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이희운 목사 한국 떠난다
3보1배 참가했다고 교계에서 배척
지난 7일 저녁 서울 사직동의 한 카페에 낯익은 얼굴들이 모여들었다. 원불교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수경스님 그리고 환경운동연합의 서주원 사무총장과 활동가들, 이선종 교무와 오영숙 수녀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문규현 신부 등. 얼굴만 보아도 대뜸 알아볼 수 있는 성격의 모임이었다. 지난해 해창갯벌에서 서울 청와대 앞까지 3보1배를 했던 성직자들과 이들을 지원했던 이들이었다.
△ 수경스님, 문규현 신부, 이희운 목사, 김경일 교무가 한 자리에 섰다. 못내 아쉬워하는 수경스님을 맏현 문 신부가 달래고 있다.
화기애애했다. 자그마한 카페는 호박전과 호박밥, 가지 무침, 깻잎볶음 따위의 유기농 음식을 나누며 쏟아지는 이들의 웃음과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밑으로 서늘하게 흐르는 것이 있었다. 어떤 웃음이나 화제로도 걷어낼 수 없는 그늘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이른바 공식행사가 시작되면서 그늘의 정체는 드러났다. 3보1배 이후 교계로부터 ‘왕따’를 받아온 이희운 목사가 결국 아주 멀고, 힘든 땅 인도로 떠나가는 것을 송별하는 자리였다. 창가의 한 자리에는 이 목사의 부인과 철모르는 3딸이 앉아 있었다.
이 목사는 지난해 십자가를 들고 세 걸음에 한번씩 무릎끓고 기도하며 새만금살리기 3보1배에 동참했다. 당시 개신교계는 일제히 ‘목사가 중 꼬붕 노릇 하는거냐’는 식의 저질 비난을 퍼부었고, 이 목사를 이단시했다. 지역 주민과 신도들도 ‘왜 우리(전라북도민)의 살 길을 막아버리려 하느냐’고 비난했다. 이런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인 탈진 속에서 그는 3보1배 직후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뒤 그는 10여년 동안 지역사회에서 피땀으로 일궈온 일들을 하나둘씩 포기해야 했다. 오갈데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전주근로자상담소나 외국인노동자선교센터도 동료 목사들에게 넘겼다. 95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소년원 출소자 등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개척한 나실교회도 이끌어 갈 수 없었다. 후원과 지원이 대부분 끊긴 탓이다.
△ 인사말을 하는 이희운 목사
“이제 한국에서 제 역할은 끝난 것 같아요. 능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면서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새 일을 맡겨주시겠죠.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예상했지만, 제가 부족했습니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보수적인 교단과 동료 목사들로부터 눈흘김을 받았다. 목사 안수 전부터 소년원 출소자들과 함께 뒹굴며 목회를 했고, 희망의전화를 운영하며 알콜중독자나 노숙자를 돌봤다. 이를 바탕으로 전북민중연대회의 대표로 혹은 새만금간척중단전북사람들 공동대표 등의 직분을 맡아 활동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릅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 기도는 나나 다른 목사님께 모두 적용됩니다. 모쪼록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는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필요한 만큼 채워주실 거’라고 믿고는 있지만, 준비한 게 별로 없다. 제3세계로 선교를 떠나면 교단이나 큰 교회에서 지원도 한다지만 그와는 인연이 닿지않았다. 그와 부인 황은영씨(39) 그리고 세딸은 일단 인도 남부지역에서 농촌개발 사역을 하고 있는 정호진 목사(기장)에게 의지할 계획이다. “일단 얻어먹다가 여건이 되면 저도 베풀게 되겠죠.” 앞으로 20년 계획으로 인도 남부 타밀라두 방갈로의 불가촉천민을 위해 봉사하고, 남인도교단총회와 함께 인도 26개주에 사회선교센터를 건립하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이제 슬픔과 고뇌를 모두 털어버리고 생명평화의 씨를 지구 끝까지 퍼뜨려 주십시요” “우주는 한 덩어리고 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건 하나입니다. 거기서 함께 3보1배를 하게 될 겁니다”라는 김경일 교무와 수경스님의 송별사에 이어 문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생명평화를 위해선 종교를 깨야 합니다. 종교의 형식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을 깨기 위해 이 목사님은 다시 떠나는 겁니다.”
이 목사와 가족은 10일 출국한다. 이메일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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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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