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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내년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대구 달서(을) 선거구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출마소식이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김용판 전 청장은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사팀에 외압을 행사한 것이 밝혀지면서 야권과 시민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해 사법부는 면죄부를 부여했다.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판결은 대동소이했다. 사법부는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의혹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결과를 은폐•축소한 혐의로 기소되었던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당신이 국정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온갖 행태들과, 이 사건의 수사 및 재판 과정을 유심히 지켜봐 왔다면 무언가 상당히 잘못되어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그런지 시간을 돌려 당시 상황을 잠시 복기해 보자.
ⓒ 오마이뉴스
지난 대선에서 국가기관인 국정원은 조직적으로 선거에 불법개입했다. 그들은 야당 후보를 노골적으로 비방하는 글들을 인터넷에 무더기로 게시하며 여론을 호도했고 조작해 나갔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당시 박근혜 후보는 대선에 불법개입한 국정원을 적극적으로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라고 경찰에 압력을 행사했다. 이에 경찰은 사건을 은폐•축소했고, 사건담당자에게 외압을 행사했으며 관련 증거자료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총선 출마를 선언한 김용판 전 청장은 바로 이 과정에 깊숙히 개입해 있는 인물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당연히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국정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갖은 산고 끝에 문을 연 국정조사는 새누리당의 온갖 방해공작 속에 아무런 성과없이 끝이 나고야 말았다. 당시 국정조사에 임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걸핏하면 정회와 퇴장을 반복하며 파행에 파행을 거듭했다. 심지어 국정원의 댓글을 장려해야 한다며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을 두둔하는가 하면, 더워서 못하겠다며 나자빠지기까지 했다. 국정조사로 드러난 것은 진실이 아니라 국정조사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그들의 일념 하나였다.
국정원 사건과 관련된 주변 인물들의 신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국정원 사건의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수사팀장, 박형철 수사부팀장은 좌천되거나 옷을 벗어야 했다. 반면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있던 관련자들은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오히려 승진하거나 영전을 했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징계와 좌천, 파면을 받았던 것에 비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상필벌이다.
ⓒ 국민뉴스
이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하나다. 권력에 복종하거나 충성하는 자들은 어김없이 상을 받고, 권력에 반기를 들거나 비리를 추적하는 자들은 예외없이 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확립한 이 괴상한 신상필벌의 원칙이야말로 국정원 사건을 가장 쉽게 이해하기 위한 핵심 코드다. 이 코드 하나면 난해하기만 했던 국정원 사건의 퍼즐이 기가 막히게 맞춰진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신상필벌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처럼 상반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이 코드가 비단 국정원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자방 비리와 성완종 리스트 등 굵직굵직한 사건에서부터 최근 검찰의 심층적격심사 대상에 오르며 내쫓길 위기에 처해있는 임은정 검사에 이르기까지 이 코드는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자 풍조다.
권력이 관료에게 노골적으로 복종과 충성을 요구하고, 그들은 기꺼이 이에 동참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양심과 사회의 정의는 철저하게 민심과 유리되고, 그 결과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불신이 증폭된다. 정부와 국회, 사법부와 검찰, 경찰 등의 국가기관에 대한 극에 달한 국민불신은 결국 신상필벌의 원칙과 기준을 무너뜨린 권력의 천박한 욕망이 초래한 비극이다.
김용판 전 청장이 출마를 하게 된 것과 출마 지역으로 대구 달서(을) 선거구를 선택한 이면에 지난 대선에서의 맹활약이 놓여있다는 것쯤은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를 반영하듯 그는 출마 선언을 하는 내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드러냈다. 세간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뒤로 한 채 권력에 충성하고 복종한 대가치고는 꽤 나쁘지 않은 상급이다.
ⓒ 중앙일보
희대의 선거사범이었던 김용판 전 청장의 출마 선언은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시사해 준다. 그것은 그의 출마가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비루함을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만약 당신이 김용판 전 청장처럼 되고 싶다면 그처럼 살아가면 된다. 그러나 당신이 정의와 양심을 포기하지 않은 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오히려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세상에 무의미한 것이란 없는 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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