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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그리고 사진 한 장의 무게
게시물ID : sisa_4419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뭔소리
추천 : 11
조회수 : 2350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3/09/27 17:41:13
장준하 문익환 윤동주.jpg
 
이 사진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숭실중학 재학 당시 함께 찍은 사진 
뒷 줄 세사람의 생은 마치 운명과도 같다.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맨 오른쪽의 인물이 먼저다.
재학 중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퇴했다. 
그로부터 7년 후 1943년 (당시 27세) 독립운동혐으로 체포되어 
해방되기 여섯달 전 일본의 감옥에서 옥사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의 일이다. 

맨 왼쪽에 있던 이는 
 
일본에서 대학다니던 중 
학도병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다 
 
6개월만에 탈영 혹한의 길을 2개월간 걸어 
 
임시정부에 도착 이범석 장군 휘하에서 광복군이 되었다. 
첫번째 이가 옥중에 있을 때의 일이다. 
이후 김구의 비서로 이 나라에 돌아와 
당시 일본군 장교로 있던 이가 통치하던 나라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58세였던 1975년의 일이다 

가운데 있던 이는 둘에 비하면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다.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공동으로 성서를 쉽게 번역하는 작업에
개신교 대표로 참여했다. 

두번째 이의 죽음을 계기로 세상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반독재운동의 앞에섰고, 통일운동으로 휴전선을 넘었다. 
오랜시간 감옥에 있었고 출옥한 다음 해 
심장마비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77세였던 
 
1994년의 일이다. 

이들의 이름이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이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관해 말들이 많다. 
정쟁으로 다룰 일이 아니다. 
식민지 시절, 독립군 장교였던 이에 대해 
나라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1차 출처 : 서용민 님 페이스북
2차 출처 : 다음 카페 갈계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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