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같은과 동기 여학생,
말수가 적었는데,
얼굴이 동글동글하니 귀여웠고
웃는 얼굴이 밝고 맑았다.
화 한번 내는 일 없이 온순했다.
늘 단발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고,
옷차림도 소박해서 거의 청바지, 남방, 볼품없는 잠바
단벌로 다녔던것같다.
'쟤는 왜 저럴까.
조금만 꾸미면 이쁠텐데,
옷이 저것밖에 없나?
집이 참 어려운가보다'
볼때마다 그런 생각을 가끔했다.
졸업하고 시간이 많이 흐른 2012년경
그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재학시절 별로 친하지 않았고,
또 당시 부산에서 근무중이라 갈 수 없었다.
얼마후,
당시 장례식에 참석했던 다른 대학동기가
부산으로 놀러왔다.
자갈치시장에서 꼼장어에 소주잔 기울이는데,
동기가 갑자기 그 친구 아버지 장례식 얘기를 꺼냈다
형!(저는 삼수해서 동기사이에서 형오빠였음)
**이 아버지 돌아가셨잖아.
장례식갔는데, 누군지 알아?
누군데?
강금원이야.
!!!
머리가 띵했다.
그 가난해 보이던 친구가 창신섬유 강금원의 딸이라고?!
노무현의 평생후원자 강금원의 딸이라고?
창신섬유는 부산지역의 대기업이었다.
부채도 거의 없는 아주 좋은 회사였다.
호남출신으로 부산에 건너와
맨손으로 창신섬유를 일군 강금원은,
98년부터 꾸준하게 노무현을 후원했다.
아무런 댓가도 없었다.
그 결과, 노무현 퇴임후
기업규모가 십분의 일로 아작났다.
이명박정권이 노무현을 죽인 비열한 방법이
그대로 동원되었다.
창신섬유 본사 뿐 아니라 거래처까지
탈탈 털며 괴롭혔다.
그리고 강금원 본인은
말도 안되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됬는데,
병보석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검찰의 강압으로 모두 거부당하고
수술시기를 놓쳐 결국 돌아가셨다.
정치적 타살이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앞에서
그 아이는 얼마나 분하고 원통했었을것인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날 우리는 자갈치에서 대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