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대 내무실엔 경고장이 하나 붙어있었다.
<침상과 침상사이를 '절대' 뛰지 마시오.>
단순히 '점프금지' 였던 경고장이 저렇게 장황하게 바뀌기 까진 한 현역군인의 희생이 필요했다.
군대엔 계급이란게 있고 부대마다 그 계급에 따라 할 수 있는 행동이 제한된다. 이등병은 사제샴푸 사용금지.
전투모 챙 구부리기 금지 등등... 그 중 병장이 되어야만 가능한 행동이 바로 입수보행과 침상 건너뛰기 였다.
숨쉬기 조차 귀찮은 말년병장들에게 침상에 걸터앉아 슬리퍼를 신고 움직인 다음 다시 슬리퍼를 벗고 반대편
침상에 올라가는 행위는 행군만큼이나 길고 괴로운 일이었던 것 같다. 한명의 발레리노 처럼 우아하게 침상을
날아다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언젠간 저리 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병신같이..
갓 병장을 단 물병장이 하나 있었다. 그 역시도 나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던지 병장이 되자마자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침상과 침상사이를 날아다녔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뛰는 병장의 결정체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당시 전술훈련 대비로 우리부대는 토요일 6시에 기상하자마자 준비태세 훈련을 실시했고
그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사이렌 소리에 잠이 깨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있는데
건너편에 그 고참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병장은 병장인지 내가 전투복을 막 입고 전투화를 신고 있을때 그는 이미
옷을 다 입고 군장을 싸고 있었다. 군장을 다 싼 후 그는 습관처럼 반대편 침상으로 뛰어 올랐다. 하지만 평소처럼
맨발이 아닌 전투화를 신고 있었고 그 몇그램의 차이는 비극의 역풍이 되어 그에게 불어닥쳤다. 무거운 전투화 탓에
평소보다 비거리가 짧아졌고 반대편 침상 끝에 아슬아슬하게 착지했지만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미끄러져
거의 반바퀴를 돌아 침상에 옆구리를 박은 후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갔다. 어렸을 적 철권에서나 본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 P 에 가격당한 듯 튕겨져 나간 고참은 자신의 두 발로 다시 일어섰지만 두 손은 풍맞은 사람마냥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훈련이 끝나고 계속 숨쉴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호소하던 그 고참은 병원에 가서야
뼈에 실금이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내무실엔 경고장이 붙었고 입원도 못해 한참을 고생하던 그 고참은 부상이 회복된 후 다시는 침상을 뛰어넘지
않지 않았다. 낫자마자 다시 예전처럼 침상사이를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자꾸 하지 말라는데 그렇게 당해놓고도 침상을
뛰는지 궁금해 그 고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고참은 이렇게 답했다.
'침상이 거기 있으니까.'
이렇게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했던 그 고참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멋있고 병신같은 고참으로 추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