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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오늘의 살인 (BGM)
게시물ID : panic_635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37
조회수 : 4068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02/01 06:25:29

BGM정보 : 브금저장소 -


  그녀는 떨고있다.
목소리로 알 수 있다.

"물... 드실래요?"

그녀는...
보온 병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아까 홀짝이던 생수 병이 떠오른다.
차갑겠죠? 물어보려던 내가 미련스럽다.
그저, 콧바람에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겨울 산 속에서
그 헐거운 가방 속의 생수 병은 과연 차갑지 않고,
달리 무슨 수가 있으리오.

대답없이 산을 마저 올랐다.
무안했는지, 아니면 원래 목을 축이려던 건지
그녀는 냉큼 차가운 물을 삼켜댔다.

그녀의 손에 의해.
얼큰하게 원샷을 당한 빈 물 통이
힘 없이 산 밑으로 추락했다.

곧 죽여야할 목표에게 선의를 바라기엔
나는 비교적 예의는 있는 편이다.
'살인 청부업자' 치고는.

물론 누군가가

"어? 사람 죽이는 일 하시는 거 치고는 참 친절하시네요?"

라고 말해줬다거나 그랬던 건 아니다.
곧 죽을 사람에게 예의정도는 갖추는 게 사람 된 도리,
라고 본다.

그렇지 않은 청부업자는 죽어서 불지옥에 떨어질 거다.

사람을 여럿 죽이다보면
그런 게 마음에 걸리곤 한다.

지옥, 업보, 참회.
그런 게.

그래서 나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백발백중, 일발필중.
모두 죽었다. 내 타겟들은.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물... 괜찮으세요?"
"아직도 더 있어요?"

대답이 없었는데도, 또 물어본다는 건 그거다.
심심하다는 뜻이다.

'죽기 전인데, 말이나 좀 섞을까요?'

그런 사람 은근히 있다.

간혹 '나를 죽일 사람'과의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싫어서
아무 이야기나 꺼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만.

이번엔 좀 달라보인다.

대응법은 한결 같아도 괜찮다.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면 된다.
그게 싫으면, 무시하면 된다.
무시 좀 했다고 지옥에 가진 않겠지.

대답없는 나의 뒤로 그녀는 몰래 한숨을 쉰다.
다 들려라 하는 식의 몰래 한숨이다.
곧 죽을 게 걱정이라 쉬는 한숨일지도 모른다.

ㅇㅇ시 외각에 있는 산 중턱에
기가 막히는 절벽이 하나 있다.

절벽 건너에는 숨이 턱 막히는 고도 400정도의 산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벽이 목격자들의 눈을 차단해 주고, 절벽 밑에 빼곡한
바위들은 낙하하는 사람의 머리통을 한 번 실수 없이 바순다.

정말 아직 '단 한 번도' 실수는 없었다.

때문에 낙사 시킬 사람은 이 곳으로 하고있다.
그래서 그녀와 산을 오르는 중이다.

절벽 앞에 도착한 그녀는 말 없이 옷을 벗는다.

두툼한 패딩,
속에 겹겹이 껴입은 스웨터와 티셔츠,
기모 청바지, 속옷,

하다못해 양말까지도.

아직 그늘진 곳엔 어렴풋하나 눈이 쌓여있는 풍경 속에
벌거벗은 여자는, 투명인간처럼 현실감이 없다.

풍경에 그녀가 조화롭지 못해서 그런 것도 같고,
풍경이 그녀에게 조화롭지 못해서 그런 것도 같고.

그녀는 "춥네요." 했다.
나는 "어서 갈아 입으세요." 했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나면, 그때부터가 진짜 일이다.
나의 철칙은 '아무도 모르게' 이기에
그녀는 여기까지 아무도 모르게 왔고,
지금부터 아무도 모르게 절벽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시체를 처리할 것이다.

아무도 몰라야한다.

"어울려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나는 일순 그녀의 남자친구라도 된 기분이다.

고민이 들면 꼭 스스로 팔짱을 해야했다.
난 팔짱을 한 채 고개를 옆으로 뉘어 그녀의 원피스를 심사했다.

남색의 원피스.
땡땡땡, 하고 물방울 무늬가 박혀있다.

그리고, 짧다...

"치마가 짧네요." 대답하자, 그녀는
"그래서요? 어울려요?" 하고 되물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잠시,
어울린다는 대답을 체념한 듯
그녀는 발바닥에 흙을 손등으로 털어내며
한 짝 씩 검정색 힐을 신었다.

어울리지 않는다.

엄마 옷을 입은 어린아이처럼 옷감이 남아 펑퍼짐하다.
펑퍼짐하고 치마가 짧으니,
여름에 유행하던 하의실종 패션이 떠오른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다.
산자락 중턱에서 하이힐은 넌센스다.
좀 전에 패딩과 청바지가 훨 매력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쥐고 펼처선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본다.

"사진 한 번 찍어 주실래요?"

그녀가 웃는다.
죽을 사람치곤 참 빙그레하다.

내가 찍어 준 사진을 찡그린 눈으로 보던 그녀는
입술을 삐죽 하곤, "쯥." 소릴 내더니 입술을 굳게 닫았다.
만족도 그렇다고 불만족도 아니라는 것 같다.

"제일 비싼 옷인데, 이젠 너무 크네요."
"그러게요. 옷이 좀 남네요."
"그래서 어울린다는 말 안해준 거죠?"

그녀는 내게 눈을 흘겼다.
무슨 소용인가.

제일 비싼 옷.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이제 죽을 건데,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가.

세상엔 별에 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밥에 사이다를 말아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이다를 코로 마시는 사람도 있고.

교통사고가 나서 하루 아침에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녕 죽고 싶어서 살인 청부업자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같이 죽으러 가줘요. 제 돈, 다 드릴게요. 전 재산.'

나 좀 죽여줍쇼.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기 전에 때깔고운 옷을 입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녀처럼.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생각인데,
겁이나서 누가 좀 밀어줬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녀처럼.

"아! 깜빡했다."

혼잣말을 한 그녀는 가방에서 목걸이며 반지를 꺼낸다.
목걸이와 반지를 한 그녀는 가방에서 빗을 꺼내 머리를 다듬곤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또 "쯥." 했다.

쯥. 한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올려다 보곤,

"여기서 죽으면 정말 아무도 모르겠어요." 했다.

아무렴 누가 고른 곳인데.
나는 "아직 한 번도 누구한테 걸린 적 없었어요." 대답했다.

그녀는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밑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곤 시선은 절벽 저 아래에 떨궈둔 채 "떨어지면 아플까요?" 물었다.

그녀의 마지막 길이 두렵지는 않길 바랐다.
확신도 없으면서 나는

"떨어진지도 모르게 끝 날 거에요."

라고 말해버렸다.
괄호 열고, 머리부터 잘 떨어지면, 괄호 닫고...

"시작할까요?"

내가 운을 띄우자,
그녀는 좀 전과는 판이해졌다.

자주 보는 모습이다.

눈동자가 파르르 신기할 만큼 진동하고,
깜빡임이 서너 배는 빨라지고,
손톱을 이로 뜯거나, 자꾸 옷 매무세를 단정히 하려거나.

마른 침을 꿀떡, 삼켜보거나.

그녀는 침을 몇 번이고 삼키다가,
가방에서 새 물을 한 통 더 뜯어 마셨다.

그녀는 말 없이 생수 통 주둥이를 내게 내밀며
'마실래요?' 하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피식 헛웃음을 슬쩍 흘린 그녀는
정갈히 원피스를 아래로 당겨 고쳤다.
그리곤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 쉬며

"시작해 주세요."

했다.

통이 큰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뒷모습이
이제와서 좀 갸냘프게 보여왔다.

안 어울려도 어울린다고 하는 게 예의였는데.

그녀를 밀기 직전에야 원피스를 칭찬했다.

"이제보니 잘 어울리네요."

그 순간이었다.

내 손은 그녀의 등을 힘없이 밀어냈고,
그녀는 "정말요?"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시작할까요?
시작해주세요.

모두 합의하에 이루워졌음에도,
그녀는 당황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절벽과 허공의 사이에서
유유히 넘어져 가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간신히 그녀의 손 끝이 내 팔목에 닿았던 자리는
긴 손톱상처가 새겨졌다.

그녀가 절벽 저 밑에 닿기까지
원피스는 퍼드드드득 요란한 날갯짓을 했다.

온 산이 울릴만큼.
큰 몸짓이었다.

그녀가 절벽 밑에 도착해서야,
원피스는 조용히 날개를 접었다.

절벽 응달에 가려 겨울 내내 눈이 쌓여있던
저 밑의 그녀는 정말 날갯짓으로 안착이라도 한 듯 한 껏 팔을 벌리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누워있기에 다시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건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를 한참 내려다 보자,
그 모습이 하얀 종이 위에 까맣고 빨간 점이 어설프게 찍혀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만 남았다.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동안
그녀의 가방 속 생수 병이 슬슬 내 등을 치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잠자리가 뒤숭숭 할 것 같다.
하필 그 순간 뒤돌아 보다니.

팔뚝의 피가 잘 멈추질 않는다.
깊이 손톱이 들어갔었을까.

절벽 밑 그녀에게 가는 길 초입 눈밭에서 몸이 무릎까지 들어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설마 살아있진 않겠지?

지난 겨울사이,
절벽 밑으로 쌓인 눈이 한 번도 녹지 않았을 리는
그랬을 리는... 없겠지?
그런 일은 없지?

눈이 가슴까지 차오르면서도
그녀의 죽음을 믿었다.

원래 같았다면 4, 5 분만에 도착할 길을 거의
한 시간을 소비해서야 그녀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거리는 둘 째치고,
그녀를 찾아 내는 것에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통 새하얀 중환자 실이 되어 있었다.

눈 깊숙히 파묻힌 그녀는
폐병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숨을 쉬고 있었다.

"아...아, 저... 씨이... 너... 무... 아, 파... 요... 너무... 아... 파... 요..."

그녀에게 아직 살 가망이 있나?
억센 운이었다.

이즘 되면 다시 살아 볼만한 이유가 하나 생긴 것 아닐까?
살인 청부업자로선 부끄럽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끄러운 줄 알라는 듯, 그녀는 손을 하늘로 뻗었다.
저 위에 절벽 끝으로 향한 손가락이 말하고 있었다.

'한 번 더. 나를 한 번 더 떨어트려. 죽여줘.'

그녀는 살고 싶지 않은 듯 했다.
절벽 위를 올려다보니, 아득한 상상이 쏟아져 내렸다.

반 시체인 그녀를 짊어지고, 다시 올라단다고?..

허리 뒷춤에 차고있던 군용 나이프를 꺼내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그녀는

"칼은... 무... 무... 서, 워... 하지... 마... 요..."

하고 힘겹게 말을 뱉었다.

나를 죽이지 마세요.
사람을 숫하게 죽였지만,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떨어져 죽고 싶어.
칼은 싫어.

어차피 죽는 건 죽는 거 잖아?

그 것이 무슨 차이가 있나 싶었지만,
차마 그녀에게 칼집을 낼 순 없었다.

몸에 힘이 없는 탓에 그녀를 업지도,
그렇다고 고통스럽게 들춰 매지도 못하고,
드라마나 영화 속 신혼부부처럼
그녀를 앞으로 안고 다시 산을 올랐다.

산을 다시 오르는 동안
그녀는 힘을 쥐어 짜며 내 팔등을 때렸다.

"안... 아플... 거... 라... 면서... 요... 오..."

산을 오르며 보이는 날카롭고 묵직한 돌멩이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곧 눈을 돌려버렸다.
칼이나, 돌멩이나, 그게 그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내 팔 소매를 꼬욱 쥔 채 추욱 늘어져 내렸다.
거친 숨소리가 아니었다면, 차갑게 눈을 뜬 채로 죽어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초점 없는 눈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맹시했다.

원망의 눈빛처럼 보이는 건 기분탓만은 아닐거라 생각됐다.
그녀가 잡은 소매 밑으로 아직 덜말랐던 피가 다시 흘러 내렸다.

절벽 앞에 다시 다다라서,
그녀에게 말했다.

"다왔어요. 이제, 다시 시작할까요?..."

희미하게, 그녀게 쥐고 있던 손목이 나를 이끄는 걸 느꼈다.
그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같이... 주... 죽...어..." 라며 나를 올려봤다.
마지막 순간에 온 힘을 소비하는 듯, 그녀는 내 소매를 계속해 끌어 당겼다.

"가... 같....이.... 죽어... 준다며... 전...재산... 다... 줬...잖아...요..."

실성인가.

"죽으러 같이 와달라고 하셨었잖아요." 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같이 죽어준다고 약속했다는 듯, 천천히 고갤 흔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눈엔 가득히 눈물이 고여
이젠 내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같...이... 주... 죽!"

소매를 잡은 것에 개의치 않고 그녀를 절벽에 던져버리자,
그녀의 손을 맥없이 풀리며 다시 한 번 추락을 시작했다.

오늘 두 번째 날갯짓이었다.
퍼드득 퍼드득.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여자였다지만, 사람을 들고 산을 오른 상태였다.
반 송장인 사람을.

패딩 안으로 땀이 흥건해 있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가방을 맨 상태였기 때문에 땀이 차기 더 좋았을 지도 몰랐다.

다시 절벽 밑을 내려다보니,
신기하게도 그녀는 좀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잘 확인은 되지 않지만, 자리도 거의 비슷한 곳에 떨어진 듯 보였다.

"두 번을 똑같은 곳에 떨어져서야 겨우 죽을 목숨인가..."

기구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무슨 삶을 살아왔을까.
머릿속을 털어내려해도, 자꾸만 그런 의문에 휩싸이려하는 지우려 애썼다.

어차피 죽을 사람, 생각은 않는 게 좋다.

한숨이 길게 쏟아졌다. 담배 연기만큼이나 진한 입김이 나왔다.
몸이 더워진 탓인 듯 했다.

절벽 밑의 그녀를 보며,
잠시 담배를 한대 꺼냈다.
담배를 꺼낸 김에 아까부터 그녀가 권하던
물도 꺼내 들었다.

"같이 죽어 달라니..."

담배 첫 모금을 깊게 마시곤 혼잣말이 나왔다.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밑의 그녀를 내려다봤다.
쓸쓸히 팔을 벌린 채 혼자 떠난 여자.
마지막에 가서 혼자 죽기는 너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녀가 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살 던질 것을..."

연거푸 한숨이 나왔다.
장초를 절벽 밑으로 던져버리고,
그녀가 남기도 떠난 물로 목을 축였다.

물을 반 정도 냉큼 마셨을까.

땅콩?
아니, 아몬드?

이상한 냄새.
어디선가 맡아 본 냄새.

청산가리?

일순 기침이 터지며 밑에서 팔벌려 누운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득하게 멀리 누워있는 그녀의 시체가, 그 순간 내 마중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돌변한 듯 느껴졌다.

기침이 개걸스럽게 토해졌다.

'같이 죽으러 가줘요. 제 돈, 다 드릴게요. 전 재산.'

눈 앞이 아득해지며,
몸이 앞으로 힘 없이 넘어졌다.

저항할 틈도 느끼지 못하며,
그녀의 품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하는 몸을 느낀다.

그녀, 이 번엔 죽었을까?
아직도 그녀가 "같이 죽어." 입으로 되뇌고 있는 것만 같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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