 한가득 담긴 상자가 버려졌다. 네다섯명정도 되는 북적북적한 집안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졌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없이, 젊은 집주인인 남자 혼자만 이삿짐을 옮기는(정확히는 버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젊은 집주인이 새집으로 들고 들어간 거라곤, 직사각형 상자 열 개가 다였다. 몇 톤짜리 트럭을 끌고 온 게 무색할 정도로 간단한 짐이었다. 뭐가 들었는지 하나당 몇 십kg은 족히 나가는 것 같았고, 밑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젊은 집주인 남자는 상자를 들여놓고 돌아갈 차비를 하는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붙잡고 질문했다.
 
“열어보거나...하지 않았겠죠?”
 
 
* *
 
 
“새집으로 이사 오니까 정말 좋다. 깨끗한 것 좀 봐. 흠집 하나 없어.”
 
젊은 아내는 “새집이니까 당연한 건가?”하고 배시시 웃었다. 젊은 남편은 아내의 동그란 배를 쓰다듬으면서 뱃속 아기에게 사랑의 말을 전했다.
 
“이번에 분양한 아파트라는데, 왜 전세로 내놓았을까? 이왕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 자기가 살지 않고 말이야. 자긴 찜찜하지 않아?”
“급전이 필요했나보지.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는 부자들 속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좋게 좋게 생각해. 여기, 분양하기 전부터 친환경에다가 좋은 자재로 짓는다고 소문이 자자했잖아.”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새집이라서 그래. 페인트 냄새일거야. 게다가 집주인이 좀 더 꾸몄다고 하니까. 여기 봐, 붓 자국이 보이잖아.”
“그런가...아! 그건 안방에 놓아주세요. 안방이 어디냐면...”
 
이삿짐센터 직원은 젊은 아내의 말을 자르고 씩 웃었다.
 
“두 번째 방이죠?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와본 적이 있어서.”
“이사 많이 들어오나 봐요?”
 
이삿짐센터 직원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는 어색하게 “그렇죠, 뭐...”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몇 달 전에 똑같은 집에 이삿짐을 들여놓았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그건 이삿짐이라고 부르기도 뭐할 정도였다. 상자 몇 개가 전부였으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젊은 부부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행복이 떠올랐다. 산달이 다 된 젊은 아내는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남편의 손을 잡고 집안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아기방으로 꾸밀 방부터 부부침대가 놓인 안방까지.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행복으로 물들어있던 젊은 아내의 얼굴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밤잠을 설친 덕분에 볼은 홀쭉하게 야위어져갔다. 하얗게 칠해진 벽, 흠집하나 없는 벽을 보고 있노라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상한 냄새가 나. 계속.”
“페인트 냄새라니까.”
 
아내의 불만에,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내가 임신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이 때문에 치료를 받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임신기간 내내 변덕을 부리고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그런 거겠지.
“두통도 심하고, 가슴도 답답하고...당신은 안 그래? 냄새 때문인가봐.”
“친환경 소재로 지었다고 했는데...왜 그러지?”
 
남편은 벽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봤다. 페인트 냄새밖에는 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내에게 병원에 가보자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이렇다할 해결책을 내려주지 못했다.
흰 가운을 입은 나이 많은 의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새로 이사하셨다고 했죠? 아무래도 새집증후군 같은데요.”
“그치만...정말로 누가 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에요. 밤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꼼짝도 못하겠고. 잠도 잘 수가 없구요.”
“신경이 예민해서 그런 겁니다. 예정일이 다가오니까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그럴 겁니다. 아기가 엄마를 힘들게 하네요. 다음 달이 출산예정일이었죠? 그때까지만 엄마가 더 힘내 주세요. 아빠도 옆에서 도와주시고요.”
 
남편은 안심하라며 아내를 달랬지만, 그날도 그 다음날에도 그녀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기묘한 환각에 시달렸던 것이다. 벽속에 갇힌 사람들이 벽을 두드리며 내보내달라고 외치는 아우성을.
 
 
 
 
 
 
 
/
 새집증후군, 하니까...
 문득 생각나서 두 종류로 써봤습니다.
 이 글이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새집증후군에 관한 거고 밑에 글은
 새둥지증후군입니다.
 
 솜씨가 많이 부족합니다. 가볍게 재미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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