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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때문에 슬픈 둘이라구요님 보세요
게시물ID : humorbest_6304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로배웠어요
추천 : 32
조회수 : 1982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2/16 18:40:00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2/15 12:33:20

님이 쓰신 글을 읽다보니 남 얘기 같지 않아서 몇 자 적어 봅니다.


전 아버지 없이 자랐습니다.

제게 아버지는 형들이었죠.


저희 형들... 정말 잘 났습니다.

I.Q 145에 초등학교 때는 전교 5등 이내

중학교 때는 전교 15등 이내에 들던 제게

늘 잘 하는게 없다는 타박을 하던 형들입니다.

악기라고는 기타 밖에 칠 줄 모르던 형들은

저의 클라리넷과 색소폰 연주에 대해서도 비난을 쏟아 부었죠.


저는 고입 선발고사에서 (체력장 빼고) 180점 만점에 168점을 맞고

꽤 알아주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래도 형들에게는 잘 하는 거 하나 없는 모자란 바보였죠.

음대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니 주제에 무슨 음대냐\'며 반대를 했던 형들입니다.

사실 제 실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고등학교 때 제 연주를 들은 경희대 작곡과 교수께서

이 상태로도 지방대 정도는 갈 수 있지만 레슨을 좀 받으면 서울도 가능하겠다며

무료로 레슨을 해 줄테니 꼭 찾아 오라고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음대에 가기로 마음 먹고 집에다 얘기했을 때는

이미 레슨과 악기 문제까지 다 해결을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저희 형들은 들어보지도 않고 반대를 하더군요.

결국 음대 못 갔습니다.

반항심에 공부도 안 해 내신은 7등급으로 떨어졌고...

- 저랑 성적이 같은 옆 학교의 누군가는 그 학교에서 1등급이더군요.


그래도 전반적인 성적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고

소위 암기과목이라고 하는 과목들은 탑클래스에 들었기 때문에

후기대 원서 쓸 무렵에 담임 선생님께서 권해 주신 지방의 4년제 대학에 원서를 내고 합격을 했습니다.

근데... 공부가 돼야 말이죠.

학교는 안 가고 하루 종일 볼링만 했습니다.

방학 때 볼백을 들고 집에 왔더니 둘째 형이 또 놀리더군요.


\"볼은 굴릴 줄 아냐?\"

\"어. 좀...\"

\"나랑 내기 한 판 할까?\"

\"어... 난 내기 같은 거 잘 안 하는데...\"

\"이 새끼... 질 것 같으니까...\"

\"뭐... 그럴 수도 있고...\"

\"너 같은 애들 뻔하지. 그런 거 들고 다니면 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여자 꼬시기도 좋으니까...\"


자존심이 상한 저는 내기에 응했고 모든 게임에서 처참하게 밟아줬습니다.

저 사실... 전직 국가대표에게서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입니다.

그에 비해 저희 형은 술 마시고 직장 동료들이랑 \'후루꾸\'로 배웠더군요.

저랑 게임이 될 리가 없죠.

제 인생에서 형들을 이겨 본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군대에 가게 됐습니다.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해 훈련을 마치고 3박 4일 간의 위로휴가를 나왔을 때,

각각 6개월, 18개월 방위 출신인 저희 형들은 해군에 대해 또 아는 척을 하더군요.

저는 이제 막 훈련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별달리 대꾸할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근무 기간이 아무리 늘어도 휴가 때 집에 오면 늘 형들의 우김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5년 6개월 만에 전역을 했지만 저희 형들의 구박은 계속됐습니다.


\"너는 해군 출신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

\"이 새끼는 해군 출신이면서 나보다 더 모르네\"


참다 못한 저는 이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딱 한마디를 했습니다.


\"나보다 군생활도 짧으면서...\"


이후로 군생활에 대해서 만큼은 형들의 구박이 없어졌습니다.


전역 후 학교를 그만 둔 저는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했습니다.

술집 웨이터부터 노가다까지...

정말 \"가카\" 말씀 마따나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보기도 했고 많이 까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슨 일을 해서 돈을 얼마나 벌든 형들에게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다 집어치우고 은행에 취직하든가 공무원이 되라는 말 뿐이었죠.

천신만고 끝에 고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 책을 낼 정도가 됐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당뇨 합병증으로 여러 병원을 다니시고 결국 간암으로 돌아가시기까지
그동안 제가 밑바닥부터 다졌던 인맥의 덕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대학병원 같은데 입원하거나 진료 한 번 하려면 응급환자가 아닌 이상 예약하고 한달 정도 걸리는게 보통인데

저는 바로 다음날 입원과 진료가 가능하도록 해주니까 형들도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게다가 형제들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친한 변호사를 소개해주거나 법률 자문을 해주게 되면서

이제는 형이나 형수도 제게 상의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특히나 저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형제들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형들이 제게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는 형들도 제가 실수를 하더라도 무시하지 않고 기다려주게 됐거든요.


아버지 때문에 슬픈 둘이라구요님의 글을 보고

제가 겪었던 일들이 생각 나 몇 자 적으려던 게 신세한탄이 돼 버렸네요^^


둘이라구요님...

아버지로부터 인정 받으려고 너무 노력하지 마세요.

그냥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아버지께서도 아들을 인정하지 않고는 안되는 상황이 생길 겁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을 꼭 읽어 보세요.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으신 둘이라구요님이라면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아주 쉽게 잘 읽힐 겁니다.

그리고 극복하고 치유하는 방법도 배우게 될 겁니다.


이제 시작하는 군생활...

상처나 복수심 때문에 자신을 너무 학대하지 마세요.

오히려 구박만 하시는 아버지를 피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몇달 후에 건강하게 군 생활 잘 하고 있는 둘이라구요님을 밀게에서 꼭 다시 뵐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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