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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규국(流虬国)
게시물ID : panic_63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르문간드
추천 : 12
조회수 : 77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0/07/15 12:05:02
유규국(流虬国) 신라 진성여왕이 하루는 총애하는 젊은 미남자 셋을 불러모아 노닐다가, 저녁때가 되자 많은 뱃사람들을 모아 좋은 음식을 내려주고, 다함께 술잔을 기울이도록 하였다.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여왕이 말하기를, "그대들은 신라의 방방곡곡에서부터, 만리 바다 저편의 기이한 고장까지 두루 다녀본 사람들이다. 어찌, 놀라운 이야기가 없겠는가?" 하니, 한 신하가 아뢰기로, "먼저 성상께서 좋은 이야기를 꺼내시어, 이 자리에 모인 소신들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였으므로, 먼저 여왕이 스스로 모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형제 자매들은 모두 성조황고(聖祖皇姑)와 같은 혈통이니, 그 몸에 기이한 표시가 있다." 하며, 여왕이 친히 옷을 벗어 자신의 등을 보여 주었다. 과연 사람들이 모두 보니, 여왕의 등에 마치 뿔처럼 불쑥 이상한 뼈 두개가 솟아 있었다. 모두 술잔을 기울이며, 오묘한 이야기라 하였다. (성고황조는 선덕여왕 대에 만들어진 신라 임금 내지는 그 계통에 대해 높여 부르던 말) 그리고 나니, 술잔이 한 잔 비워질때마다, 사람들이 나서서 바다 이곳저곳의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끝없이 술잔이 오고 가다 보니, 먹고 있던 음식 중에 고기 안주가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한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껏 들은 이야기 중에 기이한 것으로는, 지난날 서라벌의 한 부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가장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성상께서, 크신 은덕으로, 좋은 술과 기막힌 안주를 내리시니, 이 이야기를 돌이켜 아뢰고자 합니다. 저는 먼바다에서 돌아와 서라벌에 돌아왔는데, 한 부자가 높은 값으로 양탄자와 유리병을 구한다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침 제가 사온 물건 중에 좋은 양탄자와 유리병이 있었으므로, 저는 그 부자를 찾아 갔습니다. 부자의 집을 찾아가니, 집이 대단히 웅장하고 화려했습니다. 마당이 매우 넓고 이상한 모양의 돌과 이리저리 구부러진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고, 또한 그 집을 보니, 집에 황금을 입혀 눈부시게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 지붕아래는 다섯가지 색깔로 알록달록 칠해져 있었으며, 처마에는 온갖 기괴한 모양의 물고기 모양으로 생긴 종들이 매달려 있었으니, 아름답고 사치스럽기가 한량 없었습니다. 몇 겹씩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서야, 저는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제가 가져온 양탄자와 유리병을 내어 놓자, 부자는 매우 기뻐하면서, '과연 그대의 물건은 좋은 물건 중의 좋은 물건이오. 후히 값을 쳐 주지 않을 수 있겠소?' 하고는, 많은 금은을 주고, 또한, 갖가기 음식을 차려와 먹고 마시며 즐기다 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부자의 대접이 이처럼 좋았으므로, 저 또한 매우 흡족해 하며, 나온 음식들을 먹으며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먹다보니 이상한 것이, 도무지 고기 반찬이 없었습니다. 부자가 대접하는 상에는, 신라 안과 신라 밖의 여러 과일들과, 화려하게 꾸며서 빚은 갖가지 약밥, 과자들이 나왔건만, 아무리 살펴 보아도, 닭고기 한점, 돼지 기름 한 방울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나는 이상히 여겨 짐작하기를, '아마도, 부자가 장례를 치르고 나서, 몸가짐을 다스리느라 고기 음식을 피하는 것이던가, 혹은 부자가 불교를 믿는 것이 특히 깊어 고기 음식을 피하는 것인가 보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자에게 묻기를, '공께서 내어주신 귀한 음식은 평생에 맛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고기가 섞여 있지 않음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혹여, 공께서, 상을 당하셨다면, 제가 예를 어기지 않고, 웃음소리와 술마시기를 삼가서 무례를 피할 것이거니와, 또한 공께서, 불교를 깊이 따르신다면, 저또한 공의 뜻에 따라 향을 피우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몇자라도 외려 합니다.'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부자가 웃으며 답하였습니다. '내가 고기 반찬을 먹지 않은 것이 30년이 넘었으니, 그것은 장례 때문이 아니지 않겠소. 그 까닭은 이러하오.' 그리고 부자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하였습니다. 부자는 어렸을 때는 재물을 모으지 못했으므로, 먼 바다에 나가 큰 이익을 남겨 부자가 되기를 꿈꾸었다 합니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에 뱃사람을 따라 일을 하여, 배를 타려 하면서, 이런저런 배를 기웃거렸습니다. 그 중에, 한 뱃사람에게 묻기로, '저도 배를 타고 따라가 보려 하는데, 어떤 물건이 이익이 됩니까?' 하니, 그 뱃사람이 답하기로, '나는 당나라에 가서 과하마(果下馬)를 팔아 보려고 한다.' 하였는데, 생각해 보니, 자신은 말도 없었고, 말을 살만한 재물도 없었으므로, 그 뱃사람을 따라 당나라로 가보려는 생각은 버리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뱃사람이 말하기로, '나는 왜국섬에 가서 천자문(天字文)을 쓴 두루마리를 팔아 보려고 한다.' 하였는데, 생각해 보니, 글씨를 잘 쓸줄도 모르고, 또 잘쓴 글씨를 살만한 재물도 없었으므로, 그 뱃사람을 따라 왜국섬으로 가보려는 생각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살펴보니, 온갖 곳으로 가는 배를 따르려 하여도, 팔 물건을 마련할만한 재물이 없었고, 밑천이 없었으므로, 갈곳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낙심하여 온갖 뱃사람들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먼 바다로 나가는 크고 튼튼한 배에 타는 뱃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말하기로, '나는 구부러진 못이나 부러진 바늘, 이빠진 쇠스랑과 무딘 호미를 팔아 큰 이익을 남기려 한다.' 하였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되묻기로, '그런 물건은 길바닥에 버려도 사람들이 잘 줍지 않는 것인데, 어찌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단 말입니까?' 하였더니, 그 사람은 답하기로, '세상에 쓰임새 없는 물건이 어디에 있으며, 값을 매길 수 없는 물건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뱃사람을 따라가기로 마음먹고, 집안과 거리를 뒤져, 버려진 쇳조각과 깨짓 칼조각을 잔뜩 주워 보따리를 쌌습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던 보따리를 소중히 안고 갈 때에, 과연 이렇게 해서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의심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굳게 먹은 마음을 돌이킬 수 없어서, 배를 타고 나서니, 금새 좋은 바람을 타고 망망대해, 만경창파를 해치고 나갔으므로, 어느새 신라를 떠난지 수십일이 지났습니다. 배에는 신라 사람 뿐만 아니라 온갖 나라의 여러 사람들이 잔뜩 타고 있었습니다. 배안에서 갖은 굳은 일과, 왠갖 뱃사람들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겨우 양식을 얻어 먹으며 배를 타고 나아갔는데, 높은 파도에 두려워 할 때도 있었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하여 걱정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라에서부터 싸온 소중한 쇠뭉치 보따리는 잃지 않고 소중히 잘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배는 어느 땅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뱃사람들이 말하기로, '드디어 우리는 유규국(流虬国)에 도착하였다.' 하여, 배에서 내려 보니, 아름답고 보기 좋은 땅으로, 가히 사람이 편히 지낼만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고, 물과 음식을 충분히 얻어, 다시 신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하는데, 길을 나서는데,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유규국에서는 당나라 사람은 반드시 몸을 숨겨야 합니다. 당나라에서 오신 분들께서는 부디 뱃속에 깊은 곳에 들어가 계셔야 하며, 결코 모습을 드러내셔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중요한 일이니 꼭 지키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이상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먼바다에 나온 탓에 두려워하는 사람들 또한 많았으므로, 배에 있던 당나라 사람들은 모두 배 안에서 몸을 숨기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배 밖으로 나오자, 곧 유규국 사람들이 몰려와서 신라 사람들을 맞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몸집이 모두들 좀 작은편이었는데, 하나 같이 삼베로 된 옷만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요히 줄지어 우리 앞에 오더니, 매우 공손히 절을 하여, 예를 다해 인사를 올렸습니다. 신라 사람들도 결례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답례하였습니다. 유규국 사람들이 말했는데, '저희들이 먹을 것을 조금 가져왔으니, 부디 신라의 좋은 물건을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신라 뱃사람이 그 말을 듣고, 싸들고 온, 못 조각과 깨진 칼 조각을 꺼내 놓으니, 유규국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면서, 곡식과 과일, 유규국의 진귀한 고기와 과자를 주고, 못 조각을 가져 갔습니다. 크게 놀라, 과연, 먼 길을 온 보람이 있구나 하고, 보따리에 싸온 쇳조각들을 꺼내니, 유규국 사람들이, '저에게도 쇠를 파십시오.' '값을 더 쳐 드릴 테니, 저에게 쇠를 파십시오.' 하며 앞다투어 말하며 쇳조각을 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삽시간에 쉽게 들어 옮기지 못할만큼 많은 곡식과 과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유규국 사람들은 신라 말을 반쯤 할 줄 알고, 신라 사람들은 유규국 사람들의 말을 반쯤 할 줄 알았으므로, 뱃사람들은 기분좋게 물건을 나누고, 또한 물을 얻어 쉬어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배에 숨어 있던 당나라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로, '어찌 저 쓸모 없는 쇳조각을 얻으려, 귀한 곡식을 저토록 많이 쓰는가? 옛날 한나라(漢) 때에는, 철광석에서 철을 만드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알지 못했으므로, 삼한에서 철을 만들어 동예, 낙랑, 왜국섬에 철을 팔아 많은 구슬과 보물들을 얻었다는 일이 옛글에 남아 있다. 비록 지금은 철을 귀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으나, 이처럼 바다 먼 곳에 사는 유규국 사람들은 아직도 철을 만드는 것을 모르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하여, 유규국 사람들은 녹여서 창칼과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 신라 사람들에게 철을 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에게도 무딘 칼이 조금 있으니, 이것을 유규국 사람들에게 팔면 큰 이익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나라 사람들도 배 밖으로 나와 유규국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이에 유규국 사람들이 보고, 신라 말로 묻기로, '그대들은 옷과 모자가 다른데, 그대들도 신라 사람입니까?' 하였는데, 당나라 사람들은 신라 말을 몰랐으므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유규국 사람들이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신라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대들은 당나라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저희는 먼 바다에서 온 손님으로 이렇듯 성심을 다해 대하였는데, 저희를 속이고, 이처럼 당나라 사람들이 유규국 땅을 밟게 하였으니, 이것은 큰 배반입니다.' 그리고, 성을 내며 유규국 사람들이 돌아가니, 이내, 병사들을 데리고 와서 뱃사람들을 죽일 듯한 기세였습니다. 신라 뱃사람이 탄식하기를, '유규국 사람들은, 그 풍속에, 당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에 오면 큰 화를 입어, 난리가 난다고 믿고 있소. 그리하여, 당나라 사람들이 결코 바다를 건너 유규국에 오지 못하도록 항상 경계하고 있는데, 이제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는 이제 급히 도망가야 할 것이오.'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황급히 배를 띄워 그곳을 빠져 나왔는데, 물건을 다 바꾸지 못했으므로, 음식과 물이 크게 부족했습니다. 할 수 없이, 유규국 일대에 흩어져 있는 섬들을 돌아다니며, 조금씩 물을 얻고, 나무 열매를 따 모아서 음식을 삼으려 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동안 섬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상한 것을 보았는데, 그 키와 몸집이 작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규국 사람들도, 대체로 작은 편이었으나, 그보다 더 작은 사람들도 눈에 뜨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먹을 것이 부족해서 한 섬에 닿았을 때, 어떤 짐승들을 보았습니다. 뱃사람들은 몹시 굶주려 있었으므로, 섬 깊숙한 곳까지 샅샅이 뒤졌는데, 그 와중에 그 짐승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짐승들은 키가 사람의 반도 되지 않았는데, 몸과 얼굴, 팔다리의 모습은 사람과 같았습니다. 멀리서 얼핏보면, 마치 네 다섯살 먹은 어린 아이가 아닌가 생각하게 될 정도 였습니다. '어찌 세상에 저런 것이 있는가? 사람인가? 짐승인가?' 모두 놀라 이상히 여겨, 가만히, 보니, 그것들의 모습은 다만 크기만 사람을 상하좌우로 줄여 놓은 듯 하여, 남녀가 있고, 노소가 있어, 그 겉모양이 우리와 매우 비슷했습니다. 다만 옷을 입지 않은 벌거 벗은 모습이어서, 옷을 입고 머리를 다듬는 것을 모르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은 사람 모양의 짐승들은 우리를 보고 놀라 도망치기 시작하였는데, 끽끽 대는 소리를 내니, 그 소리는 마침 가축 울음 소리 같았습니다. 굶주려 있던 뱃사람들은 그 작은 짐승들을 쫓아 갔습니다. 섬 깊숙한 곳으로 더 들어가보니, 그것들이 사는 곳은 나뭇가지를 쌓아 놓고, 흙에 판 굴로 만든 곳이었습니다. 그 모양은 꼭 새들의 둥지나, 여우나 너구리 굴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 둥지에는 그런 작은 사람 모양의 짐승들이 서른에서 마흔 정도 있었는데, 하는 행동과 서로 소리내며 바라보는 모양은, 개나 말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여서, 진짜 사람의 행색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이때에, 뱃사람 중에 하나가 말하기를, '우리가 양식이 떨어져 이제 신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굶어 죽을 형편입니다. 그런즉, 저것들을 붙잡아서 구워 먹읍시다.' 하였습니다. 다른 뱃사람들이 머뭇거리고 있으니, 다시 나서서 말하기로, '저것들이 비록 그 겉모습은 사람과 비슷하나, 크기가 사람의 절반도 되지 않고, 내는 소리와 걸음을 걷는 것도 사람이 아니며, 소리와 손짓까지도 사람과는 전혀 다릅니다. 또한 머리를 쓰고, 집을 짓고 무리를 짓는 것 또한 원숭이나 호랑이 보다 못하여, 겨우 뻐꾸기나 너구리와 비슷할 뿐입니다. 그런즉, 저것들의 모습은, 그 얼굴이 꼭 사람과 닮았다고는 하나, 사실, 노루나 사슴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무릇, 사람이 존귀하다 하는 것은, 지혜가 있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것들은 말도 없고, 옷도 없으며, 오히려 지금 이렇게 가만히 보니, 모든 면에서, 저 짐승들은 가축의 일종에 더욱 가깝습니다. 평생 동안 밭을 갈며 주인을 위해 일한 소를 잡아 그 고기를 먹고, 열명의 병졸보다 공을 많이 세운 영리한 말이라 할지라도 잡아서 그 고기를 먹는데, 어찌 그보다 못한, 저 개돼지 같은 것들을 먹기를 머뭇거리십니까? 이른바 날아다니는 파리의 종류 중에, 그 무늬가 꼭 말벌과 같은 것이 있어서, 짐승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 있고, 또 기어다니는 벌레의 종류 중에, 그 무늬가 꼭 살모사의 머리와 같은 것이 있어 짐승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노루를 잡으면 꼭 어린애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어, 사람이 마음 약해 풀어주도록 하고, 물소를 잡으려 할 때에는 물소의 눈에서 눈물을 흘려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하여 칼을 거두게 합니다. 지금 저 짐승의 얼굴과 팔다리의 모습이 꼭 사람과 닮은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로 사람과 닮은 것일 뿐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굶어 죽을 형편이므로, 머뭇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뱃사람들이 가서 붙잡아 자세히 보니, 확실히, 그 짐승들은 겉모습은 사람과 닮았으나, 고라니나 순록과 비슷한 면이 많아 보일 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그리하여, 뱃사람들은 칼과 도끼를 꺼내어, 그 둥지에 흩어져 있는 그 작은 짐승들을 붙잡아 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짐승들은 팔다리가 사람과 비슷하여, 날쌔게 도망치지도 못했고, 사납게 덤비지도 못했으므로, 다만 휘두르는 창칼에 속절없이 피를 뿜으며, 애틋한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굶주린 뱃사람들이 칼을 휘두르니, 그렇게 잡아 죽인 그 작은 사람 모양의 짐승의 숫자가 삼사십이 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 그 짐승들의 고기를 저장하고, 또 불을 피워 요리를 만들어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다만, 한 사람이 그 짐승들을 잡지도 않고, 고기도 먹지 않으려 하므로, 사람들이 묻기를, '당신은 왜 이 짐승을 잡아 먹지 않소?' 하였더니, 그 사람이 말하기로, '우리가 저 짐승들을 잡아 먹으려 할 때에, 분명히 꺼리는 마음이 있었으나, 저 짐승들의 지혜가 말보다 못하고,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이 소보다 못하다 하는 것을 이유로 삼아, 저 짐승들을 다 죽여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혹 우리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들이, 먼 곳에서 건너와 나타나면 어찌하겠습니까? 만약에 어떤 족속이 있어서, 다섯살 바기 어린애 때부터, 꾀가 많고 이치를 잘 밝히기로는 설총이나 원효와 같고, 말을 달리고 활을 쏘기로는 고구려 임금 광개토나 백제 임금 근구수와 같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기로는 우륵과 백결선생과 같다 하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리하여 그 족속은 가난한 자들도 평양의 안학궁과 같은 집에서 살고, 비록 한 뙈기 땅을 가는 농부라 할지라도 다섯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닌다 하면 어찌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족속이 있다면, 그런 족속은 우리를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개돼지와 같은 짐승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서라벌의 기와집을 보고도, 그저 개미집과 다를 바 없다 여길 것이며, 국학의 선비들이 짓는 시를 본다 하더라도 꾀꼬리 노랫소리와 다를바 없다 여길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울고 불며 가련하게 무서워 하더라도, 칼날 아래에서 가축이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족속들이 우리를 다 잡아 먹는 것도 옳다는 말입니까? 하물며, 전날 고구려와 백제가 강성하였을 때는, 신라 사람들을 노비와 비슷하게 여겼고, 돌궐과 선비가 강성하였을 때는, 진나라와 한나라의 후예들도 종과 다를바 없다 여겼습니다. 그런 자들이, 우리가 쇠약해 졌을 때 들어와, 우리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 씹어 먹으며 주린배를 채우려 할 때, 무엇이라 말할 것입니까?' 하였습니다. 그말을 듣고, 자뭇 숙연한 기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섬을 떠나서, 배는 물을 구하기 위해 유규국 일대의 다른 섬에 들어 갓습니다. 그 섬에서 물을 길어 오다가, 그곳에서 뱃사람들은 한 무리의 산양을 보았습니다. 그 섬의 산양들은 사람을 보고도 귀를 쫑긋 세운 채 뚫어지게 바라만 보기만하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피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산양들이 살이 통통하고 몸집 또한 컸으므로, 처음에는 섬에 사는 사람이 기르는 것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섬에 사람의 흔적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산양을 잡아 먹었는데, 그 수가 백마리 정도 였습니다. 산양 백마리를 붙잡아 먹을 때에, 한 뱃사람이, 사람과 닮은 작은 짐승을 잡아 먹을 때 말한 사람에게 묻기로, '이 산양은 일전의 섬에서 먹은 사람 모양의 짐승보다 못할 것이 없어 보이는데, 먹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하였더니, 그 사람은 몹시 망설였습니다. 그렇게, 물과 짐승 고기들을 모아서, 겨우겨우 신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규국을 갔다와서 벌어들인 돈을 밑천으로, 부자는 차차 돈을 벌어 모아, 나중에 늙어서는 집에 금을 입히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고기 반찬을 먹지 않게 되었다 합니다. 저 또한, 그날 그 부자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며칠동안 곰곰히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했다. 여왕 또한 매우 흡족해하여, 말하기로, "내가 들으니, 그대의 이야기가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 뜻을 기려, 오늘은 더 이상 고기 안주를 내어 오지 말라." 하고, 또다시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가 이어졌으니, 밤이 새도록 끝이 없었다. - 원본 출전 "영표록이(嶺表錄異)" *8. 유규국 이 이야기의 중심은 "태평광기"에 있는 "영표록이"에 실린 "주우(周遇)"의 이야기에서, "소인(小人)"에 관한 부분만 뽑아낸 것입니다. 이것은 주인공이 주우의 시점으로 되어 있는 이야기 인데, 여기서는 시점을 동행한 신라 사람의 이야기로 구성했습니다. 유규국에서 신라 사람과 서로 말이 통하고, 철을 팔아서 돈을 버는 부분, 당나라 사람을 불길하게 여겨 떠나왔다는 부분, 소인국의 여러 정황 등등은 원본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한편, 배경 묘사와 인물들의 대화는 고려시대 이규보의 "슬견설(蝨犬說)"등의 구절을 참조하여 대거 보충하였습니다. 앞뒤의 진성여왕에 관한 배경설명은 진성여왕 때인, 서기 895년 8월의 기록과, 신문왕 때의 설총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에 임의로 끼워 넣은 것이고, 부자의 사치에 관한 묘사는 삼국사기 잡지의 기록을 참조한 것입니다. [게렉터 블로그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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