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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본질을 찾아서
게시물ID : phil_63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iidyn
추천 : 0
조회수 : 34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05 17:20:15
나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알면 좋겠지만 모른다고 해서 잘못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의지로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내가 결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문제는 너무나 난해하고
심지어 그런것이 있기나 한지도 의심스러워서,
그것을 알려고 하다가는 있지도 않는 답을 찾아 해맬까 불안하다.
그리하여 삶은 이뤄야 할 어떤 목적이 있는 의무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요행히 떨어진 기회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굳이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이 기회를 충실히 누리는 것이리라..
이런 태어난 이유 만큼이나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하는것도
사실 흥미롭고 좋은 주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삶에 이유 만큼이나 불확실하고 난해해서 
(그것이 있다면)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는 걸로 하고 여기서는 패스.
 
그리고 나는 왜 지금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몰라도(말했지만 그런게 있기나 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알아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이렇게 분명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냥 근원도 모르는 어떤 오랜 타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라 생각하며 (두렵지만 이것 역시 거짓인지도..)
거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정의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십년전 쯤의 이야기다.
그냥 한번 가볍게 생각 좀 해보겠다 한게 벌써 십년이많이 지나버렸다.
처음에는 인간 누구나 결국은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용감하게도 그런 인간의 보편적인 목적같은 것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아는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힘들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목적이라도 찾아보려고 했다.
나는 무었때문에 살면서 행동하고 있고,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었이며,
나의 삶이라는 기회을 가치있게 하는 것이 무었인지.
나도 인간이니까 만약 인간에게 보편적인 동일한 목적이 있다면
나의 목적이 인간의 보편적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인간에게 보편적인 공통된 목적 따윈 본디 없는 것이겠지.
그러나 나의 목적을 찾는것 조차도 쉽지가 않았다.
나는 나의 마음에 대해서부터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닿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형이하학적으로의 마음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즉, 정리하면 나는 인간의 삶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서
내 삶의 목적을 이해하기로 하였고
그러기 위해서 나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뇌"를 공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몇년째 명쾌한 답을 찾을수가 없었고
답답하고 초조하고 암담한 마음에 지금까지 사유한 관념들로 부터라도
어떤 목적에 대한 임시 가설같은 것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좋을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즐거움이었다. 말 그대로 즐거움.
즉, 내가 결국 추구하는 것은 즐거움으로 충만한 삶 같은 것이었다.
충만하게 즐겁기 위해서 놀고 참고 일하고 떳떳하려고도 한다는 것이다.
임시가설이었지만 그것은 재법 단순하면서도 괜찮았고 한동안 유효하였다.
 
그러나 몇년전에 약간의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
충만한 즐거움..
즐겁기만 말한다면 마약 같은것에 중독된 사람도 참 즐겁기 때문이다.
만약 충분히 즐거운 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라면
그리고 만약 돈 걱정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부자가
마약에 중독되어 즐거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그 또한 내가 추구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또는 누군가에게 뇌의 쾌락 중추를 찾아 거기에 전극을 삽입하여
그냥 계속 거기만 자극하게 하는것도 
내가 추구하는 목적을 아주 충족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한 내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이런 모순점을 보안하기 위해서 가설을 수정해야만 했다.
충만한 즐거움에서 궁극의 즐거움으로.
궁극의 즐거움..
이 말은 즐거움에도 단계나 수준이 있음을 가정한다.
그리고 이런 형태로 가설을 수정하기 위해서 불가피 하게 즐거움에 대한 단계나 수준을 '임의로'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임의로 정한 즐거움단계의 기준은 그것과 관련된 뇌영역의 크기와 위치와 안정성이었다.
이 기준에 따라 관련된 뇌 영역이 넓고 고위영역인 행동이나 상태일수록 높은 수준의 즐거움이 된다.
그리하여 마약같은 것에 의한 즐거움은 불안정적이고 낮은 수준의 즐거움으로,
그리고 자연이나 마음의 이치에 대한 깨닮음, 또는 어떤 평안함 같은 것에서 오는 즐거움은 높은 수준의 즐거움이 된다.
왜냐하면 아마도 깨닳음이나 어떤 평안함에서 오는 즐거움은
전기자극이나 마약같은 것으로는 느낄수 없을 것이며(없기를 바라며)
뇌의 많은 부분이 작용해야지 누릴수 있는 복합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했지만 이것은 나의 아쉬운 상황에서 나온 내 임의의 기준이며
이것은 이 가설이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인 불완전성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마약으로 대단한 즐거움을 누릴수는 있겠지만
그 즐거움은 낮은 수준의 것이기 때문에
결코 높은 또는 궁극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가 없으며
이것은 나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어떤 이치들을 깨닳기 위해 나는 생각하고 공부하고 느끼고 경험해 오고 있다고 생각하려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세가지 맹점이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즐거움의 수준에 대한 정의가 타당한지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 궁극의 즐거움은 무었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리고 무었보다도 그것들이 해결된다 해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남는다.
만약 가정이 맞아서 궁극적 즐거움 같은것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것이 무었인지를 알아내서 그것을 위해 인내하고 매진하여 결국 거기에 도달한 삶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삶은 아마도 충실할 것이고 순간 순간이 크고 작은 즐거움으로 채워져 있을 듯 하다.
 
그러나.. 나는 내 일생에서 즐거움 이외의 감정,
예를 들어 노여워 하거나 슬퍼 하거나 부끄러워 하거나 두려워 하거나 괴로워 하는 등의
다른 감정들을 재대로 겪어보거나 이해하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설사 그것이 즐거웠다 할지라도 죽을 때 쯤에 온통 비슷한 색깔의 기억과 감정들로 나의 삶을 회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으로써 내가 생각하는 다시 잠정적 나의 삶의 목적은
가능한 다양한 색깔의 기억과 관념과 감정들로 삶을 풍성하게 채워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무슨 대단한 일을 계획하거나 시도할 생각은 없다.
어떤 대단한 시도를 통해 아주 귀하고 값진 경험이나 감정에 대한 기억을 가지게 될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위해 더 많은 다른,경우에 따라서는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감정이나 경험의 기회를 놓치고 포기해야 하는 수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전이 진행됨에 따라 초심을 잃어 버리고 행동이 도전 자체를 위하는 형태의 헛되고 공허한 맹목적성으로 빠지는 것을 통제할 자신도 나는 없다.
그냥 단지 주위의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현실에 충실하는것 만으로도
그것들을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나 자신과 내 주위를 항상 새로운 감성으로 세심하게 살펴볼 것이며,
순간순간 그대로의 감각,감정,기억,관념에 충실히 반응, 교감하고자 할것 같다.
그리하여 스스로 가능한 많은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할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고작 이것이 내 삶의 목적이고 본질이며 의미인듯 하며
오랜 생각끝에 나온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삶에 대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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