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골(1996년 8월17일)
데이비드 베컴은 윔블던과의 경기에서 하프라인으로부터
골을 기록하며 축구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유나이티드의 시즌 오프닝 매치는 셀허스트 파크에서 열렸다.
베컴은 골키퍼 닐 설리반이 라인을 벗어난 것을 목격하고
유나이티드의 3대0 승리를 이끄는 유명한 골을 기록한다.
전 윔블던의 골키퍼 설리반은 BBC 라디오 5에서 이야기했다.
"그는 공을 잡고 곧장 슈팅을 했다.
나는 공이 나를 넘어서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은 크로스바 아래에 떨어졌다.
그 시기에 모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은 특별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과 같은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그 소년을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가 나 없이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잉글랜드 vs 아르헨티나(1998년 6월30일)
잉글랜드는 생테티엔에서 열린 1998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2대2 무승부 후 페널티로 패배했다.
그 경기에서 마이클 오언의 원더골과 디에고 시메오네를 가격한 후
악명높은 레드카드를 받은 데이비드 베컴의 모습을 보았다.
전 잉글랜드 동료 선수인 앨런 시어러는 목요일 BBC 스포츠에 이야기했다.
"당신은 축구선수로써 특징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기복이 있을때 당신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보여줘야 한다.
그는 1998년 월드컵에서 그것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1999년 5월2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프리미어리그 타이틀 획득과
뉴캐슬과의 FA컵 결승전 승리후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은
누캄프에서의 가장 기억될만한 밤과 함께 따라왔다.
베컴의 2번의 코너킥에서 시작된 테디 세링엄과
솔샤르의 인저리타임 골로 유나이티드는 바이에른 뮌헨에
2대1로 승리했다.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 대표팀 동료인
필 네빌은 목요일 BBC 스포츠에 이야기했다.
"데이비드 베컴은 믿을 수 없는 커리어를 가졌다.
4개 국가에서 4개의 타이틀,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100경기
잉글랜드가 가졌던 가장 최고의 대사(ambassador)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이 되다(2000년 11월15일)
임시 감독인 피터 테일러는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친선경기를 위해 토니 아담스와 마틴 키언을 제쳐두고
베컴에게 처음으로 주장완장을 맡겼다.
전임 감독인 케빈 키건 체제에서는 베컴은
솔 캠벨이 부재중일 경우에 부주장으로 임명되었다.
베컴은 2000년 BBC 스포츠에 이야기했다.
"이것은 나의 축구 커리어에 있어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이다.
나에게는 항상 큰 야망이 있었다.
어렸을때 나는 잉글랜드를 이끄는 꿈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제 그것은 이루어졌다."
그리스전 골(2001년 10월6일)
베컴은 2001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숨막힐듯한 프리킥으로
잉글랜드를 2002년 월드컵 본선으로 진출시켰다.
잉글랜드는 2002년 월드컵 8강에서 브라질에 패배했다.
전 잉글랜드 감독인 스벤 고란 에릭손은 목요일
BBC 스포츠에 베컴의 그리스전 골은 그의 커리어에 있어
하이라이트였다고 이야기했다.
"데이빗은 그 경기에서 많은 프리킥을 놓쳤다.
시간이 거의 넘어설 무렵 그것을 시도할 만큼 강한 정신력이 있었고
그는 그것을 해내었다."
아르헨티나전 월드컵 페널티(2002년 6월7일)
데이빗 베컴은 일본에서 열린 2002 월드컵 그룹스테이지에서
아르헨티나에 1대0으로 승리함으로써 페널티 스폿에서
잉글랜드의 승리자가 되었다.
이 골은 1998년 퇴장사건을 잊게 할 만한 것이었다.
풋볼 리포터인 필 맥너티는 말했다.
"만약 잉글랜드가 아르헨티나와의 후반전 불가피한 리바이벌에 직면해
그들의 행운에 탑승했다면 1986년 마라도나의 신의손 사건과
1998년 페널티 실패로 탈락한 이후 그들이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베컴은 축구화 충돌 사건 이후 퍼거슨을 용서한다.(2003년 2월18일)
데이비드 베컴은 드레싱 룸 다툼으로 그의 눈 위에 남겨진 상처 이후
2003년 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보스 퍼거슨과 화해를 했다.
베컴은 퍼거슨이 뜻하지 않게 그의 얼굴을 향해 축구화를 날렸고
"여러가지 일들 중의 단지 하나였다고" 그 사건을 묘사했다.
퍼거슨은 2003년에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29년간 감독생활을 했다.
드레싱룸에서 일어나는 일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우리는 그 일에 대해 넘어갔다.
그것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 합류(2003년 6월18일)
데이비드 베컴은 스페인 거함 레알 마드리드와 4년계약을 맺었고
레알은 맨유에 24.5m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했다.
그 시기 베컴의 미래는 퍼거슨과의 충돌 이후
강하게 미디어에서 구체화되고 있었던 소스였다.
바르셀로나, AC밀란, 인터밀란을 포함한 빅클럽들이
그의 영입에 관심을 보였다.
전 레알 마드리드 회장인 라몬 칼데론은 BBC 라디오 5에 이야기했다.
"그가 이 곳에 있었던 몇년동안 아주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행동을 하고 매우 프로페셔널했다."
베컴은 잉글랜드 주장의 자리에서 물러난다(2006년 7월2일)
데이비드 베컴은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 8강전 포르투칼과의 경기로
탈락한 후 6년동안 맡고 있었던 대표팀 주장의 임무에서 물러났다.
"우리는 새로운 감독인 스티브 맥클라렌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내가 이 주장직을 물러나야할 적절한 시기라고 느끼고 있다."
LA갤럭시와 계약(2007년 1월12일)
데이비드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2007년 LA갤럭시로 합류한다.
그때 31살이었던 베컴은 5년계약을 맺었고
그의 봉급, 스폰서쉽 계약, 셔츠 판매, 구단 수익의 공유와 같은
부분을 합하면 약 128m파운드의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최고의 폼 또는 트로피를 획득하는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모든 운동선수의 꿈이다. 그것은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매우 운이 좋았다. 맨유, 레알, LA갤럭시, 파리생제르망에서
리그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다."
런던 올림픽(2012년 7월27일)
데이비드 베컴은 스피드보트를 타고 올림픽성화를 스타디움으로 운반하며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행사에서 스펙타클한 입장을 했다.
2005년 올림픽을 유치한후 런던에서 베컴은 특별한 역할을 수행했고
보트가 탬스강을 가로지르는 것과 동시에 타워브릿지에서 내려오는
불꽃커튼을 포함한 화려한 모습을 약 9억명의 사람들이 지켜보았다.
베컴은 지난해 BBC 스포츠에 이야기했다.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은 환상적이다.
나는 지난 8년간 그 행사의 일원이었던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파리생제르망으로 합류한 데이비드 베컴(2013년 1월31일)
베컴은 PSG으로 합류하는 것이 흥미롭고 영광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즉시 그의 급여를 자선목적에 기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 잉글랜드 주장인 그는 LA갤럭시를 떠난후
파리생제르망과 5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나에게 기회를 준 파리생제르망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최고의 레벨에서 플레이할 때 나의 커리어를
끝내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