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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조금은 슬픈...] 이상한 나라의 황춘씨
게시물ID : panic_639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으앙쥬금ㅜ
추천 : 13
조회수 : 1889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2/10 12:54:10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DhxKZ
 
 
 
 
 
[ 이상한 나라의 황춘 씨 ]



황춘 씨는 애가 셋이야.
나이는 마흔, 복부 비만과 탈모가 진행되기 시작한 머리칼이 그가 가진 전부지.

관계가 소원한 그의 아내는 남편이 야근을 하든, 회식을 갖든 신경 쓰지 않았고,
어미의 무심한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딸도 아버지한테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어.

자기를 거들떠도 안보는 가족들 때문에 황춘 씨는 가끔 숨이 막혔어.
그러면서도 가족들을 아주 사랑해서 술이 알딸딸하게 취했다하면,
둥지에 먹이를 물어오는 착실한 바다새처럼 바지런히 초밥이나 간식 따위를 사들고 날랐단 말이야.
다음날 허둥지둥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할 때 보면, 간밤에 사온 음식들이 식탁 위에 그대로 올려져있었는데도 말야.

황춘 씨는 학습능력이 형편없어서, 술이 들어가면 그짓을 또 반복한단 말이지.
자기가 기분 좋게 사들고 온 음식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걸 빤히 알면서도 “애들 갖다 주려고요” 헤벌쭉 웃는 행동을 그만둘 수가 없었어.

거리가 단풍으로 곱게 물들 즈음, 황춘 씨의 마음도 점점 쓸쓸해졌어.
그의 마음에도 겨울이 찾아오는 듯했지. 가을이 끝나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심장이 멈추든, 길을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든, 죽어버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 거야. 출근길의 만원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순간에도, 문득 무인도에 홀로 갇힌 것 같은 고립감을 느끼곤 했어.

황춘 씨는 언젠가는 가족을 떠나기로 다짐을 하지. 아내가 나를 찾아올 때까지, 애들이 아빠를 찾아 엉엉 울 때까지 보란 듯이 밖으로 떠돌고 말리라고.

그리고 어느 날 눈을 떴더니,
정말로 낯선 세계에 와있는 거야.

그 세계는 네가 살고 있는 세계하고 너무 비슷해서 실눈을 뜨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하지 못해.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도, 시간도, 냄새도 거의 똑같거든.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각도가 아주 조금 다르다거나,
빗물이 떨어지는 속도가 조금 느리다거나,
애완견이 먹이를 향해 질주하는 반응 속도가 좀 더 빠르다거나 하는 차이일 뿐이니까.
웬만큼 감이 좋지 않고서야 다른 세계에 와있단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거든.

그런 면에서 황춘 씨의 경우는 특별하다고 볼 수 있어. 그는 눈을 뜬 순간 뭔가 잘못 됐다는 걸 알았어.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완전한 나체로 잠에서 깨어났거든. 것도 사거리의 횡단보도 위에서.

황춘 씨는 당황해서 얼른 가랑이 사이를 가렸지만, 사실은 얼굴을 가렸어야 했는지도 몰라.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익어 있었거든. 그는 횡단보도를 얼른 건너려고 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어. 어느 쪽으로 건너야 할까? 양쪽 다 사람이 많기는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은 그를 무심히 지나치거나 힐긋 쳐다보거나 할 뿐이었어.

“변태같은 새끼!!” 하고 누군가 따귀를 올려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말이야.

심지어는 어느 노부인은 “일광욕하기 좋은 날이네요.” 웃으며 인사를 건낼 정도였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 아무도 그를 힐난하지도, 비웃지도 않았지.
홀딱 벗고 도심 한복판을 누비는 중년 남자를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다니, 상상이 되니?

횡단보도를 건넌 황춘 씨는 곧장 회사로 갔어.
덜렁덜렁 가랑이 사이에서 흔들리는 느낌이 신경쓰였지만, 정작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황춘 씨 밖에 없었어.
회사로 가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쳤지만 아무도 그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거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회사 사람들도 그랬어.

황춘 씨는 난생 처음으로 팬티 한 장도 입지 않은 차림으로 사무실에 들어섰어.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지 뭐야. 사무실 한복판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어.
최 부장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고 있었지. 그런데 아무도 그를 말리지도, 구경하지도 않았어.
다들 자기 할 일만 할 뿐이었지. 보다 못한 황춘 씨가 다가가서 물었어.

“저, 부장님. 뭐하시는 겁니까?”
“보다시피 몇 대 때리고 있는 중이네.”

최 부장이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자,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풀썩 주저앉았어.

“사장이면 사장이지, 왜 자꾸 이상한 일을 시키고 지랄이야.”

맞고 있던 사람은 바로 사장이었던 거야. 내 말이 믿어져? 황춘 씨는 직접 목격했는데도 믿을 수가 없었어.
멍하니 서있는 그를 향해 최 부장이 물었어.

“왜. 할 말이라도 있나?”

황춘 씨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눈을 딱 감고 말했어.

“그게, 저……집에 가서 옷을 좀 입고 와야겠습니다.”
“그래, 마음대로 하게.”
“네?”
“가는 길에 사장님 좀 사장실로 모시고 가겠나?”

사장은 화를 내지도 않았어. 황춘 씨의 도움을 받아서 절뚝거리면서 걸을 뿐이었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지. 그러다가 내리려는데, 사장이 말했대.

“자네도 날 때리고 싶은 때가 있었나?”
“예?? 아, 아뇨. 제가 감히…….”
“아닌 척 할 거 없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지. 이번 달에만 두 번째라네.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가 사원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이젠 은퇴하고 싶을 지경이야.”

사장은 그 말만 남겨둔 채 비서실을 통과해 사장실로 들어가버렸어.
황춘 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지. 기분이 이상했어.
아니, 이상할 정도가 아니었지. 자기가 미친 줄 알았다고 하니까.

꿈인가?

볼을 꼬집으면 아팠고,

미친건가?

하지만 황춘 씨가 미친 거면 이 세상 모두가 미친 건데, 그건 또 불가능하잖아.

황춘 씨는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아탔어. 타고 나서야 생각났지. 자기가 지갑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그는 체면불구하고 말했어.

“돈이 하나도 없는데, 집까지 좀 태워주시겠습니까?”

택시기사가 뒤를 휙 돌아보더니, “마침 잘 됐네요. 좀 쉬고 싶었는데” 하고 운전석에서 내렸어.
그리곤 당황한 황춘 씨를 운전석으로 밀어 넣었지. 그러더니 뒷자리에 털썩 앉아선, 이렇게 말했어.

“길은 아시죠?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참 이상한 곳이었어.
죄책감도, 책임감도, 양심도, 상식도 사라진 곳이었지.
다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뿐이었어. 그런데도 세상이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다니, 신기하지 않아?
여기선 ‘이상하다’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지.

정말로, 정말로 이상하고 이상한 곳이었어.

그런데 황춘 씨는 마음이 편했어. 넓은 들판에 서서 바람을 맞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뻥 뚫렸어.
갑갑했던 게 사라지고, 곧 죽을 것 같았던 불안도 사라졌어.

홀딱 벗은 채로 남의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이 상황이 유쾌하게 느껴졌던 거야.

택시에 내린 그는 나이도 잊고 폴짝폴짝 뛰었어. 주변에서 놀던 아이들이 그를 따라 폴짝, 개구리처럼 뛰어다녔지.
신나게 집으로 가던 황춘 씨는 과일가게 앞에서 멈춰섰어. 탐스럽게 익은 사과가 눈에 들어온 거야.
문득, 아내가 첫애를 가졌을 때 사과가 먹고 싶다고 해서 늦은 시간에 문 연 가게를 찾아서 온 동네를 돌아다녔던 게 생각났어.

“맛있어 보이는 사과네요.”
“한 바구니 드릴까요?”
“저, 돈이 하나도 없는데…다음에 가져다 드리면….”
“가져가요. 어차피 안 팔려서 파리나 들끓을 테니까.”
“그래도……너무 죄송한데요.”
“대신 나하고 약속을 해요.”

과일 가게 사장이 황춘 씨에게 속닥속닥 거렸어.

“요 앞에 생긴 마트에 가지 않겠다고. 사실, 여기 상인들이 합심해서 불매 운동 중이거든요.”

황춘 씨가 막 과일 봉지를 들고 돌아 서는데, 저기 멀리서 마트 직원이 뛰어 나왔어. 곧 과일 가게 사장과 마트 직원 둘이서 치고받기 시작했지.
이번에도, 아무도 그들을 말리거나 신고하지 않았어. 그저 둘이서 욕하고 때리며 싸울 뿐이었지.

두 세계는 얼마나 비슷했던지, 현관문 비밀번호조차 똑같았어.
황춘 씨가 안으로 들어갔더니 청소기를 돌리고 있던 아내가 그를 쳐다봤어.

“옷 입으러 왔어.”
“그래요?”

평소의 그 무심한 눈으로 황춘 씨를 쳐다볼 뿐이었지.
그가 옷을 벗고 있든,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든,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게 뭐든,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황춘 씨는 식탁에 내려놓았던 사과 봉지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 와서 내밀었어.

“그건 뭐예요?”
“우리 첫애 가졌을 때 생각나? 당신, 사과를 그렇게 좋아했었잖아.”
“그랬나, 내가? 좀 비켜봐요. 거기 머리카락이 잔뜩 떨어져있어.”

황춘 씨는 청소기한테 밀려났어.
아내는 청소기만 돌릴 뿐, 그가 내민 사과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어.
황춘 씨는 그가 그동안 사다 나른 야식들처럼 사과 역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리란 걸 예상했어.
그 순간, 사장을 쥐어패던 부장의 모습과 주먹다짐을 하던 과일 가게 사장과 마트 직원이 생각날게 뭐람.

황춘 씨는 아내의 팔을 꽉 잡고 그 빌어먹을 놈의 청소기를 냅다 걷어 차버렸지.

“먹어.”
“뭐라구요?”
“먹으라고. 내가 사왔으니까, 먹는 시늉이라도 좀 하란 말이야. 당신이 사람이라면, 나랑 결혼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정도는 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알았어요. 먹으면 되잖아요.”

아내는 툴툴 거리면서도 싱크대로 가서 사과를 씻고 과도를 챙겨서 가지고 왔어. 그동안 황춘 씨는 들어가서 옷을 입었지.
그리곤 아내와 나란히 앉아서 사과를 깎아 먹었어. 퍼석퍼석하고 맛도 없는 사과였지만, 이상하게 그렇게 달더래.

황춘 씨는 거기서 3년을 살았어.

회사에 가고 싶은 날에는 가고, 가기 싫은 날에는 가지 않았지.
그러다가 열받은 부장한테 얻어맞기도 하고 말이야. 어떤 때는 황춘 씨가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게 3년을 보냈는데, 어쩌면 평생을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그날, 황춘 씨는 아주 오랜만에 술을 마셨어.
그날따라 걸음이 비틀거릴 정도로 술을 퍼부었지.

황춘 씨가 그랬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술 따위 절대 마시지 않았을 텐데…, 그 술 때문에 모든 게 허사가 됐다고.

다음날 눈을 떴을 때, 황춘 씨는 횡단보도 한복판에 누워 있었어.

셔츠의 단추를 반은 풀어헤친 채로, 넥타이는 사라진 채로, 바지에는 오물이 묻은 채로 눈을 뜬 거야.
황춘 씨는 평소대로 일어나 앉았어. 머리엔 누가 뱉었는지 모를 껌이 진득하니 늘러 붙어 있었지.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면서 횡단보도를 건넜어.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어. 당연했지, 이 세계는 원래 그러니까.
황춘 씨는 귀소본능처럼 회사로 걸어갔어.
막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경비원 둘이 나타나서 황춘 씨를 막아세웠어.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출근하는 길인데요?”
“사원증 있으십니까?”

주머니를 더듬더듬 했지. 누가 가져갔는지, 길에다 흘렸는지 아무것도 만져지질 않더래.
황춘 씨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겠다고 말했어. 그런데 전화를 받은 최 부장이 그러더래.

“자네는 벌써 퇴사처리 됐네. 그렇게 뛰쳐나갈 땐 언제고, 이제와 그러는 이유가 뭔가?”

경비원들은 경찰을 호출했어.
경찰은 아내를 호출했지.

황춘 씨의 아내는 벌써 황춘 씨를 실종신고한 상태였어.
바로 어제 아침에만 해도 잘 다녀오라고 포옹을 했었는데, 아내는 황춘 씨보고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욕했어.

“세달 만에 나타나선……. 그 꼴로 뭘하고 다닌 거예요?”

그렇게 황춘 씨의 행복했던 3년은 사라졌어.
황춘 씨는 3개월이나 행방불명 됐던 거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게 아니라, 3개월간 거리를 헤매면서 꿈을 꾼 거래.

과대망상, 정신분열, 현실도피.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새로운 세상을 하나 만들고, 그 상상 속에 비겁하게 숨어 들어간 거래.

황춘 씨는 믿을 수 없었어.
집으로 돌아와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그게 다 환상이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어.

그리고 어느 날 새벽에, 옷을 훨훨 벗고 거리로 뛰어들었어.
등교하는 여고생 앞을 지나가다 여고생을 기절시키고,
차도에 뛰어들어서 사고를 날뻔하게 만들고,
택시 기사를 끌어내고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고 주장을 했단 말이야.

황춘 씨의 아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했어.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어. 황춘 씨만 내버려두고.
그렇게 거리를 헤매던 황춘 씨는 경찰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지.

자, 여기까지야.

여기까지가 황춘 씨가 햇살 정신병원에 들어오게 된 이유야.

사계절 내내 햇빛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주제에 이름만은 햇살인, 이 병원에 말이야.

황춘 씨는 이곳에 와서도 포기하지 않았어.
언젠가는, 그때처럼 눈을 뜨면 다른 세계에 가있으리라고 생각했지.

이 세상에 그런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의사들은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지.
여기와 아주 아주 비슷하게 설계된 세계가 있다는 사실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아.

오직 황춘 씨만 쇠창살 안에 갇혀선 외치는 거야.

‘돌아가고 싶어, 나를 돌려보내줘!’

하지만 돌아갈 길도, 방법도 모르는 황춘 씨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애원하는 것뿐이야.

황춘 씨는 점점 더 기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
점점 미치광이같은 짓을 했지.

언젠가,
사람들이 미치광이처럼 구는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야말로 그가 원하는 세계에 도착했다는 증거일 테니까.

식판을 머리에 뒤집어쓰는가 하면,
천둥이 치는 날 몰래 빠져나가서 지붕 위에 젓가락을 들고 서있기도 했어.
의사 사무실에 뛰어 들어가서 그를 두드려 패는 일은 너무 흔해서, 기행에 포함되지도 않을 정도였어.

황춘 씨는 금방 유명인사가 됐지만 그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았어. 자기를 거들떠도 보지 말기를 바랐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의사들은 그를 애정결핍에 걸린 관심병 환자라고 진단 내렸어. 덕분에 아주 많은 약을 처방 받아야했지.

그리고 어떻게 됐냐고?

황춘 씨는 거기서 죽었어.

2002년도, 모두 경기를 관람하러 나간 사이에 쓸쓸하게 죽었지.

혼자 식사를 하던 도중 기도가 막혀서 질식사 했는데,
다다음날이 되어서야 시체가 된 그를 발견했어.

그의 담담의사도, 그를 관리했어야 할 간호사도, 관리 부실로 인한 환자의 죽음 때문에 징계 받는 걸 두려워했어.
그리고 그들은 황춘 씨의 가족이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어느밤, 황춘 씨의 시체는 몰래 빼돌려져서 화장되어 뿌려졌어.
그의 죽음을 알고 있는 건 젓가락을 들고 지붕 위를 기어오르던 황춘 씨를 기억하는, 아주 오래된 환자들 뿐이야.

그는 아직도 서류상으로 C병동 106호에 격리되어 있어.
그래, 바로 어제 네가 배정받은 그 병실 말이야.

뭐? 너무하다고?

하지만 또 그렇지도 않아.
그 덕분에 황춘 씨는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거야.

그 의사놈들이 사망처리하지 않은 덕분에, 그는 드디어 행복하게 된 거야.
죽어서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갇혀버렸지만,
진짜 바라던 걸 이뤄낸 거야.

그가 그렇게 바라던 대로,
이제는 아무리 괴상한 행동을 해도,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없거든.

더 이상은 그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리고 본다고 해도 못 본 척 외면해버리니까.

그가 죽은 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종종 황춘 씨의 귀신을 보는 사람들이 있어.

어떤 날은 조리대 위에 누워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홀딱 벗고 복도를 뛰어다닌다나 뭐라나.
목격한 시간과 장소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어.

황춘 씨가 행복해 보인다는 거.

이 이상한 귀신 때문에 병원에선 아주 골머리를 썩고 있어.
황춘 씨를 본 사람은 점점 늘어가는데, 알잖아, 그 사람들이 “귀신이 보여요”라고 말했을 때 어떤 반응을 취하는지.

그래도, 이 병원에 행복한 사람 하나쯤 있는 셈이니 나쁠 건 없지 않겠어?
그러니까 너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야.
네가 황춘 씨가 쓰던 방을 배정 받아서 그렇단 건 아니고,

너도 언젠가는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뜰 수도 있으니까.
정말정말 이상하지만, 또 그만큼 유쾌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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