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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광주광역시 경선, 노풍의 근원지 그리고 민주당 분열의 서막
게시물ID : sisa_6388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늑대와호랑이
추천 : 4
조회수 : 47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2/25 14:37:42

1. 
16대 대선.
민주당은 처음으로 국민이 대선후보 선출과정에 참여하는 국민경선제를 도입한다.
제주, 울산을 거쳐
3번째 지역이었던 광주광역시. 노무현은 직전 경선지였던 울산광역시에서 1위를 하며 종합 1위로 올라온 상태였다.
압도적인 1위는 아니었다. 당시 대세는 어디까지나 이인제였고, '리틀 DJ' 한화갑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호남 지역 경선은
아직 치루지도 않았던 상태. 광주광역시 경선이 그 첫 관문이었다.

당시까지의 종합 기록:
1위 노무현 : 423표
2위 이인제 : 394표
3위 김중권 : 336표
4위 한화갑 : 291표
5위 정동영 : 175표

당시 국민경선은 당원 50% 국민 50%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최초의 자발적 후원단체인 노사모의 활약이 빛났다.
동영상에서 보듯이 거의 모든 경선 발표때마다 노사모 회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흡사 축구경기 응원하듯 노래를 했다.
엄숙하고 고루한 당시의 정치 문화에서 이것은 이단이었고, 매우 특이한 현상이었다.

2.
광주광역시 경선을 사흘 앞두고 한 여론조사가 발표된다.
여기서 노무현은, 민주당 후보로서는 처음으로 이회창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근소하게 우세한 모습을 보인다.
(당시 기사 :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newsid=20020313080327044)
이른바 노풍의 근원이었다. 독보적인 대선후보 이회창, 그리고 약 5년 전 정치판에 뛰어든, '박정희-육영수의 영애' 박근혜.
이런 후보들을 상대로 영남 출신 노무현이 선전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노사모는, 아니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모든 국민들은 크게 고무되었다.

3.
그리고 대망의 광주광역시 경선.
노무현과 같은 영남권 후보였던 김중권이 148표를 받는다.
기호 2번 노무현은 595표.
기호 4번 이인제는 491표.
대세론의 이인제를 꺾자 관중석을 차지한 노사모의 환호성이 높아져 갔다.
그 환호성이 터질 때마다 카메라가 관중석을 향하려다가 컷되는 상황이 수차례 발생한다.
그리고 한화갑. 김대중 이후 호남의 맹주였던 그가 280표를 받는다. 호남의 심장, 광주에서.
한화갑의 완패였다.
한화갑의 득표수가 발표되자마자 노사모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노무현을 연호한다.
이인제와 한화갑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고, 이를 중계하던 앵커는 '파란입니다'라고 짧게 언급을 남긴다.

4.
6분 남짓의 짧은 동영상이지만 노무현 지지세력과 나머지 민주당의 문화적 괴리를 매우 극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의 광주 경선은 새 시대의 첫걸음이었고,
동시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민주당 내부 분열의 서막이었다.

비노 세력도 여러 분파가 있지만,
호남을 기반으로 한 비노의 감정적 적개감의 기원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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