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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추모시]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게시물ID : readers_90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유선비o
추천 : 2
조회수 : 29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9/28 14:39:32

인호.jpg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물었을 때,
먼지 흩날리는 다락방 구석에 걸터앉아
방울침 적셔가며 그대의 이름을 읽었을 때
나는, 모르고 있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물었을 때,
볼품 없는 고등학교 졸업장 서랍장에 쑤셔 넣고
멋드러진 정장 차려 입고 거리를 쏘다녔을 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울었을 때,
머릿속에 가물거리는 아버지 생년월일을 헤매이며
차가운 수화기 속으로 건조한 목소리 전해드리던
나는, 눈물이 없었다.



캄캄한 방에서 사람을 찾았을 때
드넓은 땅에서 나라를 적었을 때
따뜻한 정으로 가족을 그렸을 때
차가운 머리로 세상을 보았을 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그대가 토해냈던
핏덩이와 뼛가루 섞인 일렁이는 샘물을
알량한 몇푼 돈으로 잔인하게 들이켰던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래된 만년필, 타자기 울리는 소리.
이천 자 원고지 위에서 떨리던 그대의 심장 소리.
뚜벅걸음으로 맴돌던 그대의 발굽 소리
묵묵한 걸음으로 먼 길을 걷다보면
뒷길에 흩어지던 빛가루들, 환한 은총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흰 바람, 파란 구름, 보랏빛 무지개 뜨던 날.
동 터오는 서산 해질녘 마지막 숨결 한 줌에
임상옥도 울고, 불새도 울고, 지구인도 울었지만
나는, 눈물이 없었다.
그대가 낳은 무수한 생명들이 울음을 토했지만
나는, 눈물이 없었다.


최인호
작가 최인호
타인의 방 최인호
상도 최인호
유림 최인호
그대를 따라오는 늘어진 면포(布) 끝자락에
무슨 색을 칠해야 할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대의 웃음
뜨거운 목소리, 밝은 손짓, 걸어가는 뒷모습
다락방 구석에 박혀 혼자 가슴 아플 뿐인데
언젠가 그대가 물었던 질문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나는, 이제야 알겠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최인호
당신은 작가셨습니다.


벽구멍으로, 별들의 고향 속으로
질문을 놓아주고, 그대를 추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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