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안철수의 결정적 차이는 '중도로의 외연 확장'에 있다. 전체 유권자의 30% 정도를 차지한다는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이 100% 투표하지 않는 한, 야권의 승리는 중도(이중개념자나 무당파가 정확한 표현이지만)의 표를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울부짖는 것과 야당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것도 이런 현실적 고민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도로의 외연 확장'은 두 사람의 출발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결정적 차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념적 성향을 일직선 상으로 놓고 볼 때 문재인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다가가는 것이지만, 안철수는 우측에서 좌측으로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에 가운데 몰려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두 사람의 행보는 정반대로 보인다. 이른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따라서 현재의 대한민국이 지나칠 정도로 우측으로 기울었다고 생각하는 중도층은 안철수보다 문재인에게서 진정성을 느낄 것이며, 반대로 생각하거나 현재의 운동장 기울기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안철수에게서 더 많은 진정성을 느낄 것이다. 두 사람이 공히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 확장의 과정과 진정성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핵심은 문재인과 안철수가 서있는 자리가 중앙을 기준으로 할 때 얼마 만큼 좌측에 있었느냐, 아니면 우측에 있었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중앙을 기준으로 할 때 문재인은 좌측에 있어서 우측으로 옮겨도 여전히 좌측에 있을 것이고, 안철수는 좌측으로 옮겨도 여전히 우측에 있을 것이다. 야권의 승리를 바라는 유권자라면 판단의 기준이 명료해지리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70년 동안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만이 좌측에 자리하고 있었고, 국민은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다가간 그 때만이 운동장의 경사가 지금처럼 심해지지 않았다.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지만, 보다 정확하게 판단하기를 요청한다. 총선에서 선전해야만 대선에서의 승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P.S. 일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거나 자유시장의 허상을 바로잡지 않는 한 인류가 지불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이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고, 자유시장은 생산과 소비(궁극적으로는 가격)의 균형에만 관심이 있지 공평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안철수씨, 당신의 정체성부터 밝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