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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정당의 시초
게시물ID : sisa_6353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늑대와호랑이
추천 : 9
조회수 : 31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2/17 10:32:46
이번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당법 개정 이후 온라인 입당을 국내 최초로 가능케 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이 시대 강력한 소통의 도구인 만큼 정치계에서도 이를 활용해 여론을 수렴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어 왔지요.

그러한 시도를 제일 먼저 한 정당으로는 과거 2002년에 창당되었던 개혁국민정당이 있습니다.
유시민, 문성근, 명계남 등이 모여 창당하고, 직후 한나라당 탈당파인 김원웅(당시 2선의원)이 입당한 당이죠.
민주당 당내에서 극심한 후보 흔들기에 희생되고 있었던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후보 교체론까지 있었음)를 
민주당 외곽에서 지원하여 당선에 일조하였고,
2003년 재보궐선거에는 유시민을 고양 덕양갑에서 당선시키기에 이릅니다. (동 지역구는 이후 진보 개혁진영이 꾸준히 자리하고 있으며,
현 정의당 대표 심상정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합니다.)

당시 개혁국민정당은 당내 의사결정을 인터넷 투표로 했고,
게시판을 활용한 토론도 매우 활발했습니다.
후에 열린우리당으로의 통합을 결정할 때도 인터넷 투표로 결의했는데,
선관위가 인터넷 투표는 무효라고 결정을 내려서 합당파와 잔류파간의 충돌이 있었지요. (투표 결과 자체는 합당이 대세)
이때 유시민과 싸우고 잔류파를 이끈 이용휘씨는 어찌 어찌 개혁당을 이어가다가 
정당요건 (지구당 5개)를 창당하지 못해 해체되었습니다. 이용휘씨는 이후 갈팡질팡하는 행보를 보이다가 
18대 대선에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고, 자유선진당과 친박연합을 거쳐 '한나라당'(0.85% 득표한...)에 합류하기도 합니다 ㅡ.ㅡ

여하튼 이러한 인터넷 정당의 흐름은 개혁국민정당 합당파가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후 열린우리당에도 전수되었고,
이후 개혁당의 중심인물 상당수가 다시 모였던 국민참여당까지도 이어집니다. 
통합진보당도 분당 사태 이전까지는 이러한 문화가 존속되었습니다.

개혁당 멤버 상당수가 현재 나이 40대 후반, 다시말해 인터넷이 들어온 초창기에 이를 접했던 (당시로서는)얼리어댑터들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이름이 아닌 닉네임으로 호칭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유시민의 닉네임은 잘 알려졌다시피 '첨맘'이었는데요,
여하튼 이런 문화는 국민참여당 시절까지도 이어져서 지역위원회 토론회에서 서로를 닉네임으로 불렀던 것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어...갑자기 최근 입당인증 올라오는 것 보고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개혁당이 떠올라서 글을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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