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 4일째인 21일, 최소 24명이 사망했고, 시민은 야만적인 군대와 경찰을 추방하고 통제권을 장악했다. 18일 시작된 학생 시위에 대하여 전두환이 지위하는 공수부대는 학생들을 구타, 연행, 살해했으며 이로 인하여 시위는 도시 전체로 확산되었다. 한국전쟁 이래 가장 거대한 봉기로 인하여 전두환의 장래에 불안이 확대되고 있다." - 1980년 5월 23일 뉴욕타임즈
"광주의 인상은 약탈과 방화와 난동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란 대의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 한국 군부의 야수적 잔인성은 라오스나 캄보디아를 능가한다." - 1980년 5월 25일 AEP 통신
"광주의 일반 시민들이 데모대에 동조하여 18일의 평화적 시위에 대한 공수부대의 야수적 만행을 규탄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검에 찔리고 구타당했으며, 21일에는 계엄군의 발포로 최소 11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 곳 광주의 비참한 참상은 한국의 타 지역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 1980년 5월 25일 뉴욕타임즈
"한국의 민중들은 광주의 참상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광주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 민중의 불만은 총으로 억압되어지지 않을 것이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려는 전두환 일당의 음모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 1980년 6월 13일 뉴스위크 지
"1980년 5월 27일 아침의 광주는 죽음의 도시와 같았다. 당시 광주의 상황은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 르 몽드 지
"나는 지난 25년 동안의 기자생활 중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중국의 장칭 등 4인방 재판, 그리고 인도의 인디라 간디 수상 암살 사건 이후 잇따라 벌어진 폭동과 살인 사건 등을 취재해 왔다. 그러나 나는 '광주'의 참상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건이 나의 기억 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느냐고 누가 물어보면, 한 마디로 나는 '광주'라고 대답한다. 광주항쟁 기간 동안 나는 단 하루밖에 광주에 머물지 않았지만, 1980년 5월 26일 그날 하루만으로도 죽음을 걸고 폭압에 맞서 투쟁했던 용감한 광주시민들의 모습이 나의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광주야말로 나의 기자로서의 경력 중 가장 감동적인 경험을 제공해준 곳이었다." - 블레들리 마틴 볼티모어 ( 당시 선 지의 서울 특파원)
"5.18은 사실상 군인들에 의한 폭동이었다. 놀라움과 분노로 가득찬 시민들 앞에서 시위대를 추격하며 곤봉으로 때리고, 최루탄은 물론 총까지 쏘았다. 공수부대원들은 상점과 시내버스 안까지 쫓아가서 젊은이들을 잡아 끌어낸 후 마구 폭행하거나 죽였다. 광주는 분노로 일어섰다." - 테리 앤더슨 (당시 AP 통신 기자)
"5.18 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향한 길고 긴 투쟁의 일부분이었다. 앞세대가 지금의 민주선거를 확립하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지금의 젊은 세대가 배우고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 노먼 소프 (당시 아시아월스트리트 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