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있으면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잘 먹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부대는 그다지 좋은부대는 아니었다.
군대 밥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은 그 중에서도 유난히 밥이 맛없는 부대로 유명했고 대대에 있을땐 그나마 덜했지만
해안에선 그 정도가 좀 심했다. 그도 그럴것이 독립초소에 몇 명 안되는 취사병 중 처음부터 취사병 보직을 받고 온 병사들은
몇명 안되었고 취사병 대부분이 일반 보병으로 입대 했다가 사고를 치고 영창에 갔다가 취사병으로 전출된 케이스 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밥이나 반찬이 맛있을 리가 없었고 대부분 재료의 맛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었다. 반찬의 양도 그리 많은 것이 아니라
고기같은 경우는 좀 더 먹고 싶어도 금방 동이 나버리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터덜터덜 내려가고 있을 때 오랜만에 맡아보는 그리운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으로 나온 메뉴는 치킨이었다. 사회에 있을 때 남들 못지 않게 치킨앓이를 해왔고 세상 어딘가에 치킨나라가 있다면
그곳 영주권자가 되기를 소망해 왔던 나였기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군대에 와서 반찬으로는 거의 처음으로 나온 치킨이었기에
경건한 마음으로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비록 사회에서 먹는 치킨과는 비할바가 아니었지만 그냥 치킨을 먹는다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한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얼마 후 다시 반찬으로 백숙이 나왔을 때 다시 재회한 닭다리에 반가움과 동시에 왠지모를 찝찝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치킨나라로 입국하기 위한 이미그레이션에 불과했다.
그후로 tv에선 연일 조류독감에 관한 뉴스속보가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그제서야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론 지옥의 시작이었다.
오직 닭만이 존재하는 차원의 문이 열린건지 매일같이 닭고기 요리들이 쏟아져 나왔고 몇일 사이에 닭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요리를
맛본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맛이 없었다. 퍼석퍼석한 닭과 취사병들의 요리실력이 어우러져 닭요리 애호가인 나조차도 금새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각양각색의 닭요리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서 질려버린 고참들은 하나 둘 식사를 거부하게 되었다. 나역시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직 찌질한 짬의 소유자였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밥을 먹어야 했다. 그렇게 이주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아침 백숙 점심 삼계탕 저녁 후라이드치킨의 트리플 크라운과 힘없이 베어문 닭다리가 덜 익어 피맛을 본 고참이 이성을 잃고
취사장으로 뛰어들려했고 그를 말리기 위해선 꽤 많은 인원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참들은 라면과 맛다시로 하루하루 연명했고 남은 반찬은
후임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얼마 가지 못했다. 부대에 방문한 보급관님이 잔뜩 남아있는 닭들을 보고 식사거부 하는 놈들은
다 싸잡아 모아놓고 닭고기만 맥이든지 영창에 보내버린다고 엄포를 내렸고 그렇게 치킨나라의 국경을 몰래 넘으려던 불법 이민자들은
모두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맛을 줄고 양은 늘어만 갔다. 이제는 백숙이 나오면 거의 닭 한마리가 통째로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고 참다 참다 폭발한
것은 전의 그 고참이었다. 그날도 백숙이 나왔고 여느날 처럼 질식할 듯한 기분을 느끼며 닭 가슴살을 억지로 씹어넘기고 있었다. 문제는
그 고참의 백숙에서 다리가 세개 나온 것이었다. 격노한 고참은 남들은 닭을 주고 자신에겐 삼족오를 줬다며 분을 참지 못하고 닭다리를
든 채 주몽을 쫓는 대소처럼 취사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취사장으로 들어간 고참은 취사병들이 먹는 반찬이 우리들 것과는 좀 틀리다는걸
발견했다. 자기들 밥만 따로 요리해서 먹고 있는걸 발견한 고참은 다른 중대 아저씨 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온갖 욕설을 날렸고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서야 그를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한달정도를 입이 부리가 될 정도로 닭을 먹고서야 겨우 메뉴에서 닭고기
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치킨과의 전쟁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해 여름..
구제역이 오고 있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