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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 안 군인이라도, 먹고싶은건 먹고싶어 >.<
게시물ID : military_634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5
조회수 : 2036회
댓글수 : 23개
등록시간 : 2016/07/11 11: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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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대하기 십수년전. 
그야말로 군기가 개판으로 풀려있던 후방의 어느 독립중대.

그 독립중대 연병장 철책 너머에는 마을이 하나있는데,
오후 5시반쯤해서 그 철책 사각지대로 나가보면 웬 할머니가 한분 나와계시고, 주문을 받아가셨다한다.
그리고 7시 8시 쯤에 가보면 철책개구멍쪽에다가 봉지에 메모지로 X소대 누구꺼.라고 써붙여서 잘 포장해서 놓고 가셨다고 한다.

무슨 주문???
주류일체, 안주일체.

인구 백명도 채안되는 마을주민상대로는 장사가 안되니까, 
철책오가며 마을주민들 보면 인사잘하라는 부대지시가 있어 
인사주고받으며 알게된 이 독립중대원들을 상대로 영업을 시작하신게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쭈욱펴면 고향의 안방인데, 
먹는거는 영 시원찮기 짝이 없던 김일병들은 얼싸좋다며 돈푼을 모아 주문을 했다.

군인상대독점장사이지만, 그 할머니는 시중가로 받으셨고, 단골(???)들은 더 챙겨주셔서 장사는 정말 번창했다고 한다.
BOQ에서 오가기가 애매한 위치라 그렇지, 아는 간부들은 안다는 소문난 손맛의 주인공이셨다고 한다.
엄청 음식 잘하신다고...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당시 꽤나 날라댕기던 특전사출신 주임원사가 소문을 듣고, 현장을 덮치려다 실패했다.
아무리 개빠졌어도 주임원사와있는데, 주문안하지...그 할머니도 철책 근처에서 쑥뜯는척 했다한다.

그러자 그 주임원사님은 아예 길도 없는 산을 타고 넘어가 결국 현장을 적발했고...그 중대는 쑥대밭이 되었다.
중대장부터 간부 전원이 징계먹고, 상병장들은 돌아가면서 영창갔다가 다른 중대들에게 뿔뿔히 팔려나갔고,
일이등병들만 남은 그 중대는, 본부에 있던 중대와 주둔지를 교환하며, 수많은 타중대간부들에게도 감시받는 처지가 되버렸다.

그리고 그 본부에 있던 중대는 페인트냄새도 채빠지지않았던 신막사를 떠나,
구형막사를 쓰는 독립중대로 주둔지를 옮겨야했다고 한다.(날벼락)







그로부터 십수년 후,

행보관님이 나와계시는 평일에는 꿈도 못 꾸지만,
금요일 토요일 전반야후반야뛰고 오전취침할때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다.

쉴 틈 있을때 헛짓거리하지말고 잠이나 자!!!라는 행보관님계실때는 저녁 점호끝나고 11시까지 테레비연등조차 없는데,
(연등하고 싶으면 자격증이나 수능시험 볼 거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함-_-ㅋ)
주말에는 일광소독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병사들 하고싶은대로 쉬게 두라는게 중대장횽의 방침이라, 
행정반에서 통제하는 텔리비전 스위치는 토,일요일 내내 ON 상태였다.

주 시청자는 전반야 후반야때 초소에서 푹 자고 온 처빠진 상병장급 사수들이었지만,
주말에는 쉬는 날이라고 갈구는것조차 쉬는게 소대분위기인지라,
(우리에게 주말이란 작업안나가고 경계나가는 날일 뿐이지만 ㅠ.ㅠ) 
평일에 테레비연등하면 초소에서 자빠져잘라고 잠안자냐고 쥐어터질 일이등병들도 
주말에는 병장들이랑 같이 앉아있어도 재미없다고 채널돌려봐도 될 정도로 풀어주기 때문에 보고 싶은 놈은 같이 봤다.

(덕분에 본 일요아침드라마. 최강희 나오던 "단팥빵."
일이등병때 야간에도 볼 수 있었던 유이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 ,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재밌는걸 상병장들만 보는건 가혹행위라고 병장들이 풀어줘서 볼 수 있었음...
"파리의 연인" 졸린 눈 비벼가며 봤더니, 엔딩이 아씨발꿈....ㅂㄷㅂㄷ)

병장들도 오침중인 후임들 깰까봐 소리가 간신히 들릴 정도로만 키워놓고 봤지만,
나같은 예민남(ㅋ)도 머리에 베개닿는순간 훅 가버릴 정도 다들 피곤에 쩔어있어놔서 
그냥 소리키워놔도 잘 사람은 그냥 잔다. 





같은 중대이고, 일자형 구형막사쓰는데도 분위기가 소대별로 확연히 달랐는데
그래서인지 테레비보는 취향도 소대별로 갈렸다.

우리 소대는 드라마+스포츠였고,
다른 소대는 드라마+영화였고,
또 다른 소대는 오직 애니였고,
평일에는 오침없다가 주말에야 오침하는 본부소대는 안자는 사람 맘대로.
(하늘생명을 군부대에 설치한것은 신의 한 수. 예산을 그렇게 쓰란 말야...유료채널도 좀 풀어주고...101~109번까지 그거...)

그런 그들이, 주말 11시면 모두 한군데로 채널을 고정시켰는데,
그것은 어느 공중파에서 하던 맛집프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때 한창 말많았던 돈만 주면 본부취사장에서 대량연성한 카레똥국도, 
미슐랭가이드 쓰리스타 레스토랑에서 설거지했던 오너워셔가 만든 인도폼페이풍 커리와 일본도호쿠풍 미소시루로 둔갑시켜주는 프로였다.

하지만, 이따 점심때 진짜 카레똥국을 먹어야하는 군인들에게는 그야말로 환상의 일루젼급 프로그램이었는데,
해물이라면 새우깡자갈치죠스바붕어빵조차 잘 안먹던 내가, 
그 프로보고 휴가나가서 내 돈주고 아구찜을 사먹는등...초딩입맛인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준 프로그램이었다.
(또 하나는 친구가 알려줬던 모성인사이트...대개 친구가 알려줬다고 그럽니다.)

휴가나가면 짜장면탕수육피자햄버거먹겠습니다!!!는 백일휴가나가는 신병이나 하는 소리고,
슬슬 포상이 나오기 시작하는 상병장쯤 되면,
황태구이, 해물찜, 산채비빔밥, 빠에야, 봉골레, 어죽, 민물새우탕같은걸 먹고 온다고 그런다.
(현실은 휴가 좀 작작 나오라고 엄마한테 등짝맞고, 
모아온 휴가비로는 부족해서 찬밥에 김치넣고 물말아먹다 복귀함.
라면에 계란 풀어먹는것도 사치ㅋ)

그렇게 그 날 점심후에 짬통은 포화상태가 되고,
주말에는 짬차안들어오는 관계로 터져나가는 짬통에 취사병과 취사장청소하는 소대의 근심걱정만 늘어난다.





그 날 당직사관은 소대장이었다.
근엄진지한 군인이 꿈인 3사출신이지만, 천성이 유쾌한 사람이라 자기가 저질러놓고 후회하던 사람이었는데,
당직완장만 차면 이 사람의 꿈의 군인모습을 볼 수가 있다.

물론 자기한테나 엄격할뿐, 당직부사관-상황병-불침번들은 풀어주는 스타일이었는데,
하루종일 같이 완장차고 있는 주말에는, 
당직부사관에게 당직사관이 행정반에 있으니까
오후에는 공도 좀 차라그러고, 식사시간도 샤워도 하고 담배도 피고 해야할 개인정비도 하고 오라고 무려 한시간씩 통크게 보장해주고,
이거 줄께 거스름돈 남기지말고 군것질거리 사오라고 시키는 등 근무여건은 참 좋았다.
단점은 이 양반이 잠을 안자. 그리고 나도 못자ㅠ.ㅠ

오전오후 상황병들 교대하자, 나도 당직사관에게 밥먹고 오겠다며 오전상황병이랑 취사장에 갔다.
짬버리러가는 행렬이 줄을 잇는걸 보니, 오늘 그 맛집프로 위력을 알만했다.
물론, 그거 못 본 나와 상황병은 식판도 씹어먹을 듯이 점심을 먹었다.

"가위바위보...아놔.'
"ㅋㅋㅋㅋㅋ 감사히 먹겠습니다."
상황병이랑 커피사기 가위바위보 지고 커피를 뽑자, 담배는 제꺼 피십쇼.하고 한대 준다.
내가 담배줄께 커피를 니가 사라.라며, 보자기낼껄 보자기...라며 원통분통해하고 있는데, 각소대 말년병장들이 내게로 다가온다.

"아저씨들도 커피빼드립니까?"(말년들은 아저씨라고 부르는게 중대전통...물론 짬되는 상병장들만...)
"어디 준민간인이 군인을 빨아먹나. 많이들 드시게."
"아냐아냐. 이 눈빛, 이 말투, 이 걸음걸이...나에게 용건들이 있어. 평소같음 잔소리나 한다고 눈도 안마주칠건데."
ㅋㅋㅋㅋㅋ 웃으며, 이 아저씨들은 상황병에게서 담배하나씩 뺏아문다.
아, 니가 커피사고 내가 담배줄께.란 말 취소.

"야, 저기 마을쪽 통문키 좀 빼줘."
여의도 몇배급 면적을 가진 부대의 독립중대들 중에 우리 중대 연병장만 코딱지만해서 
축구하다 탄력받아 뻥 내지르면 공이 철책 밖으로 넘어가 행정반에서 통문키를 받아서 나갔다오곤 했다.
(축구 한번 하려면 연병장에 세워둔 간부들 차, 중대 두돈 반까지 다 중대밖으로 치워야 했음.)
거기다 우리 중대의 모든 자물쇠는 열쇠통합보관함에 모아두고 관리하는데, 
탄약고 열쇠통합보관함등등의 열쇠는 대부분 군부대가 그렇듯 상하단으로 분리되어있고,
대개 상단 자물쇠 열쇠뭉치는 당직사관이, 하단 자물쇠 열쇠뭉치는 당직부사관이 가지고 있는데...대부분은 당직부사관이 상하단 다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날은 당직완장만 차면 근엄이가 되는 소대장인지라, 그런거 없이 정상적으로 나눠서 가지고 있었다.

"공 나갔습니까? 여기 하단있으니까, 상단은 당직사관한테 주라 하십쇼."
굳이 나한테 말할것도 없이, 그냥 공나갔다고 하면 방송으로 나를 불러서라도 통문열쇠빼줄건데...
말년아저씨들이라 감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아...오늘 당직...알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담배같이피우고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는 내무실로 들어갔다.




그날 당직사령은 대위달고 처음 주말 당직사령서는 신임과장이셨다.
당직사령의 위엄을 보여주겠노라. 
그는 주말 오후, 병사들이 쉬는 꼴을 못보고 상황을 터트렸다.

대개 상황을 터트리면 산 속 초소 아니면 위병소 어딘가인데,
위병소야 보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산 속 초소를 터트리면, 그러면 안되지만...해당중대 행정반만 바쁘면 된다.
우리도 괜히 병력움직이기 귀찮고, 
오대기도 차타고 나갔다가 소대장들끼리 전화문자 몇번하면 자기들도 산 탈 일 없이 상황끝나니까 퍽 반기는 편이었다...
물론 가라가 판치는 후방부대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당직사관, 당직부사관, 상황병, 중대통신병만 머리좋고 잠깐 바쁘게 움직이면,
이론상 상황종료시키고 북괴에 역습을 가하여 서해갑문뚫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주석궁을 폭파시키고 철수시킬 수도 있다. 이론상.

그러나 우리 당직사령님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안2기가 우리 중대연병장에 특작부대를 태우고 착륙한 전무후무한 상황을 터트렸다.
하고많은 넓디넓은 다른 중대 연병장들 두고, 
축구 한번 할때마다 막사 뒤에 보관하던 골대 들고와서 쓰러지지말라고 U자 못 박고, 
간부들 차까지 다 치우고 공차는 불쌍한 중대 연병장에 착륙해야하는 북괴 조종사에게 경의를 표하며...중대는 발칵뒤집혔다.
(본부에서 오고가기 편하니까 그랬을거야...분명...)

사실 그렇게 이론상으로만 처리해와서 퍽 걱정했는데,
분대장들은 바로 튀어와서 총기함열쇠 수령해가서 총기함따고 애들 무장시키고 소산지로 인솔해나갔고,
부분대장들은 탄박스에 치장물자카드 던져놓고 탄박스들고 소산지로 튀어나갔고,
소대 전령들은 중대통신병에게 P77수령받고 역시 튀어나갔고,
분대장들은 소산지에서 위장크림뿌리고 소대원들에게 임무숙지시키고 상황종료상황종료를 되뇌이며 P77만 보고 있었다.
그동안 나와 취사병들은 소대마다 돌아다니며 파기물자 더블빽에 다 때려박고 있었고,
행정병들도 행정반에 파기물자 더블빽에 다 때려박고 중대소각장 옆에 던져놓았다.

이론으로만 해와서 걱정했는데, 실전되니까 다 하더라-_-ㅋ
그리고 주말 오후 우리를 그렇게 엿맥인 당직사령은 뭐 잘하네. 상황종료.라며 대충 둘러보고 가버렸다.

이게 뭔 난리여.라며, 총기반납하러 들어오는 중대원들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우리 당나라군대인줄 알았는데 아니었엌ㅋㅋㅋ라며, 체육대회 우승하고 트로피받은 여중생들처럼 깔깔거리며 행정반을 오고 갔다.
마침 저녁식사일찍하고 나가야하는 전반야 근무자들 투입시킬 시간까지 겹쳐 행정반은 어수선했다.

"당직사관은 총기함 갱신할테니까 너는 탄약고랑 통합보관함 좀 잠궈라."라며, 소대장은 나에게 열쇠를 맡겨놓고 갔다.
탄약...오케이...열쇠...어??? 통문키 하나가 걸쇠가 아닌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나는 내무실뛰어다니느라 열쇠보관함은 처음에 열때만 봤으니...
소대장이 뭐하다 떨어뜨렸나보다...그렇게 생각하고 원래 자리에 걸어두고 잠궜다.

(다음 날, 
너냐? 우리 애들 주말오후 쉬는시간 날려먹은게?라며 우리 중대장횽이 개갈구고,
너냐? 우리 애들 억지로 샤워시켜놓고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라며 상황떨구고 즐거워한 짬딸리는 새디스트새끼가? 
라며 오대기쪽 중대장이, 그 과장 쪼인트를 깠다한다...

왜냐하면 제대로 통제안된 상황발령에 위병소면회객들이 패닉에 빠져 한바탕 난리가 났고,
주말에 철책따라 등산다녀오시다가 그 꼬라지를 목격한 부대장님이 상당히 진노하셨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 중대와서 우왕~잘한다잘해~하고 보고 갔음ㅋ)




"야. 당직부사관. 방송해라. 오늘 야간근무자 통합신고없다."

소대장들 중에서 유일하게 당직서면 통합신고 꼬박꼬박하는 소대장이, 
너무도 훌륭하게 상황을 처리해낸 중대원들에게 너무나 만족해하며, 오늘은 통합신고를 안하겠다. 선언하였다.
너무나 나사빠진 군생활을 아닌가하고, 프로페셔날군인인 소대장이 우리를 쪼는 시간이 통합신고였거든.
전달하겠습니다. 금일 야간근무자 통합신고는 없으니, 중대원들은 개인정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뭐 이렇게 좋아해??? 야. 통합신고 귀찮냐??? ㅇㅇ. 당연하지말입니다-_-.




너 땀 많이 흘렸을건데 가서 샤워하고 와.
여전히 기분이 좋은 당직사관은 쉬고와쉬고와.라며, 나를 풀어주었다.
한창 청소중일때 풀어줘서 화장실청소하는 상병애한테, 야. 나 샤워실써도 돼???라니까 얼마든지 쓰란다. 
남들 다 활동복입고 있는데 나만 홀랑 벗고 샤워하니까 더럽게 챙피했다(ANG???)

소대들어와서 (그거 누가본다고 밖에서도 안바르던)스킨로션 쳐발쳐발하는데...어째 청소하는 인원들이 안보인다.
"야. 병장들 다 어디갔어? 왜 니들만 청소해?"
애들이 막 우물쭈물한다. 
그때가 나만 조기진급해서 맞고참들이랑 같이 병장진급해서...사실상 상병말호봉취급(소대 실세ㅋ)받던때라...
"이 양반들이...트집잡히니까 병장들이 내무실청소정도는 잡자고 지들이 그래놓고 다 어딜간게야-_-."
이따가 들어오면 눈치껏 삐대자고 그래.라며, 얼른 행정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점호 하기 전, 인원파악할래는데, 어째 분대장들이 안오고 상병들이 와서 인원알려주고 간다.
분대장들이 다 나보다 고참들이라 가서 소대엎어버릴 짬은 아니라서, 그려그려. 틀리면 니들이 뭣되는거지 뭐. 알았다.라며 돌려보냈다.




"...점호 순서는 1소대로부터!!! 점호취하지않는 소대는 열주웅~ 쉬엇!!!!"
상황도 잘 처리했겠다. 그 난리법석떨었는데 다친 인원도 없겠다. 
이거이거 잘하면 점호끝나고 내무실 들어가서 박지성경기도 보고 올 수 있겠는걸.하며, 당직사관 뒤를 따라 갔다.
1소대-본부소대-행정반-2소대-3소대로 구성된 구형 일자 막사인지라, 1소대 가려면 본부소대를 지나가야하는데, 뭔가 냄새가 난다.
'야. 창문 좀 열어놔. 이거 뭔 냄새냐?'
창문쪽에 서 있던 일병 통신병한테 눈치를 주고 얼른 당직사관따라 1소대로 들어갔다.




100여일간 당직부사관생활하며 점호 때 별별 사건들이 다 있었지만, 
(심지어 첫 당직일때는 당직사관이랑 소대원들이 짜고 나 골탕맥인적도 있었는데...)
그날만큼 내 등골이 서늘한적이 없었다.




보고자인 맞고참 분대장부터...소대 병장들 중에 제대로 서있는 양반들이 한명도 없었다.
그 신규오픈한 식당에서 춤추는 바람인형들 같았다. 너무 당황스러우니까, 덩실덩실 흥겨워보이기까지 했다.
본부에서 희미하게 나던 그 냄새는 1소대내무실로 들어오자 확실하게 풍겨왔는데, 무려 "막걸리"냄새였다.ㅋㅋㅋㅋㅋㅋㅋ 
조뙤따 그리고 망해따...

평소 잘웃고 그래도, 자기가 처리해야할 일은 침착하게 해내는 소대장이 엄청 당황해하더니, 등 뒤에 있던 나를 쏘아본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양팔로 X자를 만들어보인다. 아냐아냐. 나도 진짜 몰라.

"1소대 엎드려. 당직부사관. 나 따라와."
본부도...병장들 + 취사병 + 군견병들 땜에 엎드려.
2소대도 병장들 땜에 엎드려.
3소대도 병장들 땜에 엎드려.
올 킬.




그렇게 행정반에 돌아온 당직사관 표정은 참담했다.

"가서 애들 일어나라 그러고, 그 사이에 땀흘린 인원있음 너한테 보고하고 샤워하라 그래. 
오늘 TV시청없고, 중반야...나가야지...중반야인원들 투입준비하라 그래."

등에 식은 땀이 줄줄흘러서 나도 샤워하고 싶은데, 차마 말은 못하겠더라.

소대마다 돌아다니면서 일어나. 샤워할 인원있으면 상병 한명이 통합해서 파악해다가 나한테 알려주고,
오늘 테레비시청없으니까 끽 소리말고 드러누워자라. 라며, 3소대찍고 행정반오니, 
음주만취자들이 행정반에 모여있었다.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할말없어 들어가 이것들아."
그런다고 네.하고 들어가서 될 일이 아닌지라, 다들 묵묵히 열중쉬어하고 서 있었다.

"누구야? 주동자가?"
병장 ㅁㅁㅁ. 병장 ㅇㅇㅇ. 병장 ㅅㅅㅅ. 각 소대 말년아저씨들이 손을 들고 나선다.
모르고봤음 말년이 총대메고 나온걸로 보고 감동(왈칵!!!!)했겠지만,
아까 점심때 마을쪽 통문키 달라한 양반들이라, 더 조뙤기전에 자수하는구만.이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문제는 그 11시에 하던 맛집 프로그램이었다.
그날 무슨 시골장터같은데에서 막걸리를 주욱 들이키는걸 보여주는데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더란다.
아구찜 황태구이 이런거는 이 근처에서 구하기 힘들지만, 막걸리는 철책에 붙어있는 마을슈퍼에서 사올수 있잖아???
라고 생각했단다...이 양반들이-_-




"...그러니까...아까...상황때 열쇠보관함 열려있는 통에 통문키빼다가 나갔다오셨다???"
"그...그렇습니다..."
"야 이 새끼들아 무장탈영...아...니들은 말년이라 총도 안빼고 보일러실에 짱박혀있었지...활동복입고 기어나간거냐?"
"저번에 휴가복귀할때 사복 챙겨온거있어서 그거 입고 나갔다왔습니다...;;;;"
"뭐??? 야. 그냥 무장탈영하지 그랬냐??? 기관총으로 갈겨버리게."
"죄...죄송합니다..."

나랑 상황병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상황판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고,
얼핏 본 당직사관의 표정은 배신감, 당혹감등이 믹싱되어 죽일듯이 병장들을 하나하나 노려 보고 있었다.
굿바이 아까 사둔 과자들. 굿바이 중반야철수하고 오면 같이 먹으려고 했던 야식라면.
일각여삼추. 
안그래도 긴긴 겨울밤. 내 군생활같이 길겠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대장이 갑자기 크크큭하고 웃었다.
표정이 평소 장난기 가득한 소대장 얼굴로 돌아와있었다.

"막걸리 얼마나 사왔냐?"
"두 말 정도 사왔습니다..."
"뭐??? 야 이런 정신나간놈들아!!!"
그 많은걸 겨우 스무명이 먹어없애려고 했으니 만취자가 나오지...;;;;;

"야. 취사병들."
세 취사병들이 관등성명을 대며 앞으로 나선다.
"야, 니들 주말에도 못쉬고 고생하는거 아니까 행보관님도 신경써주시고 당직사관도 배려한다고 했는데, 이러면 쓰냐?"
"죄송합니다."
"뭐 짬장이 너무 짬이 안되니까 병장들이 숨겨놓으라고 그러고 안주만들어달래니까 만들었겠지. 그래도 공범이야. 알아?"
"죄송합니다!!!"
"야. 말년."
"병장 ㅁㅁㅁ."
"너는 가서 남은 막거리 다 가져와. 짬장."
"상병. ㄱㄱㄱ."
"내일 아침 메뉴 뭐야?"
"두부참치김치찌게입니다."
"그거 하나 만들면 중대원들 다 먹나?"
"많이 남습니다."
"그럼...너는 가서 두부김치 적당히 계산해서 만들어서 가져와. 야. 다들 들어가 자, 이것들아. 행정반에 술냄새배겄다."




잠시 후, 말년아저씨가 가져온 막걸리는 생각보다 양이 꽤 많았다. 먹다먹다 남긴게 이 정도다...;;;
짬장이 깨소금까지 뿌려 만들어온 두부김치까지 도착하자, 이거 근사한 술상이었다.

"치사하게 지들끼리 맛있는거 먹고, 글치? 야. 너도 병장인데, 조기진급했다고 상병취급하고 말이다."
"아...아닙니다....;;;;;"
"자, 한잔 받아라. 진급축하주다. 고참들이 사준거지만."
그렇게 한 잔 주욱마시고는 두부김치도 오물거리는 동안, 상황병이랑 불침번도 한잔씩 얻어마신다.

그리고 너무 취해 중반야투입도 못하게 생긴 병장 몇명들 근무땜빵돌리느라, 통신병들이랑 막걸리 한잔씩 마시며 머리를 맞대고 근무조정을 했다.




중대에 그 난리난지도 모르고 근무조정하느라 늦게 투입시키다보니 늦게 철수해서 입이 한치는 튀어나온 전반야인원들은 
컵라면들고 취사장가서 당직사관이 가득가득 따라주는 막걸리 한잔씩 얻어마셨다. 
컵라면과 막걸리의 조화는 끝내주더라. 나도 땀흘렸더니 몸에 염분부족해서 나트륨보충하러 같이 라면먹다가 또 마심.

불침번들 교대하고 들어갈때 한잔씩 주고,
중반야철수하고, 병장들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도 한잔씩 마시고, (나도 옆에 있다가 한잔 더 마시고)
후반야철수하고, 병장들 제외한 후반야인원들과 상황병, 야간선탑과 야간운행뛴 운전병아저씨 한잔씩 마시고나니 (나도 옆에 있다가 한잔 더 마시고)
그 많던 막걸리들이 다 없어졌다.




"전달하겠습니다. 중대원들은 기상해주시기바랍니다. 각 소대 분대장 1명씩 행정반에 와서 인원파악해주시기바랍니다."

평소같음 당직부사관 짬 딸린다고 상병애들 보내던 양반들이, 
전과가 있으니까 친히 납시어 현황판갱신하고 행정반들어오고 나갈때 우물거리지않고 신고도 똑바로하고 그러더라ㅋ

불침번서며 막걸리 한잔씩들 빨아버려 공범이 되어버린 행정병들은 평소같음 환기고 나발이고 겨울에 춥다고 문도 잘 안열더니,
그 날은 막걸리냄새남을까봐 문이란 문은 다 열어재끼고 행정반을 청소했다.

그리고...
"어따. 부지런들하다잉."
"어???? 추...충성!!!!!!"
평소에 절대 이 시간에 안나오고, 딱 행정보급관님 출근하기 직전에 와서 일찍 왔던척 하는 우리들 큰형님, 말년중사부소대장이 새벽부터 나왔다.
"충성. 소대장님. 그거 어딨습니까?"
"아. 미안하게됐습니다. 부소대장님. 이 쪽으로. 당직부사관. 나 따라와."

그 많은 막걸리병들 어디치웠나싶었는데, 막사뒤에 싹 모아져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많이도 마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실어."
이 막걸리병들 안치워놓으면 행보관님의 불호령이 떨어질테니,
소대장이 간밤에 부소대장한테 연락해서 이것 좀 치우게 도와달라고 연락했다고 한다. 

그 막걸리병들은 그렇게 부소대장 무쏘 짐칸에 실렸고, 
부소대장님은 그렇게 나갔다가 평소처럼 행보관님 출근하시기 직전에 나타났다.





간밤에 어영부영 많이 마셔버린 나는 혹여, 
잠시 후 행정보급관님 앞에서 당직부사관교대할때 술냄새날까봐 담배 뻑뻑 피워놓고 양치하고 난리브루스를 피워댔다.
그리고 당직부사관교대하려고 행정보급관님께 상황판 들고가는데, 
부소대장형이 "행정보급관님. 창고치울거있는데 작업병없어서 야 좀 데려가겠습니다."라며 창고로 데려가서 위기를 넘길수 있었다.
창고 뒤편에서 부소대장이랑 담배 한대 피우고 들어가서 잤다.





그리고, 그 날 오후.
어제 병장들이 장난이 지나쳐서요.라며,
소대장은 당직취침하고 일어나자마자 병장들 싹 그러모아다가 한나절내내 군장을 돌렸다. 뱅글뱅글.

행보관님한테 걸려서 박살날래. 소대장 통제하에 군장돌래. 

누가 봐도 후자가 남는 장사인지라, 병장들은 숙취에 뛰다 토하면서도 군소리없이 군장을 돌았다.




나??? 아몰랑. 니들끼리 술먹고 돌던말던, 당직취침이라 오후늦게까지 푹 잤다. 

식사명령지키라는 행보관님의 추상같은 명령에 당직취침이고 나발이고 중간에 일어나서 점심먹고 자야하지만,
부소대장횽이 아까 오전에 제가 너무 일시켜서요.라고 카바를 쳐준 덕분에 중간에 안깨고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그 후로, 소대장은 말년들 전역 전에 통닭튀겨와서 먹여주는걸 그만두고,
외출증끊어서 부대근처마을 술집을 겸하는 동네슈퍼로 데려가서 같이 술한잔하는걸로 전역파티를 바꿨다.





그때 현장을 적발한 그 주임원사님은, 

말년을 널널하게 보내려고, 출퇴근하기도 편하고 자기 위로는 사실상 중대장 뿐인...
몇년 전 자기가 박살낸적 있던 그 독립중대자리로 이전한 중대의 행정보급관으로 오셨다.

그리고 몇년 후, "저는 어리버리합니다." 라고 이마에 새겨놓은 신병이 하나 들어와 중대원들을 참 고달프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신병이 병장달고 당직부사관 서던 날...말년들이 통문키따고 나가 막걸리를 사와마시는 일이 벌어지는데...
출처 수양록과 별도로 적던 내 일기장 中 쓸까말까 고민했던 소재.
+당시 사건 당사자인 말년아저씨 1人
+같이 마셨던 병장아저씨 1人
+당시 막걸리병 버리고 왔던 (큰형님) 부소대장
+지금은 소령(진), 당시 소대장.의 증언들.

저번 주말에 누구 결혼식때 만났음.
물론, 내 결혼식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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