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리베로' 홍명보(35∙LA 갤럭시)가 정들었던 그라운드에 작별을 고한다. 광장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가 마냥 좋아' 공을 찬 지 무려 25년만에 축구화를 벗는 셈이다. 본사(iMBCsports)는 90년대 이후 한국축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수퍼스타' 홍명보의 축구인생을 총 3회에 걸쳐 집중조명한다. 홍명보, 한국축구 기념비를 세우다 홍명보를 제외하고는 90년대 한국축구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축구에 남긴 그의 족적은 뚜렷하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홍명보의 대표팀 합류여부는 논외거리였고, 그가 빠진 한국 대표팀의 플레이를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실제 한국대표팀에서 리베로와 스위퍼의 역할을 병행했던 홍명보의 존재는 일자수비가 대세였던 세계축구의 흐름에 역행하는 한국의 전술적인 문제까지 발생케 했으니 그의 역향력을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다. 홍명보가 처음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것은 90년 2월 노르웨이전. 이후 13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했던 홍명보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2년 대회까지 월드컵 4회 연속출전했으며 한국 선수로는 최다이자 전 세계선수중에서도 몇 손가락안에 꼽히는 'A매치 135회(9골)출전'의 금자탑을 세웠다. 미국프로축구(MLS)에서 2시즌을 뛰며 한국인 최초로 올스타전에 참가했고, K리그에서도 총 7년간 156경기에 출전해 14골 8도움을 기록했다. 또 일본프로축구 벨마레 히라쓰카와 가시와 레이솔에서는 모두 114경기(7골)에 출장하는 등 한국선수로는 흔치않게 3개 리그에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2002월드컵에서는 한국의 4강행을 견인,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에 선정됐으며, 지난 3월에는 FIFA(국제축구연맹)가 선정한 세계 100대 스타에 뽑혀 세계적 수준의 선수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바 있다. 그러나 홍명보의 진가는 이러한 기록보다는 경기 내용면에서 더 잘 드러났다. 수비수이면서도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 선수에게 주어지는 '리베로'를 맡으면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날카로운 시야와 패싱력, 또한 대포알같은 중거리슛을 터뜨려 타고난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 2002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의 지시 하에 리베로에서 스리백의 중앙수비수로 역할변경을 시도했지만 상대 공격의 길목을 차단하는 판단력은 변함없이 위력을 뽐냈다. 또 미국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입증된 롱패스 능력과 슈팅력, 또한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과감한 중거리슛으로 순식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노련한 경기운영 능력과 리더십까지 홍명보의 플레이에는 수만가지 찬사를 늘어 놓아도 아깝지가 않다. 홍명보는 오는 8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슨 홈 디포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10일에는 올시즌 홈 마지막 경기에 나서 선수생활을 정리하는 공식 은퇴식을 가질 예정이다. 은퇴 후에는 미국 현지에 남아 어학공부와 평소 관심있어 한 스포츠마케팅 공부를 병행하며 축구행정가로 도약할 수 있는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겠다는 계획. 홍명보의 은퇴는 한국축구의 뒷걸음질이 아닌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다. 25년간 축구화를 신으면서 수많은 좌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002월드컵에서 선수로서의 최고점을 찍을 수 있었듯이, 향후 '행정가' 홍명보는 확고한 신념과 풍부한 경험을 앞세워 한국축구의 저변 확대와 대외 이미지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