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란 기존의 제도권 교육과는 다른 방식의 교육을 시도하는 학교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공교육과는 다른 교육을 지향한다는 의미죠. (이에 대해서 사실 대안교육의 시초인 해외에서는 얼터너티브 스쿨이 아닌 인디펜던트 스쿨이라고 부르며, 실질적인 의미로서도 대안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얘기도 많았습니다만... 이미 단어가 정착되버려서 뒤집을 수도 없는 일이었죠.)
기본적으로 대안교육은 서구권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한국에서는 90년대 말~00년대 초에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현지화하는 형태로 시작되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학생자치와 인성문제에 대한 강조입니다.
예를 들어 서머힐은 수업참여는 자유지만, 주마다 열리는 학생회의 참가는 필수입니다. 스스로 공동체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공동체의 일에 참여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거죠. 물론 회의를 해봤자 승인여부는 전적으로 선생에게 달려있는 일반학교의 학생회의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대학의 학생회의에 비교할 수 있을겁니다.
프리스쿨의 사례를 들자면 책에서 다소 폭력적인 학생의 사례가 나옵니다. 다른학생을 괴롭히다가 그 주의 학생회의(여기도 전체회의입니다)를 통해 제제를 받는 일이 반복되는 학생이죠. 그러던 어느 날, 해당 학생이 자기가 좋아하던 책상을 부숩니다. 작정하고 때려부순건 아니고, 평상시에도 위에 걸터앉고 방방 뛰고 하다가 그만...-_-; 아무튼 그에 대한 대응이 재미있는데, 회의 결과 ‘부숴진 책상을 직접 수리하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신의 실수로 부순 것을 고치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으라는 거죠. 그리고 학교가 있는 동네에 사는 목수아저씨와 접촉해서 멘토링을 부탁합니다. 사실 직접 고치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니, 옆에서 기술적 지도를 해달라고 부탁한 거죠.
그렇게 부서진 책상은 목수의 작업실로 배달되고, 해당 학생은 꾸준히 가서 고쳐야 하는데... 안갑니다. 그걸 순순히 할 사람이었으면 문제학생이 아니죠. 근데 학교에 와도 그 책상은 없어요. 평상시에 한 짓이 있는지라 애들이랑 친한 것도 아니고. 그래도 오기로 며칠 버티다가... 결국 목수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고치는 법을 고민하고, 조언을 받고, 방법을 깨달아가며 고쳐가는 동안 목수와 속 깊은 대화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학생은 목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자신이 잘못 행동하고 있었다는걸 깨닫고는 여러의미로 변하게 됩니다. 물건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다른 학생들과도 부드러운 교류를 시도하게 되고, 목수아저씨와는 스승 겸 절친이 되죠. 이래저래 다르긴 하지만,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와 유사한 사례입니다. (사실 이 사례는 학교 측의 성공이라기 보다는 대인배 목수아저씨의 성공에 가깝긴 하지만, 암튼 기본적으로 방치나 전시행정이 아닌 실질적 인성교육을 다각도로 시도한다는 얘기입니다.)
아무튼 이 이외에도 해외엔 다양한 스타일의 대안학교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참고해서 한국의 대안교육이 시작됩니다. (다른 스타일의 학교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가 다녔던 학교는 저런 계통의 학교였고 제 관심도 그쪽 뿐이었는지라 딱히 얘기할 거리가 없네요.)
초창기의 사례를 들자면 민들레사랑방, 금산/산청 간디학교, 하자센터 등등이 있겠네요. 스타일은 서로 달라도 전부다 한국에선 파격적인 것이었고, 결국 교육청과 마찰을 빚게 됩니다. 결국 자력구제 또는 연세대 청소년센터와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지원하는 서울시대안교육센터를 통해서 자리를 잡게 되죠. 이 당시만 해도 교육청은 적이었습니다. 수시로 폐지를 시도했고, 일반학교가 받는 것처럼 지원을 받으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교육방법을 맞춰야 했죠. 한마디로 그냥 일반학교로 전환하라는 얘기.
이후 수년간의 고난을 거치면서 간디처럼 어느 정도의 타협점을 찾아 인가를 받거나, 민들레나 하자처럼 아예 교육청을 생까고 학력은 검정고시로 패스하는 대신 자유로운 교육방식을 고수하는 등 각각의 방향성을 잡으면서 대안학교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간디 측이 교육청 때문에 피눈물나는 고난을 겪었다고 알고있습니다만,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고로 패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안학교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일단 하나는, 대안학교와 고급사립학교의 경계가 불분명한 학교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사실 하자작업장학교(하자센터가 운영) 같은 경우도 서울시의 빵빵한 지원과 연대의 고급 인력풀 덕분에 엘리트 학교라는 비아냥을 간간히 듣기도 했습니다만, 이쪽은 기본적으로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원하는 것을 배우고 실행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모집하는 곳이지, 돈 많은 학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비도 쌌고요. 물론 이 또한 서울시의 지원 덕이지만. 굳이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국영수 쌩까는 예고라는 느낌이었죠.
근데, 아예 그런 문제를 넘어선 정말로 있는 학생들이 가서 빡시게 공부하는데 뭔가 기존 교육과 다른 것도 시도하기는 하는, 대안학교인지 민족사관학교의 마이너버전인지 헷갈리는 학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겁니다. 이우학교가 그런 학교들의 대표적인 케이스죠. 이 때문에 대안교육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또 다시 논란이 치열해집니다만... 이 모든걸 날려버릴 태풍이 있었으니.
두번째 문제, 적응교육(?)을 위한 대안학교의 등장이죠.
시발 교육청이 지들 방식을 거부한 애들도 잘 성장하는걸 보더니, ‘아 문제아 해결에 대안학교를 쓰면 되는구나’라는 발상을 한겁니다. 그리고 교육청의 지휘 아래에 ‘대안학교’라는 이름을 내건 학교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죠. 네. 이게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안학교’입니다. 이거 때문에 생겨난 어떤 학교와 그걸 이용해먹은 어떤 망할 프로가 지금 제가 이 글을 쓰는 계기고요.
이 학교들은 기존의 대안학교와는 여러의미로 단절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인 공통점이자 가장 중요한 기반인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스스로 시작한 교육운동이라는 것부터가 들어맞지 않죠. 기존의 대안학교들은 아예 교육청을 무시하거나, 인가를 받더라도 자신의 방식을 지키려고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근데 이 ‘대안학교’들은 오히려 교육청이 좀 다른 방법을 써보려고 주도해서 세운 것이죠. 근데 그 골때리는 교육청 수준이 어디 가진 않을거라...
이는 다른 심각한 문제점을 불러오는데, 스스로의 의지로 제도 밖 교육을 원해서 뛰쳐나온 아이들과 제도에 의해 튕겨져 나온 아이들은 여러의미로 다르다는 겁니다. 물론 이는 기존의 대안학교들도 어느 정도는 겪는 문제기도 하고, 일본의 경우는 튕겨져나온(주로 이지메 피해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면서도 멋지게 아이들이 성장하는 학교도 있습니다만... 문제는 교육청이 개념이 없다는 거죠. 지금 나오는 얘기들을 보면 가해자로서 튕겨져 나온 아이들과 피해자로서 튕겨져나온 아이들, 그리고 다른 사유로 튕겨져나온 아이들조차 구분하지 않는데 더 이상 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사실상 ‘대안학교’라는 이름을 가장해서 교육청 기준에 안맞는 아이들을 밀어넣는 수준인데.
어떤 의미로는 교육청이 교육개혁 요구를 제지할 새로운 수단을 손에 넣은거죠. 공교육의 문제를 대대적으로 손보는 대신, 부적응자는 격리하고 적응자는 그대로 남겨서 굴리는 것. 정말로 이런 막장스러운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하는 것은 딱 그런 수준이니까요.
이 정도까지가 제가 아는 한국 대안교육의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보면서 느끼셨겠지만, 교육청 개객기라는 한마디로 요약이 가능하죠.
교육청의 프로젝트와 어떤 프로그램 때문에 사람들이 대안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 가슴아파서 쓴 글입니다. 어찌됐든 대안학교도 ‘대안학교’도 같은 명칭을 쓰는 데다가, 이 개념에 대해서 누군가가 써라 쓰지마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런 문제는 계속해서 벌어질거라 봅니다. 단지, 단 몇명이라도 대안학교=문제아학교가 아님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죠.
혹시나 대안학교를 고려하시는 분들이 지뢰를 피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하자면, 민들레 사이트 또는 민들레에서 출판한 책들을 통해서 현재 한국에 어떤 대안학교들이 있고 각 학교가 어떤 시스템과 분위기로 굴러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라는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는 것 또한 좋습니다. 이게 위에서 얘기했던 연세대 청소년센터와 서울시가 협력해서 만든 서울시 대안교육센터예요. 서울시 교육청께서 친히 대안교육지원센터를 만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명칭을 바꿨네요.
민들레 링크
서울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링크
스크롤을 위로 올리고, 나와있는 탭에서 네트워크 배움터를 클릭하면 학교 리스트가 뜹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안학교를 가기전에, 한국의 대안학교에 대한 책들을 사서 읽고, 각 사이트에 들어가서 커리큘럼부터 게시판 분위기까지 파악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서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는 정말 제 마음에 들었죠. 어디 출신이라느니 소속감 같은거 질색하는 성격인데도, 그 학교를 졸업했다는 건 내심 기쁘고 자랑스럽게 여길 정도로.
대안학교라는게 틀이 잡힌 체계가 아닌 만큼, ‘대안학교’ 같은 지뢰가 아니더라도, 교육 방식이나 문화가 자신과 안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가장 맞는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아는 건 중요해요. 일반적으로는 상상도 못할만한 예시를 하나 들자면, 선후배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학교도 있습니다. 입학시기, 나이 그딴거 안따지고 친하면 서로 반말하고 아니면 서로 존댓말해요. 그 외에도 산골에 있는 기숙형 학교, 교과공부를 하는 학교, 대학식의 수강제로 돌아가는 학교 등등 폭이 워낙 넓기에 대안학교를 갈때 자신에게 맞는 학교를 찾기위해 노력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