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봉재공장
서울역에서 전차를 타고
남대문과 시청 앞 종로거리를 지나
전차들이 가득 있는 동대문에 도착했습니다.
전차는 시골의 젊은이들에게는
생전 처음 본 교통수단이며
신기한 것이었습니다.
시골에서 무작정 올라온
젊은이들은 청계천 봉재공장에
일자리를 얻어 서울 생활을 시작 하였습니다.
쉬는 날은 전차를 타고
서울 시내 구경을 다니면서
서울 생활에 점점 익숙해 졌습니다.
이렇게 틈틈이 구경한 서울이야기를
명절이면 고향 친구들에게
늘어놓곤 했습니다.
서울 이야기를 들은
고향 젊은이들은 명절이 지나면
또 하나 둘 친구를 찾아올라 왔습니다.
이런 일이 점점 심해지면서 농촌은
한참 일할 젊은이가 부족해지고
서울은 일자리가 부족했습니다.
청계천 봉재 공장에서는
품값은 작으면서 할 일은 많아
젊은이들이 갈수록 힘들다 했습니다.
그래도 일자리를 구하려고
서울로 오는 젊은이들은
날로 늘었습니다.
경제가 날로 번창하면서
한 면은 힘들지만 어느 한 면은
즐거워하던 희망찬 시대가 있었습니다.
날로 생활 모습이 낳아지면서
사람들에게는 더 큰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못한
학업에 대한 욕망이 솟았고
전문가가 되려는 욕망도 생겼습니다.
욕망들이 모여 오늘날의 경제 부흥과
문화 발전 삶의 여유로움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일 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일이 힘들다 어렵다 지저분하다면서
직장을 고르는 것은 먹고 살기가
좋아진 뒤였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가난한 시절에는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나타났습니다.
근로자들의 일터를 현대화 시켜 달라
근로자의 복지를 향상시키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자들은 사업의 이익
분기점이 무너져서 힘들어 했고
근로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업가들은 운영을 포기하거나
사업장을 국외에 내보내는
기업도 생겼습니다.
오늘날은 그 빈자리를
외국의 노동자들이 앞 다투어
일자리를 찾아와서 대신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글로벌 시대라는 아름다운 명목으로 힘든 일을 그들이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